Edited by: Gangnam Station and Yeoksam Station around the town of Teheranro story from year1600 to year2018, 500 years of living in the land of people who lived through the traces of the lives and the lives of people and I look at the times. In the process, the nature of human life that make life on earth are understood. Through yesterday, we must get wisdom to live today.
이재홍Lee Jae Hong (CEO of Mill Bridge)

내 고향 역삼동은
내 기억 속에서 멀어져만 가고 있다
약간은 삐그덕거리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정확히 제 위치를 찾지 못해
영점 오 센티 정도 낮은 위치에 정지하곤 했지만
습관은 그런 불협화에 익숙해지게 했다
우리의 삶도 결국 습관과 시간의 문제로 귀결되어 해결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엀을지도 모른다
존재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이 결국 의식만
남겨주고 떠났다

그렇다
그 시절 고향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내 기억속 고향은 내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해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 속의 고향인 것을.

My hometown of Yeoksam-dong is moving away from my memory
A little ragged elevator can not find exactly where I was.
I used to stop at a low of zero centimeters
Habits have become familiar with such discord.
Our lives may eventually lead to problems of habits and time, a
nd nothing can be solved
Everything that could exist eventually left consciousness and left.

That must be true
In those days home will never come back
Even if I do not come back to my hometown in my memory
It is a memorable hometown in memorable memory.

1930년대 현재 역삼동 일대의 지형도

1930년대 역삼동 일대의 지도

어쩌면 남부 서울의 초입에서 사람들의 입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지역 이름이 양재동일 것이다. 지방 나들이 가는 사람들이 일요일 이른 아침에 모이는 곳, 경기 남부권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거쳐가는 나들목. 전국의 국토와 접점을 이루는 서울의 초입 양재역에서 강남역 사이 왼편으로 펼쳐지는 곳이 역삼동이다.
역삼동은 필자가 태어난 고향이자, 90년대 이후의 삶터이기도 하다.

지금의 역삼동의 행정구역 변화를 보면 한국사의 한 편린이 보인다. 조선시대 과천현에 속했던 역삼동은 양재 도찰방이 있었던 곳으로 그 탓에 역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에 행정구역 상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에 속했던 역삼동은 1914년 다시 행정구역 상 역삼리라 불리었다.
역삼리는 조선시대 역촌이었던 말죽거리, 상방하교(윗방아다리), 하방하교(아랫방아다리)의 세 마을로 이루어진다. 현재 양재동에 속한 말죽거리와 아랫방아다리 사이에 있는 은광여고 앞은 싸리고개라 불렸다. 고개 정상에는 마을의 보호수 신당나무가 늠늠하게 서 있었다. 언젠가 잘려나간 신당나무의 뿌리가 요즘도 자라고 있음을 필자는 그 곳을 지날 때마다 목격하곤 한다.
윗방아다리는 현재 테헤란로 경계를 넘어 국기원 아랫쪽에 위치한 마을로 논현동의 일부다. 그곳은 논이 넓게 펼쳐져 가을이면 황금들판을 이루고 있던 곳이다. 현재 역삼 동사무소 뒤쪽 마을이 예전 역삼동의 핵심 지역이다. 지금은 강남에서 가장 낙후된 골목길의 하나를 이루고 있는 구 동네가 그 시대 역삼리의 요지였다. 지하철이 생기면서 중심 도로가 사람들의 주거 지역의 인도 중심에서 역세권 차도로 이동한 시대적 변화가 여실히 나타난다.

Maybe it will be Yangjae-dong, which is the most talked about people’s mouth at the beginning of southern Seoul. It is a place where people who go out to the local area gather early in the morning on Sunday. It is Yeoksam-dong, which is located on the left side of Gangnam Station from the entrance Yangjae Station of Seoul which is in contact with the national land of the whole country.
Yeoksam-dong is the home where I was born. It is also a place to live since the 90s.
Looking at the changes in the administrative district of Yeoksam-dong now, one can see the Korean history. Yeoksam-dong, which belonged to Gwacheon-dong of the Joseon Dynasty, was a place where Yangjae inspection room was located. After liberation, Yeoksam – dong, which belonged to the Anju area of Gwangju- gun, Gyeonggi-do, was called the Yeoksam-ri in 1914.
Yeoksam-ri is made up of three villages, which are the villages of Chosun Dynasty, Sangbanghagyo, Habanghagyo, Maljukgari. At the present time, in front of the Sangbanghagyo, located between Yangjae-dong and the lower Bangda-ri in Yangjae-dong, it was called Sari Pass. At the top of the head of the village, the guard tree of the village stands firmly. I have witnessed the roots of the buddhist tree that have been cut off one day, growing up nowadays every time I pass.
The upper Bangdari is a part of Nonhyeon-dong, which is located at the bottom of Kukkiwon, beyond the border of Teheran. In the upper bastard, rice paddies spread widely, and in autumn, it was the place where golden fields were formed. The village behind the Yeoksam government office is now the core of Yeoksam-dong. Nowadays, the old town, which is one of the most underdeveloped alleys in Gangnam, was the main point of the Yeon Sam-ri during that period. As the subway rises, the change of the times when the central road has moved from the center of the people’s residential area to the subway station, is evident.

