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에디슨에 가면 SYK 커뮤니티센터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 손을 잡고 미국으로 이민간 린다 강 대표가 아버지의 꿈을 성취한 장소다. 풍요로운 삶을 꿈꾸며 가족 이민을 간 한 소녀는 자신과 가족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열심히, 성실히 살아가면서 뉴너지에서 가장 실력있는 회계사로 성장했다. 병원빌링 전문회사를 운영하며 자리를 잡은 후 동네 한인들의 모임장소 커뮤니티센터를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는 린다 강 대표의 나눔의 정신과 생활방식을 따라가본다.

When you go to Edison, New Jersey, you can see the SYK Community Center which is the place where Linda’s father’s dreams have been achieved. Linda Kang, who took her father’s hand in elementary school and immigrated to the United States, dreamed of a prosperous life, grew up as the most talented accountant in the New Jersey. She worked hard and earnestly for the affluent life of her and her family. After establishing a successful hospital billing company, she began to follow the spirit of sharing. And in 2009, she began to build the center and run a community center for local Korean residents.
Editor Lee Ji-yeon | Photo Lee Jun

뉴저지 에디슨 올슨 애버뉴에는 한국에서 이민 온 노년층들이 모국애를 달래며 주변의 이민자들과 교류하는 장소가 있다. 뉴저지에서 회계전문 회사 R and C Medical Biling사 설립자인 린다 강 대표가 지난 2013년 9월 오픈한 SYK 한미커뮤니티센터다.

Olsen Avenue, in New Jersey Edison has a place where elderly immigrants from South Korea communicate with immigrants around the country in a way that appeals to their motherland. Linda Kang, the founder of R & C Medical Biling, an accounting firm in New Jersey, is the representative of SYK Korean American Community Center, which was opened in September 2013.

‘성공한 자식이 이웃을 위해 커뮤니티 센터 건립하는’ 어버지의 꿈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우리가 사는 마을의 유대인 커뮤니티센터를 보게 되었어요. 그때 아버지께서 “내 자식 중에 누가 성공해서 한국인들을 위한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어 운영하면 좋겠다.” 라고 말씀하신 것을 늘 기억하고 살았습니다.”

미국에서 의사의 꿈을 키운 린다 강은 의대 8년을 공부하는데 학비 때문에 의대를 포기하고 장학급과 생활비가 주어지는 뉴저지 로커스 대학 회계학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 진학 후 고모가 하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여 대학 3학년 즈음 몇 만 달러의 돈을 모았다. 그 돈으로 린다 강은 부동산 투자를 시작하여 부동산 전문가가 되었다.

그리고 대학에서 회계학을 배운 린다 강은 대학 2학년부터 뉴저지 병원에서 회계와 관리 업무를 배웠다. 린다 강은 빈틈없고 완벽한 병원 회계관리 업무를 하며 동네 의사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다. 졸업 후 린다 강은 의사들의 파트너 회계사가 되어 뉴저지 최고의 병원빌링 전문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며 뉴저지 일대에서 존경받은 여성 회계사로, 재정적으로도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었다.

아버지의 꿈을 어느덧 자신의 꿈으로 간직하고 살아온 린다 강 대표는 자신이 하는 사업이 번창하여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후 센터 설립 작업에 들어갔다. 그래서 지난 2009년 센터 설립을 위해 에디슨의 사무실 근처 2 에이커 부지를 매입한 후 허가를 취득하고 기존 건물의 리모델링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년 동안 자신이 직접 인테리어 작업을 한 후 지난 2013년 커뮤니티센터를 오픈했다 .

‘The dream of a father who succeeds in building a community center for his neighbors’
“When I was a kid, I saw a Jewish community center in the town where my father and our community live. At that time I heard my father said, “When one of my children succeeded in the world, I hope he is to create a community center for Koreans.” I always remembered my father’s dream when I grow up.”

Mrs. Linda Kand, who raised her dream of a doctor in the United States, went on to the Department of Accountancy at New Jersey Locus University where she gave up medicine for her tuition and was given a kindergarten and living expenses. After college, she worked part time at her aunt ‘s restaurant and collected a few tens of thousands of dollars during college year. With that money, she began investing in real estate and became a real estate professional.

Mrs. Linda Kang tained accounting and management at a New Jersey hospital from the second year of college. She has done a thorough and complete hospital accounting management task and has received the trust of local doctors. After graduation Linda became a partner accountant for doctors, establishing and running the best hospital billing company in New Jersey, becoming a respected female accountant in New Jersey and a financially successful career.

