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년 삶터의 한문화 익히고 보전하는 엔터프리뉴어 권오춘 초은당 당주·해동경사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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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초반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중심으로 5천년 한국인의 삶터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시대의 화두다. 이 땅의 사람들이 생활하고 삶을 이어가는 과정에서 싹튼 신앙, 문화, 지식체계, 의식주를 비롯한 생활방식 등 다양한 삶터의 운영체계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양식을 찾을 수 있다. 한국 전통문화의 고장 안동에서 지역 사람들의 생활터전과 지식체계, 그리고 전통문화를 익히고 보전해가고 있는 초은당의 권오춘 당주의 삶의 철학과 지식나눔 활동을 통해 이 땅의 사람들이 추구하고 지키며 가꾸어가야 할 삶의 지향점을 파악해본다.

In the beginning of the 21st century, the search for the identity of Koreans in the 5th millennium Korean life is centered on opinion leaders in Korea. The identity and culture of Koreans can be found in various operating systems such as religion, culture, knowledge system, lifestyle such as food, clothing, shelter, and so on that people live in this land. The life of the people of this land should be pursued and preserved through the philosophy of Kwon Oh-chun’s life and knowledge sharing activities of him in ChoEun-dang, which is learning and preserving the life environment of local people and the knowledge system and traditional culture in Andong.
Editor Hyun Ji Hae | Photo image Park Bo-hyoung | Video editing Kim Joo-nam

초은당은 권 이사장이 나고 자란 안동 고향집 마을과 흡사한 지세를 지닌 자연의 집이다

한민족의 5천년 역사 기간 동안 이 땅에서 꽃핀 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맥을 이어가고 있는 한문화 전도사가 있다. 안동 구담정사九潭精舍와 양평 초은당怊隱堂의 당주 권오춘 이사장이다. 그는 지난 23년 동안 이 땅에서 일상의 삶을 살았던 선조들의 옷 한복을 입고 살아왔다. 그와 동시에 한문으로 기록된 고전을 읽고 조상의 지식과 지혜를 배우는 가운데 그 컨텐츠와 지혜를 동시대인과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한국 전통문화의 고장 안동에서 3백년 고택을 인수, 구담정사九潭精舍를 중수해 가꾸며 보존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03년 권오춘 이사장은 수도권의 청정지대 양평 문호리 산자락에 30칸 한옥 초은당怊隱堂을 새로이 마련해 한문화를 펼치고 나누는 터전으로 활용하고 있다.

There is a Korean-American cultural evangelist who has preserved Korean traditional culture that has been prospered during the 5,000-year history of the Korea. Mr. Kwon Oh-chun is the one who owns and lives in Andong Gutam hanok and ChoEun-dang. At the same time, he reads the classics recorded in Chinese characters and learns the knowledge and wisdom of the ancestors. He has taken over the house of 300 years in Andong, the hometown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where he was born and grew up. In 2003, Mr. Kwon Oh-chun get used live at Hanok as a place to feel and share Korean culture in the mountain area of Yangpyeong in the clean area of the Seoul metropolitan area.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 산자락에 자리잡은 초은당은 인간문화재 최기영 선생이 지은 30칸 한옥이다. 11칸의 대청마루와 좌우의 안방과 게스트룸으로 사용하는 방이 있고 대청마루의 문을 열면 북한강과 남양주 조안면이 조망된다. 권 이사장은 초은당에 기둥에 9번, 바닥에 5번의 옷칠을 하여 목재의 내구성과 내화성을 확보했다

1 초은당의 서재 복도

2 초은당의 게스트룸 서재

3 대청마루에서 북한강 조망

4 초은당 안방

초은당에서 한문화 익히며 동시대인들과 그 가치와 컨텐츠를 나누며
2018년 4월 봄 진달래 꽃이 아름드리 핀 날 초은당 정원에서 당주 권오춘 이사장과 마주했다. 눈이 부시는 흰색 무명 바지저고리의 백발 노신사는 북한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산중턱에서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며 말을 이어갔다.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마을의 우리 집 좌우로 큰 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었고, 언덕 위 집 앞으로는 낙동강 지류가 만나 두 물 머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스무 해 동안 보고 자란 고향집의 자연 환경이 초은당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흡사합니다. 양평의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해 두 물 머리를 이루어 서해로 흘러가듯이, 안동의 낙동강 지류가 고향집 앞 두 물 머리에서 합류해 남해로 흘러가죠.”