1970년대 초 테헤란로가 개발되기 전의 역삼동

인조대왕이 과천 피난길에 말 위에서 죽 먹던 ‘말죽거리’
역삼리는 1500년 대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흔적과 스토리가 담겨진 곳이다.
1966년 숭실대 사학과 유물발굴단이 역삼리를 발굴했다. 유물을 통해 이 지역 거주자들이 길이 10m, 폭 3m의 장방형 수혈식 거주지에 기거했다고 발표했다.
1547년 조선조에 명종이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모친 문정왕후 윤씨가 대리청정을 했다. 문정왕후의 폐단이 극에 달하자, 양재영 벽에 “여자 임금이 위에 있고, 간신이 국권을 농락하니 어찌 한심하지 아니한가”라고 쓰인 붉은 글씨가 발견되었다. 이 일로 인해 수 십 명의 선비가 죽고, 많은 사람들이 귀향을 가게 된 ‘양재영 벽서사옥’이 일어나기도 했다.
조선조 1624년 이 괄의 난으로 도성이 침범 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때 도성을 빠져 나온 인조는 남도로 피난을 하는 도중 갈증과 허기에 지쳐 말에서 죽을 마시고 과천으로 말을 달렸다고 한다. 혹자는 말죽거리의 유래가 인조 때문이라고도 하고, 혹자는 과천으로 가는 길목에 말 먹이를 먹이는 곳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역삼동이 나의 고향이 된 유래도 조선조를 거슬러간다. 세종대왕의 부인 소명왕후의 본가 청송 심씨는 태종 이방원의 외척세력 척결 사건이 발발하자 도성을 떠나 역삼동에 정착했다. 아랫방다리 역삼동은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나뉘어져 중간 지점에 300년 된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느티나무에서 매년 단오제나 추석 명절 때 그네뛰기와 널뛰기 행사가 열렸다. 동네의 중심을 이루던 느티나무가에서 20m지점에는 행여간과 근대식 엔진으로 가동되는 방앗간이 있었다. 냇가에 가까운 아랫동네에는 물레방아가 있었다고 하나 60년대 이전에 없어졌다.

Maljukgari, Eating place of King Injo’s great horses’ mill
Yeoksam-ri is home to the traces and stories of the diverse lives of those living in the 1500s.
In 1966, Soongsil University History and Excavation Excavations unearthed Yeoksam-ri. The relics announced that the residents of the area lived in a rectangular 10m long, 3m wide.
In 1547, when King Jong-chong was enthroned at a young age, his mother, Mun-Jeong, a grandma of the king, Yoon Seung-hyun, cleaned the deputy. When the evils of Moon-jeong reached the pole, a red letter was written on the wall of Yang Jae-young, saying, “The woman’s king is on the ground, Yang Jae-young`s wall office building, which led to this return, also happened.
In the year 1624, the city of Chosun Dynasty was invaded by the city. At this time, Arto, who had escaped from the city, was tired of thirst and hunger while he was evacuating to the South Island. Some say that the origin of the ridicule is due to artificiality, and some say that it originated from eating horse feed on the way to Gwacheon.
The origins of Yeoksam – dong, which became my hometown, go back to the Joseon Dynasty. King Sejong’s wife, King Seomyeong’s headquarters, Chongsong Shim, settled in Yeoksam-dong after leaving the province when the outbreak of the Taejong branch was overturned. The lower bridge Yeoksam – dong was divided into the upper and lower towns, and 300-year-old zelkova trees stood at the middle point. Every year in Zelkova, a swing and a jumping event were held during the Dano Festival or Chuseok holidays. At the center of the town, the Zelkova tree Street, was a 20-meter-long mill that operated as a paddle and modern engine. There was a watermill in the lower town near the stream, but it disappeared before the ’60s.

현재는 테헤란로의 주택가이지만 예전 역삼동의 중심지였던 역삼 동사무소 자리

외할머니 댁에서 태어난 역삼동 토박이
필자가 태어난 곳은 역삼동 외할머니댁이다. 외할머니는 역삼리 세력가 심씨네로 시집와서 역삼동에서 일가를 이루셨다. 외할머니께서는 1남 3녀의 자손을 두셨는데, 필자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큰 따님이시다.
외할머니는 봉원사 주지의 따님이시다. 인수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국운을 도모하기 위해 절을 부흥했는데, 이 때 봉원사가 건립되었다. 절의 건립 후 심씨 가문 사람이 절의 침봉으로 절 살림을 살고 선정릉 등 왕릉 관리자로 일대에서 농사도 짓고 살았다.

Yeoksam-dong native born in grandmother’s house
The place where I was born is my grandmother’s house in Yeoksam-dong. My grandmother was married to rich Shim family of Yeoksam-dong’s. My maternal grandmother has three sons and three daughters, and my mother is my grandmother’s eldest daughter. My grandmother was the daughter of the head monk of Bongwon-sa temple. In order to promote the national treasure, Insudaebi of King Inso’s grandmother constructed the temple Bongwon-sa. After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the Shim family of Yeoksam-dong lived in the village of the temple and took a role of a royal tomb administ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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