Linda, who lived with her father’s dreams in her own dreams, entered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the center after her business was prospered to some extent. Therefore, she purchased a 2 acre site near Edison’s office for the centr, then obtained permission and began remodeling the existing building. After one year of her own interior work, she opened a community center in 2013.

아버지 유품을 전시한 강성용 기념관

한인들의 고국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센터내부

이벤트홀

도서관

식당

뉴저지 에디슨 한인들의 친교와 배움의 장소
SYK 커뮤니티센터 내부에는 센터의 의미를 직감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과 공간이 있다. 사무실 문을 열면 린다 강 대표가 선친을 기리는 강성용 기념관을 마주한다.
“평소 아버지가 기거하시던 방의 가구들과 추상화를 보면서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 입니다. 센터 내에서는 한국에서 온 어르신들이 고국을 떠올릴 수 있는 한국적인 것들을 장식하여 즐거운 추억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SYK 커뮤니티센터 내에는 2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홀을 비롯한 식당, 컴퓨터 룸, 어린이방, 미팅룸 등이 있다. 센터에서는 연중 컴퓨터 교육, 할머니 네일 서비스가 진행하는 한편 매주 목요일 한글 수업 등 한국인 1, 2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주중 점심 시간에는 지역 어른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린다 대표는 크리스마스나 어버이날 같은 특별한 날에 어른들을 초청해 파티를 열기도 한다.
“애초 50분 정도가 올 것으로 생각했으나 100여 명의 손님이 몰려와서 너무 복잡했던 적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우유와 고구마를 쪄놓고 노인들이 마을 나들이하듯이 오셔서 친구도 사귀고 맛있게 들고 가시도록 하고 있습니다.”

A place of friendship and learning among Korean in New Jersey, Edison
Inside the SYK Community Center, there are various facilities and spaces that make sense of the center’s meaning. We can meet the room of Mr. Kang Sungryung’s memorial room which was established to honor her father.
“In order to celebrate the will of the deceased while watching the abstraction with the furniture of the room where the father usually lived. Inside the center, the elders from Korea were able to meets Korean things that could remind their homeland so that they could have fun memories.”
The SYK Community Center has a hall, a computer room, a children’s room, and a meeting room that can accommodate up to 200 people. In the center, computer training and grandmother’s nail service is held throughout the year, while Thursday’s Korean classes are held for Korean first and second generations. At lunchtime during the week, food is provided to local’s Korean American adults. In addition, Mrs. Linda also invites adults on special occasions such as Christmas or Parents Day to open a party.
“I thought it was going to be about 50 people in the first place, but there were about 100 people coming in and it was too complicated. In the winter, milk and sweet potatoes are fattened, and the elderly come to town as they go out to make friends and enjoy them.”

R and C MBC에서 운영하는 설저리 센터

꿈의 길에서 가족,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며
유년 시절 살림이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자란 린다 강 대표는 가족과 자신을 위해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꿈을 키웠다. 그 즈음의 기억을 린다 강 대표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새삼스럽게 끄집어내서 말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와 함께 맨해튼에 가서 그레이스란 이름이 새겨진 빌딩을 보았습니다. 제가 커서 ‘린다’라고 바꾸겠다고 하니 아버지께서 ‘부자일수록 마음고생이 많단다. 네가 필요한 만큼만 가지면 된단다.’라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풍요한 삶을 꿈꾸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 린다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의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린다 강 대표는 빈틈없는 성격의 아이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녀는 성실하고 목적 있는 삶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었다.
“저는 미국에 와서 부자로 사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제 꿈을 이루면서 아버지의 꿈도 이뤄갑니다. 아버지의 바람처럼 남들과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린다 강 대표가 자신을 버리고 오로지 남을 위해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변 사람들의 상담사 역할을 하는 린다 강 대표는 항상 주장한다.
“어떠한 경우든 시간의 50%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 50%를 가족과 이웃, 그리고 사회를 위해 사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는 나 자신을 위해 50%의 시간을 사용하기 때문에 항상 행복합니다.”
그녀는 아무리 바쁜 시간이라도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일이 있으면 그것에 우선 순위를 둔다.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 전시가 열리는 소식을 들게 되면 만사를 제치고 맨해튼의 박물관이나 갤러리로 달려간다. 무엇이 중요하고 소중한가를 알고 있는 그녀이기에 일에서도, 생활에서도 끊임없이 에너지와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이리라 .
어떠한 경우든 자신을 잃지 않고 자식이나 남편을 돌보듯 자신을 돌보아야 한다는 린다 강 대표. 그녀는 미국에서 풍요의 꿈을 이루고 주변 사람들에게 풍요한 삶을 살 수 있는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멘토 역할을 기꺼이 하고 있다.