Live in ChoEun-dang, while learning and sharing the value and contents of Korean culture
In the spring of April, 2018, a flower of a rhododendron blossomed in a cherry garden. The snowy white cotton-Hanbook pants and Chogori’s white – haired gentleman looked at the blue sky from the side of the mountain overlooking the North River at a glance.
“In the village where I had spent my childhood, there was a big mountain on both sides of the house, like a folding screen, and a branch of the Nakdong River met me in front of the house on the hill. The natural environment of my home town, which has been seen for twenty years, is similar to what we see in ChoEun-dang. As the North and South rivers in Yangpyeong join together and the two heads of water flow to the West Sea, the Nakdong River tributary of Andong joins them from the head of their home and flows to the South Sea.”

초은당은 세미나, 포럼, 결혼식 등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는 장소다. 특별한 모임이 있는 날이면 권 이사장은 우리 가락과 춤을 선보이며 한문화 보급운동을 하고 있다

이 날 오전 10시경 초은당 대청 마루에서 안동 향우회의 30여명 회원들이 회의를 했다. 회의가 끝난 후 권오춘 이사장이 기획한 경기민요 가락과 우리 춤 사위가 대청마루에서 펼쳐진다. 초은당에 모임이 있을 때면 우리 춤과 가락을 선보이곤 하는 권오춘 이사장은 그 의미에 대해 부연 설명했다.

At around 10:00 am on this day, there was a meeting of 30 members of Andong-born peoples. After the meeting, Gyeonggi folk singer and Korean dancer which were organized by Mr. Kwon Oh-chun, shows them Korean dance and rhythm. He explains its meaning.

2018년 4월 안동 향우회 신년 모임을 하는 날 권 이사장은 직접 선비춤을 선보이며 우리 문화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우리 춤과 가락은 인간의 삶이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과 교감하고 삶의 희로애락을 나누기 위해 벌이는 한판 놀이입니다. 모처럼 고향 선후배들이 함께 하는 시간에 우리 춤 사위와 노래 가락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입니다.”
향우회 회원들은 어깨를 들석이며 초은당에서 벌어진 우리 춤과 가락의 흥을 즐긴다. 대청 마루에서 벌어지는 우리 춤사위의 흥겨움에 선비춤 애호가인 권오춘 이사장이 그 동안 갈고 닦은 춤 사위를 더한다. 민요 가수 성예진의 교방춤과 어우러져 권오춘 이사장은 한 마리의 학이 되어 60여년 삶의 희비와 깨달음을 온 몸으로 절절히 쏟아낸다.

“Our dance and rhythm is a bustling game where human life communicates with all life on the earth and shares the joy and happiness of life. It is specially arranged to have a good time , whiling sharing our dance and singing rhythm at the time when the elderly hometown friends are together.”
The members of the organization enjoy the excitement of Korean dance and rhythm. In the excitement of Korean dancing at daechung-maru of Cho Eun-dang, Mr. Kwon Oh-chun, a sunbi dance enthusiast, adds dancing with them. He pours out the sincerity and enlightenment of life for 60 years, whiling dancing for the people.

지난 20년 동안 권 이사장은 세상의 일에 연연하지 않고 한복을 입고, 유가, 불가, 노장의 사상이 담긴 고전을 읽으며 동양사상의 진수를 터득하고 즐거워하며 자족하는 삶을 살아왔다

