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과학적인 문자 한글의 애초 모습과 형성과정을 연구하는 한글연구가 반재원 소장의 길을 따라가 본다. 그의 길 곁에 우주 천체의 원리와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목민관의 목소리와 삶의 열정이 보인다. 우리 시대 거대담론의 일환인 인문학적 사고와 행동하는 지성인의 역할을 통해 훈민정음이 지니는 우주적 의미를 살펴본다.
에디터 이지연 | 사진 이재우

‘今正音之作
이제 훈민정음을 만드는 것은
初非智營而力索
처음부터 슬기로 마련하고, 애써서 찾은 것이 아니라
但因其聲音而極其理而已.
다만 그 (원래에 있는)성음(의 원리)을 바탕으로 이치를 다한 것 뿐이다.
理旣不二 則何得不與天地鬼神同其用也.
(음양의) 이치가 이미 둘이 아니니 어찌 천지 자연, (변화를 주관하는) 우주의 섭리(鬼神)와 그 쓰임을 같이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正音二十八字 各象其形而制之.
훈민정음 스물 여덟자는 각각 그 원리를 본떠서 만들었다.’

『훈민정음 해례訓民正音解例』, ‘제자해制字解’에 등장하는 글귀다. 이처럼 훈민정음은 이 땅의 사람들이 사용하던 말을 기초로 해서 우주의 이치에 입각해 문자를 완성한 것이다. 세종대왕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천문 지식과 지혜를 토대로 훈민정음을 만든 계기와 그 의미에 대해 알아보면 우리 말에 담긴 체계와 우주의 비밀을 알 수 있다.

2008년 경기도 여주 세종대왕릉에서 개최된 훈민정음 반포 562돌 기념 제40회 세종문화 큰잔치에서 훈민정음 반포문을 원래의 발음으로 재연, 낭독하는 반재원 소장
반 박사는 이 반포문을 10년동안 낭독해오고 있다

40년 훈민정음 연구, 세종대왕의 창제과정과 체계 밝혀
지난 40년 동안 우리 말, 우리 역사의 기원을 밝히고 알리는 일을 해온 반재원 훈민정음연구소 소장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동기에 대해 설명했다.
“1413년 세종대왕이 나이 17세에 재위에 오른 이후 동양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우리의 하늘을 찾겠다는 뜻을 세웠습니다. 이 때 장영실, 정인지, 정초 등 뛰어난 천문학자와 장인들이 세종대왕을 도와서 천문 복원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은 천문학을 연구하면서 다시 뜻을 세웠습니다.”

훈민정음 28자의 생성원리와 체계를 밝힌 천문정음도

‘우리 하늘의 오행 운행원리에 따라 문자를 창제하다’
‘우리의 경도와 위도의 관점에서 우리의 하늘을 찾았으니, 이제 우리의 문자를 만들자!’