Living with family and neighbors in a dream way
Mrs. Linda Kang grew up in a house where her parents did not have a lot of salary when she was a child. She developed a dream of living a prosperous life for her family and herself. Mrs. Linda Kang spoke out of the memory of those days with her lustrous eyes.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I went to Manhattan with my father and saw a building with the name Grace. I talked to my father. “I am going to change the buildings name to ‘Linda’. Upon hearing my saying, my father says, ‘The richer the heart, the harder it is. You had better have as much as you need.”
Mrs. Linda lived harder than anyone else since she came to the United States with her father’s hand in dreaming of a rich life. Receiving his father’s expectations and interest, she grew up to be a child of intense character. And she achieved her dream through a sincere and purposeful life.
“I have come to America and have a dream of being rich. And fulfilling my dream, my father’s dream is achieved. I am trying to live a happy life with others like the wind of my father.”
However, if Mrs. Linda thinks that she is the one who forsakes her and for the sake of others, it is misunderstood. Linda, who acts as a counselor for other people, always insists.
“In any case, the person who uses 50% of the time for onwself can say that one lives one’s own life. The remaining 50% is needed to live for families, neighbors, and society. I am always happy because I use 50% of the time for myself.”
So. she puts a priority on anything she wants, no matter how busy she is. When she hear about the exhibition of her favorite paintings, she run to Manhattan’s museums and galleries. Because she knows what is important in her life, she will always have energy and ideas in her work and life.
In any case, Mrs. Linda Kang should take care of herself as she cares for her child or husband without losing herself. She is a spiritual and material person who can fulfill her dream of abundance in America and she is willing to act as a mentor to support her families and neighbors.

린다 강 대표는 투명하고 빈틈없는 업무 처리로 지역 최고의 회계사로 인정받고싶다

뉴저지 바닷가에서 가족들과 즐거운 휴식시간을 보내는 린다 강

뉴욕 맨해튼에서 전시가 열리는 구겐하임에서

뉴저지 에디슨에서 100명 가족 이뤄
“미국에 이민 온 지 44년째가 됩니다. 그동안 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 친척 중 미국으로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와서 공부해서 현지에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집안의 어른들도 많이 와 계십니다.”
린다 강 대표의 가족사랑은 초청 이민과 미국 생활 챙기기로 표현된다. 그녀는 어떤 가족이든 미국에 와서 살고자 하는 의사가 있으면 적극적으로 초청해 현지에서 자리를 잡도록 물심양면으로 돕곤 한다. 그 이유에 대해 린다 강 대표는 설명했다.
“그것이 아버지의 꿈이었고 또한 저의 꿈이기도 합니다. 저 혼자 행복하게 잘 사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다 함께 잘 사는 것이 더 큰 기쁨이라는 것을 살면서 터득했습니다.”
언젠가부터 함께 하는 삶의 묘미를 터득하고 자신의 삶 속에 구현하고 있는 린다 강 대표는 말한다.
“길을 걸어가다가 누가 나에게 무엇인가를 주면, 주는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고 고맙다고 말하고 받습니다. 그것이 내가 필요한 것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를 생각해주는 상대의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죠.”
자신만큼 상대의 마음을 읽고 받아주며 진정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자 하는 린다 강 대표. 그녀가 만들어 가는 나눔의 삶이 뉴저지 에디슨을 넘어 미국의 다른 한인 마을로, 그리고 한국으로 널리 전파되어 따뜻한 미풍이 우리 시대의 사람의 마을에 가득하기를 기대한다.

Making 100 families in New Jersey, Edison
“I have been lived in the United States for 44 years. In the meantime, if my father and mother’s relatives wanted to come here and live forever, I tried to invite them and support them to study and live hers. There are a lot of adults.”
Linda Kang’s family love is expressed through invitation immigration and support for their American life. If he has a will to live in the United States, she eager to invite him and support his living here. Mrs. Linda explained the reason.
“It was my father’s dream and also my dream. If I live happily alone, it’s good. But I think it’s a great pleasure to live well together. I got it.”
Mrs. Linda Kang, who has learned the charm of living together and embodies her life, says.
“Walking down the street, who gives me something, thinks of the heart of the giving and says thank you. I accept it. It does not matter whether I need it or not. I think the mind of the opponent is more important.”
Mrs. Linda Kang wants to live the world with a warm heart, who reads and accepts other’s mind as much as she does. We hope her way of life goes beyond New Jersey Edison and spreads to other American villages in the US and South Korea. We expect the land of people’s villages to be full of warm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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