삶의 원형 ‘안동 두물머리가 한옥집과 자연의 마을, 그리고 조상의 유지’
21세기의 평균적인 한국인과 차별화되는 삶을 사는 권오춘 이사장. 많은 사람들이 지난 20여 년 그가 살아온 삶을 보고는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어쩌면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한문화에 빠져 오롯이 우리 문화사랑으로 한 길을 살 수 있느냐?”
그러나 그런 의문은 그의 삶의 원형이 된 고향과 자연의 마을, 그리고 한문화 지식에 대한 목마름으로 시작한 20여년의 면학을 이해하면 절로 풀린다. 그에게 안동 검암리의 낙동강가 두물 머리와 언덕 위 한옥집, 고향집 좌우의 산들, 그리고 어버이와 함께 한 유년시절의 생활은 그의 삶의 원형이다. 대학 진학 무렵 안동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고향 마을의 흙과 산, 강을 벗하며 자랐다. 안동은 백두대간 태백산권의 지류인 소백산이 이어지고, 태백의 황지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흐른다. 그런 만큼 권오춘 이사장의 유년시절부터 청년기에 이르는 60년의 삶은 안동의 마을과 산천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The true nature of his life, Hanok in Andong ,the village of nature, and the philosophy of ancestors
Mr. Kwon Oh Chun who lives a life different from the average Korean in the 21st century. Many people are curious about how he lead his life in such a way. They sometimes asked like this way:
“How you can go back to and live in a Korean culture, and you may live a way through whole love for Korean culture?”
However, such a question may have simple rewards only if you understand his life during 20 years or more. The Nakdong River in Andong and the hanok house on the hill, the mountains on the left and right of his home, and his childhood life with his parents are the origin of his life.
Until he left Andong in college, he grew up in the soil, mountains and rivers of his hometown. Andong is the tributary of Taebaek Mountain in the Baekdudaegan, followed by Sobaeksan, and the Nakdong River. As such, 60 years of life, from childhood to adolescence, he can not speak about his life without them.

오전 한 나절 북한강 가를 산책하며 자신이 살아온 인생길을 돌이켜 보며, 21세기 한국인의 삶터에서 자신의 소임을 생각해보는 권 이사장

특히 성리학의 고장 안동에서 권오춘 이사장은 7살 무렵 집안 어른이 운영하던 서당에서『천자문千字文 』과 『명심보감明心寶鑑 』등의 고전을 읽으며 성장했다. 그런 연유로 그는 살아오는 내내 그 시절 서당에서 친구들과 글 읽던 기억과 그 때의 배움을 내면 깊숙이 간직하며 살았다. 그에게 유년시절의 생활은 물론 자연의 이치에 따라 살아가는 안동 사람들의 삶은 인간이 지키고 추구해야 할 삶의 가치로 이해되었다.
권오춘 이사장의 그러한 생각의 배경은 930년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조 창건의 기틀을 세우고 국가 최고 명예인 태사太使에 책봉되어 벽상공신壁上功臣(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내린 벼슬)으로 현양된 안동 권씨의 35대 자손이라는 자신의 출신 배경에서 출발한다. 유년시절부터 조상의 이야기를 선친으로부터 들으며 자란 그는 조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며 항상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예를 다하고 인간적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갔다.

In particular, when he was 7 years old, he was reading the classics such as 「Cheonjamoon」 and 「Myeongsimbogam」 in Seodang, For this reason, he lived with his memories of reading with his friends at the time of his lifetime and his learning at his younger years. The life of the Andong people who live according to the nature as well as the life of childhood was understood to be the value of life that human beings should observe and pursue.

The background of the thought of Mr. Kwon Oh-chun is that his grand ancesotors helped King Taejo in year 930 and established the foundation of Goryeo Danasty, and was handed over to the highest honor of the country. His thought has started out as he is a Andong Kwon’s 35th generation. From his childhood, he grew up listening to the stories of his grand ancestors from his father. He was proud of his ancestors and always pursued a life where he lived and worked with people around him, keeping his human self-esteem.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 선생이 제자 양성의 꿈을 키운 안동 도산서원 전경

안동의 양대 서원인 병산서원은 조선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우국충신 서해 류성룡 선생의 나라의 큰 인재 양성의 터전이다. 병산서원에서 지난 20년 간의 자신의 학문연마의 길을 돌아보는 권 이사장

매년 10월 안동에서 선친과 함께 조상의 위폐를 모시고 제를 지내며
그런 만큼 그에게는 안동에서 부모들과 함께 추구했던 삶의 모습과 가치를 이 땅에서 다시 재현하고 지켜내는 일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그의 나이처럼 나이테를 더해갔다.
“안동은 성리학의 거봉 퇴계退溪 이황李滉 선생이 일찍이 도산서원陶山書院을 건립하고 제자를 양성하였습니다. 또한 안동은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선생 등 우국지사憂國之士와 조선조 최고의 학자學者를 배출한 충효의 고장입니다.”