천체의 운행 원리를 밝힌 세종대왕이 세운 포부다.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백성들에게 올바른 우주관을 제시하는 차원에서 시작된 세종대왕의 비전은 결국 30년의 연구를 통해 훈민정음을 탄생시킨 것이다. 세종대왕이 반포한 훈민정음은 현재의 한글과 체제가 좀 다르다. 그 이유에 대한 반재원 소장의 설명이다.
“초성과 중성의 배열순서가 지금의 훈민정음과 다릅니다. 그 이유는 오행의 운행원리를 도식화한 하도와 중요한 별자리를 도식화한 낙서 천문도의 이론적 배경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민족은 ‘천문의 소리를 말하는 천손 민족’
이런 이유 때문에 한글은 천문의 소리라 일컫는다. 하늘의 소리를 말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한민족을 천손의 민족이라고 한다. 한글의 중성 8자는 태극8쾌와 권역과 연관되어 있다. 중성의 우주적 기가 지니는 의미에 대한 반재원 소장의 설명이다.
“아야, 어여, 오요, 우유 등의 중성 8자는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소리입니다. 오는 맑은 소리이며, 우는 어두운 소리를 나타냅니다. ㆍ는 북극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한글학자 정인지는 훈민정음 서문에서 ‘자연에서 이루었다成於自然’라고 했으며 ‘천지자연의 소리가 있으면 반드시 천지자연의 무늬가 있다有天地自然之聲 側必有天地自然之文’라고 하였다 그 말의 의미에 대한 반재원 소장의 부연이다.
“이 말은 우주 천체의 운행원리를 나타낸 하도낙서 천문도와 창조주의 표상이자 천문도인 태극도에 부합하는 문자를 창제하였다는 말입니다. 또한 소리를 내는 성문이 있다고 했으며, 이는 소리의 그림자, 무늬, 흔적, 자취를 찾아내서 문자를 만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재위 후 30년 개발과정 거쳐 훈민정음 창제하고 다듬어 1446년 반포
재위에 오른 즉시 천문의 정립과 훈민정음 연구·발명에 들어간 세종대왕은 30년의 연구과정을 거쳐 1443년 28자를 완성했다. 이후 3년 동안 글을 사용해보고 다듬은 후 1446년 훈민정음을 반포하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문자와 천지인을 바탕으로 하는 음양오행에 대해 설명했다.
훈민정음의 모음은 음양의 원리를 기본으로 만들어졌다. 기본 모음을 보면 ‘ㆍ’는 양陽인 하늘天을 본 떠 만들고, ‘ㅡ’는 음陰인 땅地을 본 떠 만들었다. 그리고 ‘ㅣ’는 음과 양의 중간자인 인간人의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

훈민정음 초성과 중성의 배열순서

동양천문학 28개 별자리 기초해 만들어진 훈민정음 28자
동양천문학에서 별자리는 28자리다. 별자리에 기초하여 훈민정음 제정 당시 자음 11자, 모음 17자를 기초로 한글 28자가 만들어졌다. 세종대왕이 개발해, 백성들에게 돌려준 훈민정음은 천문학을 기초로 만들어진 우주적 기와 이치의 결합으로 형성된 과학이다. 천문학자인 세종대왕은 천문에 기초해 가장 우주적인 글자를 창제한 것이다.
즉위 후 세종대왕은 동지사를 중국에 보내 달력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제공했다. 그러나 중국식 달력이 우리의 절기와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세종대왕은 우리의 자연과 부합하는 달력을 만들기 위해 천문학 연구에 돌입했다. 그 일환으로 제대로 된 우주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자 했던 세종대왕은 국립천문대 규모를 확장했다. 당시 30명이던 인력을 80명으로 증원했다. 이 숫자는 당시 명나라보다 더 많은 규모였다.
예로부터 천문학은 제왕학으로 우주의 비밀을 열고 하늘과 소통하는 제왕의 학문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세종대왕은 재위 22년 훈민정음 반포 전 천문학의 비밀을 밝히는 『칠정한 내외편』과 『문자』를 완성했다.

천문의 운행에 따른 초성과 중성의 배열순서
위의 그림에서 보듯 훈민정음 첫소리 순서는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5행 상생의 순서를 따른다. 앞의 ‘초성 5행 방위 낙서’의 화살표 방향으로 ㄱ-묘, ㅋ-인, ㆁ-진, ㄷ-오, ㅌ-사, ㄴ-미, ㅈ-유, ㅊ-신, ㅅ-술, ㆆ-자, ㅎ-해, o-축의 수서로 배열되었다.