Every year in Andong in October, he performed memorial service with his father
As such, his sense of duty to reproduce and preserve the image and value of life that he pursued with his parents in Andong, again in this land, added to him as he grows like an his age.
“Andong is the hometown of the holy scholar Yihwang who made the background of educating the talents in the town. His students expanded the Dosan Seowon in order to support the inheritance of their teachers. Andong is the headquarters of the great politicians, who produced the most famous scholars and leaders of the Joseon Dynasty, such as Yoo Sung-Ryong and Kim Sung-IL.”

안동에는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성립의 기틀을 세운 세 벽상공신을 기리는 태사묘가 있다. 매년 10월 벽상공신의 후손들은 태사묘에서 불천위제사를 지낸다. 안동 권씨 35대 후손인 권 이사장도 가문을 대표해 태사묘에서 불천위제사를 기내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 때 나라를 빼앗긴 후 최초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난 곳이 안동이다. 안동의 선비들에게 독립운동은 의를 행하는 행위였으며, 그런 맥락에서 만주로 이주하거나 독립군들에게 독립자금을 대기도 했다. 안동이 전국에서 독립유공자가 많다는 사례를 들며 권오춘 이사장은 충절의 고장 안동의 의미를 부연했다.
“전국에서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인원은 1만 3천940명인데, 이중 2천80명이 경북 출신이고 안동은 353명으로 전국 시군 중 가장 많습니다. 그래서 안동에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이 들어섰습니다. 기념관은 독립유공자를 25명이나 배출한 의성 김씨 집성촌인 내앞마을에 있는데, 항일독립운동사의 요람이라고 불리웁니다.”

It is Andong where the first anti-Japanese military campaign took place after the country was taken away during the Japanese occupation. The independence movement was the act of righteousness to the Sunbi of Andong, and in that context they moved to Manchuria or send the independent funds to the independents.
He explained the meaning of Andong as a symbol of loyalty.
“There are 13,940 people who have been awarded as independent benefactor from the country. Of these, 2,804 are from Gyeongbuk, while Andong is 353, the most among the counties. So, Gyeongsangbukdo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Hall established in Andong. The memorial hall is located in the inner village of Yuseong Kim, who produced 25 people of independent benefactor. It is called the cradle of the independence movement.”

북한강 변의 하늘에 어둠이 내릴 때의 초은당 풍경

어릴 때부터 권오춘 이사장은 안동의 선현들이 나라의 기강을 세우고 조상에게 예를 다하는 전통문화를 몸으로 체험하면서 성장했다. 권오춘 이사장은 2대 독자인 선친의 큰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 만큼 그는 매년 10월 묘제 때면 한복을 입고 하얀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 입은 선친의 손을 잡고 동네 길을 걸어 선산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제를 지낼 때 마다 그의 선친은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에게 말했다.
“너도 면학에 힘쓰며 뜻을 세워 조상님들처럼 나라의 융성에 기여하고 가문을 일으켜 조상님들에게 보답해야 한다.”
또한 권오춘 이사장은 한동안 매년 10월 문중을 대표해서 안동 김씨 김선평, 안동 장씨 장정필 등의 3공신 문중 대표들과 함께 제사를 지냈다. 이 때 공신 3인의 묘우(廟宇, 신위를 모신 집)가 있는 안동웅부공원 부근 태사묘(太師廟)에 가서 삼공신(三功臣)의 위패를 모시고 1천년 역사의 불천위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Since childhood, Mr. Kwon Oh-chun has grown up in the traditional culture of Andong, where his ancestore set up the nation’s discipline and give lessons to his offsprings. Mr. Kwon Oh-chun was born as the eldest son of his two readers. So, every year in October, when he was wearing the hanbok, he took the hand of his father who dressed in white overcoat and walked the neighborhood road to go to the sacred mountain. Every time he goes, his father tells his son, who will inherit his family’s heritage in the end.
“You have to work hard on your studies and make a contribution to the prosperity of your country like your ancestors, raise your family, and repay your ancestors.”
In addition, Mr. Kwon Oh-chun held a ceremony with the representitives of three public figures including Seonpyeong Kim in Andong Kim, and Jang Jeong-pil in Andong Jang on behalf of the Andong Kwon in October every year for a while. At that time, he went to the tomb of Taesamyo near Andong Unbupark where there were three worshipers, and took the tabernacle of Samgongsin.

권 이사장은 90년대 중반 이후 사서삼경에서부터 불가의 고전, 노장 사상집, 그리고 퇴계문집 등 이 땅의 학자들의 문집과 왕실기록들을 읽고 공부하며 한문화의 역사성과 지혜를 배우고 터득하는 삶을 살아왔다

성실히, 열심히 살며 추진력과 결단력의 리더십을 키우고
안동 사람 권오춘 이사장은 예 일곱 살부터 들어온 선친의 가르침과 당부의 말을 통해 자신이 가야 할 삶의 방향을 정했는지 모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회로 돌아온 권오춘 이사장은 20대 중반의 나이에 증권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솔섬수범하며 부지런히, 성실히 신의를 지키며 일한 덕에 그는 30대 후반에 강남 부촌의 증권사 지점장이 되어 회사에서 인정받는 증권맨으로 성장했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80, 90년대 증권가에서 일하며 한국 경제의 성장인프라 구축에 기여했던 권오춘 이사장은 1995년 회사에 사표를 내고 자신이 가던 길을 미련없이 돌아 나왔다.
권오춘 이사장은 17년간 증권맨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부침이 심한 증권가에서 그가 성공적이었던 비결은 때를 잘 파악하고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었다. 요즘도 증권가에서 통할 수 있는 실천리더십을 그는 3가지로 집약해 표현했다.
“증권이든 세상살이든 원칙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달이 차면 기울고, 그릇도 차면 넘치기 마련입니다. 욕심이 과하면 죄를 낳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집중해서 때를 파악하고 행동할 때를 결정하고, 결정을 했으면 바로 추진을 해야 합니다.”
그의 지론처럼 세상에서 자신의 그릇이 다 찼다고 생각하던 시점에 그는 자신의 사회적 자리를 내려놓았다. 일반적으로는 보면, 사람의 물욕에 한계가 없다. 그러나 권오춘 이사장은 이미 30대부터 노장 사상에 심취해 자신의 그릇과 세상에서 할 일을 깨달았던 탓에 절제하는 도를 스스로의 삶에서 실천했던 것이다.

Live hard and build leadership with the determination and execution
Mr. Kwon Oh-chun who were born in Andong, may have decided the direction of his life to go through the words of his father when he was 7 years old. Mr. Kwon Oh-chun, who returned to society after finishing his military service, began his career at a securities company in his mid-twenties. As a result of working diligently, he became a manager in Gangnam in the late 30s, took a successful career in his field.
Mr. Kwon Oh-chun, who worked for a securities company in the 1980s and 1990s when the Korean economy was experiencing high growth, contributed to building a growth infrastructure for the Korean economy. He resigned from the company in 1995 without any hesitation.
Mr. Kwon Oh-chun lived a successful life as a securities career for 17 years. The secret of his success in the brokerage was that he did not grasp the time and greed. Nowadays, he represents the practical leadership that can be handled by the securities company in three ways.
“The principle, whether it is securities or worldly, seems to be similar. When the moon is full, it leans, and when the bowl is full, it overflows. Do not say that greed overcomes sin. We need to focus on time, determine when to act.”
At the time he thought his bowl was full in the world like his chronology, he put down his social position. Generally speaking, there is no limit to the greed of a person. However, he has been practicing in the life of his own since he was already deeply impressed by Laotzu’ thought in his thirties.

초은당의 봄 산책길에서

증권가에서 45세에 은퇴, 8년 간 한복 입고 고전을 읽고 면학
권오춘 이사장은 45세가 되던 해 안동으로 내려가 고향에서 고전 공부를 시작했다. 선현들의 지식과 지혜를 기록한 한서를 읽고 강독하며 7살 소년 시절의 학동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는 한복을 입고 고무신을 신으며,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살았던 시절의 모습으로 살았다. 그 시절 자신이 읽었던 책과 글귀를 통해 어떤 배움과 깨달음의 시간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는 말했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근 10년 동안 『논어論語 』, 『대학大學』, 『 맹자孟子 』, 『중용中庸 』 등 사서삼경을 읽고 자구의 뜻이 제 몸에 체득되도록 공부했습니다. 불가 서적으로 『반야부 경전般若部 經傳』, 『법화경法華經』, 『법구경法句經』, 『화엄경華嚴經』 등을 읽었습니다. 『노자老子』와 『장자長子』를 읽고 전통 사상의 가르침과 오늘 날의 의미를 반추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리학이 꽃핀 안동의 지식서라 할 수 있는 『퇴계전서退溪全書 』, 『성리학대전性理學大全』 등을 읽고 공부했습니다.”

Retired at the age of 45 at the securities company, read classics wearing hanbok for 8 years
Mr. Kwon Oh-chun went to Andong at the age of 45 and began studying classics at home. He read and read many books that recorded the knowledge and wisdom of the prefectures and got bact to the school days when he was a seven-year-old boy. He wore a hanbok and put on a rubber shoes, and lived in the way that his grandfather and father lived. He told us what learning and enlightenment were through his books and writings that he had read in those days.
“From 1995 to 2003, I studied Oriental classics such as 『Analytical Theory』, 『Tenacles』, 『Mencius』, 『Philosophy』. And I have read books such as 『Banyabu scriptures』, 『Lotus Sutra』, 『Dhamma』, and 『Avatamsaka Sutra』. I read 『Laotzu』 and 『Chuangtzu』 and reflected the teachings of traditional thought and the meaning of today’s day. And he studied and studied the 『Toege’s Collected Works』 and 『 』, which is a knowledge center and the background of its spiritual thought of Andong.

권 이사장은 때로는 할일 없음을 즐기며, 하늘과 바람과 새소리에 마음을 내려놓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며 삶을 생각한다

그야말로 오로지 글을 읽고 사색하며 안동의 부모 봉양하는 선비의 생활로 돌아간 그 시절의 기쁨을 그는 『논어』의 한 귀절로 대변했다.
“『논어』 첫 장에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樂乎아, 유붕자원방래有朋自遠方來면 不亦樂乎불역락호아,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溫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라는 글귀가 있습니다. 그 시절 제 생활이 그랬습니다.”
그 시절 그는 공부하고 배우며 가끔씩 찾아오는 친구와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지식 세계가 넓어져 가는 것을 기쁘게 여기며 살았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아도,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고전을 하나, 둘 읽고 뜻을 가늠하면서 옛 선현의 지식과 조우하며 자신의 지식의 깊이를 더해갔다. 그런 가운데 배우고 익히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일깨우며 살았다.
한서를 읽고 공부하면서 한문화에 더욱 깊이 빠져든 2007년 즈음 권오춘 이사장은 한문화를 몸으로 체험하고 나누기 위해 선비춤을 배웠다. 영남춤의 명인 박경랑 선생에게서 사사 받은 후 그는 함께 춤을 배운 도반들과 모임이 있는 날에 선비춤을 추며 한문화의 형식과 즐기는 재미를 전달하는 역할을 해왔다.

He expressed the pleasure of those days when he returned to the life of Sunbee, who only read and thought about the text and lived with his mother in Andong.
“In the first chapter of the『The Analects of Confucius』,
‘學而時習之, 不亦樂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

In those days he lived in learning and chatting with his friends who came from time to time, and delighted in the widening of his knowledge world. And even if nobody knows herself, he read the old classics he read long ago and measured the meaning and met the knowledge of the old one and added the depth of their knowledge. In the meantime, he lived with his own sense of the meaning and value of his life and learning.
In 2007, when he read and studied Korean books more deeply into the Korean culture, Mr. Kwon Oh-chun learned to dance in order to experience and share the Korean culture. After studying with the master of the Yeongnam dancing, Mr. Park Gyeong-rang, he has played a role in conveying the format and enjoyment of the Korean culture by performing dance on the day of the meeting with the classmates who learned to dance together.

지난 20여 년 동안 동양의 고전과 이 땅에 성리학의 꽃을 피운 학자들의 문집을 읽고 그 뜻과 철학을 새기며 살아온 권오춘 이사장은 요즘 고전에 대한 강의를 하며 한국의 전통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배우고 익히며, 노장사상의 지혜에 따라 살다
자신이 목표로 한 고전을 거의 읽고 통독하며 오래 전부터 세운 뜻을 실천한 권오춘 이사장은 2003년 즈음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혼자서 고서와 한문 지식서를 강독하는 일을 끝내고 스승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 즈음의 자신의 심경에 대한 권오춘 이사장의 고백이다.
“혼자서 고서와 한서의 내용을 파악했지만, 넓게 그 뜻을 헤아려보기 위해 스승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때 한국을 대표하는 한학자 성백효 선생을 만나서 『논어』, 『맹자』, 『시경』, 『서경』 등을 다시 읽으면서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때 함께 공부하는 제자들이 한서를 번역해서 후손들이 읽은 수 있는 한글 기록화 작업을 하자는 뜻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2008년 즈음 성백효 선생 문하의 제자들이 각자 기부금을 각출, 동양의 역사지식을 다시 정립한다는 뜻에서 해동경사연구소海東經史硏究所를 설립했다. 이후 연구소는 후학을 양성하는 한서 강역 교육을 수행하는 한편 고서 도서관의 서적 번역작업을 하고 있다.

Learn and experience, live according to the wisdom of ancestor’s ideology
Mr. Kwon Oh-chun, who has read the classics he has aimed to read long ago, sought a new way around 2003. He decided to finish studying the book and alone and search for the teacher. It is the confession of him about his own heart.
“I knew the contents of classics by myself, but I went out to find the teacher to try to understand the meaning widely. At that time, I met with a Korean scholar, Professor Sung Baekhyo and read a wide range of perspectives by reading 『Analytical Theory』, 『Tenacles』, 『Book of the songs』, 『Book of the scenenary』. At that time, the disciples studying together translated classics and made it possible for the descendants to read it the Korean language.”
So, by the time of 2008, Professor Sung Baek-Hyo’s disciples made their contributions, and established the Haitong Institute for the Korean Studies. Since then, While carrying out tanslating education, the Institute is also working on translating books of the libraries of Korean Studies.

권 이사장은 병산서원 만대루에 올라 그 옛날 선비들이 우국충정으로 걸어간 삶의 길을 더듬으며 배우고 익히는 선비의 길을 다짐한다

요즘 권오춘 이사장은 전국 각지에서 노장사상 강의를 하며 동양사상의 진수를 전파하고 지혜를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23년 동안 한서를 읽고 동양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에 심취해 살아온 삶과 세월이 이즈음의 그의 일이 된 것이다.
자연주의 철학을 견지한 권오춘 이사장은 평소 흰 한복을 입고 염색하지 않은 백발을 유지한다. 그는 꾸미거나 부자연스런 것을 거부한다. 자연주의자 권오춘 이사장은 자신의 삶의 자세와 마음을 담은『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을 좋아한다.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그는 그 뜻을 헤아리며 말했다.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을 버리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생활이 지극히 이롭다는 뜻입니다.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현대인은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마련이지만,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순리에 따라 결국은 세상 일이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뜻을 내포하는 삶의 이치를 강조하는 말입니다.”
권오춘 이사장은 지난 60여년 노자의 사상을 따라 살았다. 무엇보다 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욕심부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자족하는 가운데, 이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즐거움을 누리고 산다는 것이다. 양평 초은당에서 누리는 그의 삶에 여유와 멋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Nowadays, He is giving lectures throughtout the country and spreading the essence of oriental history and sharing wisdom. The life and the years that have lived through reading the classics for 23 years and devoted to the natural desire of nature in the Orient have been his work these days.
Mr. Kwon Oh-chun, who maintains a philosophy of naturalism, usually keeps a white hanbok and a gray hair that has not been dyed. He refuses to be adorned or unnatural. Naturalist Mr. Kwon Oh-chun likes to read in the morality of Laotzu, which reflects the attitude and mind of his life.
‘实 其 腹, 弱 其 志, 强 其 骨’
He talked about the meaning.
“It means that life that makes your body healthy is most advantageous. In a capitalist competitive society, modern people have a complicated mindset, but they emphasize the meaning of life, which implies that things eventually flow naturally according to the truth.
He lived up to the idea of the Laotzu for the past 60 years. Above all, what is important in his life is not to be greedy, but to live and enjoy the pleasure of sharing with the people around him while being satisfied with what is given to him. That is why Choeun-dang is a place to enjoy his life in this age.

이황 선생의 후학 양성의 꿈을 담은 도산서원에서 권 이사장은 자신이라도 이 땅에서 싹튼 학문을 갈고 닦아, 이 땅의 후세들이 한문화의 깊이와 진리를 배워 실천하는 계기를 만들기를 염원한다

2천5백 년의 지혜 『논어論語』 핵심 사상 ‘인仁’, 통합적 사고의 보고
성리학이 꽃을 피운 안동에서 자란 권오춘 이사장은 동양사상의 진수이자, 2천5백 년의 지혜가 담긴 공자의 『논어論語』는 혁신의 시대에 더할 수 없이 귀한 지식서라고 강조한다. 『논어』의 핵심 사상을 권오춘 이사장은 인仁으로 표현했다.
“논어의 가르침은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지혜를 제시합니다. 가르침의 핵심은 인仁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게, 스승은 스승답게 처신하며, 각자가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바로 인입니다. 목이 마른 사람에게는 물을 주고,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주는 것이 바로 인仁입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기본적으로 음양을 지니고 있다. 사물을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른 것일 뿐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전체를 보는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권오춘 이사장은 세상 모든 존재를 통합적 사고로 보고 이해하는 능력이 세상을 제대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The Wisdom of 2,500 Years, Inhn(Perfect Virtue), Core thought of『The Analects of Confucius』
Mr. Kwon Oh-chun, who grew up in Andong, where Confucianism blossomed, emphasized that Confucius’s 『The Analects』, which is the essence of oriental history and contains 2,500 years of wisdom, is an invaluable knowledge book in the era of innovation. He expressed the core idea of 『Analects』 as Inhn(Perfect Virtue).
“The teachings of 『The Analects』 present the wisdom needed to make a good relationship between people. At the heart of the teachings is Inhn仁. It is a Inhn that father behave as a father has to do, and the teacher behave as a techer has to do, and each one is flexible and responsive. It is Inhn that gives water to the thirsty person and gives rice to the hungry.”
All beings in the world basically have yin of negative side and yang of positive side. It depends only on what angle you look at the object. But the important thing is that you have eyes to see the whole. In this regard, Mr. Kwon Oh-chun’s ability to see and understand all things in the world as integral thinking is essential to the survival of the world.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융복합의 사상이 『논어』의 인仁이라 규정하는 권 이사장은 21세기 한국인들의 새로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시대의 철학을 한국의 전통문화 속에서 구현하기를 기대한다 (도산서원에서)

『논어論語』의 인仁사상은 결국 통합을 강조하는 불교의 화엄華嚴 사상과 상통한다는 점을 권오춘 이사장은 다시금 강조한다. 그런 측면에서 우주의 이치를 통달한 선인들의 사상의 핵심이 곧 자연의 질서와 우주의 이치를 따라 살아가는 21세기적 지혜임을 강조했다.
“나무의 잎을 보면 뿌리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인문학적 사고를 하면 사물의 이치를 근원적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나의 생명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생명도 소중하게 여기며 서로 공존공생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인간이 지상에서 살아가면서 주지하고 실천해야 할 일이 아닐까요?”
전통문화는 오래된 지혜이며, 세상의 이치다. 이 땅의 전통문화에서 21세기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지혜를 발견하고 혁신 컨텐츠로 만드는 것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일이다. 권오춘 이사장은 혁신의 본질을 인仁의 사고와 실천정신으로 터득하는 가운데 그 이치를 자신의 현실 삶에서 구현하며 동시대인과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 오늘 그의 60여년 삶을 이해하면서 21세기 초반 혁신의 길을 가야 하는 한국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지향점을 파악해 본다.

Mr. Kwon Oh-chun reiterates that Inhn’s idea of 『The Analects』 overlaps with the Buddhist idea of Hwaeom thoughts that emphasizes integration. In this respect, he emphasized that the core of the ideas of the ancient scholars who mastered the unity of the universe is the 21st century wisdom that follows the natural order and unity of the universe.
“You can see the state of the roots by looking at the leaves of the tree. Humanistic thinking can fundamentally make sense of things. Just as my life is precious, I would like to make a world where people can live a life that coexist and sympathize with each other.
Traditional culture is old wisdom, and it is the foundation of the world. Discovering the new wisdom that the 21st century needs in the traditional culture of this land and making it innovative contents is the job of people living today. Mr. Chairman Kwon Oh-chun lives in a life of realizing the essence of innovation in his real life while sharing the essence of innovation with his thinking and practice spirit. Today, we understands his 60-year life and sees the korean Heritage-oriented point that Koreans have to pursue the path of innovation in the early 21st century.

5 COMMENTS

  1. 편리와 속도를 중시하는 이 시대에 한복을 입고 한옥에 기거하며 한문화의 진수를 담은 고전을 익히고 실천하는 권오춘 이사장의 삶이 부럽습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한문화를 즐기고 생활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비워고 그런 삶을 추구하는 길을 찾고 싶습니다.

    좋은 사진과 멋진 글에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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