[훈민정음의 초성 배열 순서] ㄱ, ㅋ, ㆁ, ㄷ, ㅌ, ㄴ, ㅈ, ㅊ, ㅅ, ㆆ, ㅎ, ㅇ[훈민정음의 중성 배열순서] ㆍ, ㅡ, ㅣ,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한편 『주역』 계사전에 의하면, “하도는 다섯 자리가 서로 얻으며, 각각 합하니 하늘의 수 25와 땅의 수 30으로 모두 55이다. 이것이 변화를 이루는 데, 그것은 귀신이 행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반재원 소장은 여기서 ‘귀신이 행하는 것’의 의미는 ‘천문의 운행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2004년 『훈민정음 해제』발표, 연구활동 정리
교사로 재직하며 지난 40년 동안 낮에는 학교에서 가르치고, 밤과 휴일에 우리 역사 연구자로 살아온 반재원 소장. 그의 훈민정음 연구 계기를 들어보면 인생이 모두 우연이 아닌 운명적인 여정이란 생각이 든다.
“큰 아이 이름을 지으러 갔다가 제 사주를 본 철학자가 저에게 동양철학 연구를 권하셨어요. 그 때 주변에 훈민정음을 연구하던 분을 소개해주셔서 만나게 되었죠. 30세 초반에 『훈민정음 번역본』을 만나서 창조원리가 동양철학에 기초하는 것을 알고 그 분과 함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1985년 직접 훈민정음연구소를 개설하여 연구를 거듭한 반재원 소장은 지난 2천 년대 초반 연구의 맥을 완성하고 연구집 『훈민정음 창제원리』를 발표했다. 이후 계속 수정,보완을 거쳐 개정증보판 책도 내고 시중에서 강의도 했다.
평생 교편을 잡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면서 훈민정음 연구의 길을 멈추지 않은 그에게도 갈등의 순간은 있었다. 반재원 소장은 당시의 솔직한 심경을 고백했다.
“때로는 ‘내 전공도 아닌데,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는 자문을 하면서 갈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몇 번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결국은 다시 연구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이 것이 나의 운명이자 소명이라고 여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학교를 은퇴한 이후 반재원 소장은 다양한 각도로 훈민정음 연구와 역사 연구를 지속해왔다. 이제는 자신의 연구에 큰 보람을 느끼며 다음 세대를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40년을 훈민정음과 상고사 연구에 바친 반재원 소장은 이제 이 땅에 태어나 자신이 해야할 소임을 다한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세종대왕 정신으로 음운정책 바로 세워 홍익인간 정신 실천해야
“세계적인 글자 훈민정음의 실체와 체계를 밝힌 것에 보람을 느끼며 기능성 한글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만든 한글, 문화는 우주와 소통하고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고 따르는 것이 그 핵심입니다. 이제 지구촌이 우주의 질서와 자연 질서를 존중하고 인간과의 소통체계에 관심을 기울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천손 민족인 한국입니다.”
반재원 소장은 그런 측면에서 자신이 연구에 보람을 느끼는 한편 책임감을 갖는다.
“이제 우리가 세종의 정신을 살려, 세종대왕의 옛 글자를 살려 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정부에서 이 일을 제대로 해서 음운정책을 바로 세워야 합니다. 훈민정음 발음기호를 사용하면 세계 모든 언어를 표기할 수 있습니다.”

세종의 홍익인간 정신을 21세기 초반 한국인이 실천해야 한다고 반재원 소장은 강조한다. 그는 한글을 한류문화로 확장하여 지구촌 인류와 교류하는 것이 홍익인간 정신을 널리 실천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40년 한문화 연구자 반재원 소장의 의미있는 제안에 정부 당국자와 연구자들이 귀를 기울여 한글의 세계화를 위한 새로운 길을 열어가기를 기대한다.

반재원 소장은 한류 열풍이 일고 한국의 정신문화가 세계인에게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아름다운 우리 한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며 한문화 민족의 일원으로 자부심을 갖는다

동양철학에 매료되어 걸어간 인생길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반재원 소장은 초등학교 시절 면에서 이름난 학자로 손꼽혔던 집안 아저씨를 존경하며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아저씨 서당에 시간을 보내곤 했던 반재원 소장은 서재에 꽂힌 책을 읽으면서 동양사상의 존재를 알고 되었고, 탐구할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그래서 대학 진학 무렵 철학 전공을 계획했으나, 집안 어른들의 반대로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에게 유년시절 뇌리에 인상깊게 박힌 동양철학에 대한 관심과 이론은 그의 인생에서 떼놓을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었다. 그런 탓에 첫 아이의 탄생과 더불어 우연히 이어진 훈민정음과의 조우는 그에게 동양철학의 길로 인도했다. 40년 동안 훈민정음과 홍사한은 등 한문화와 관련된 사상과 철학을 연구한 그는 자신의 연구를 다음 세대에서 더욱 완성도를 높여가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앞으로 훈민정음연구소를 부소장 김슬옹 박사에게 일임하여 세계로 뻗어나갈 한글한류를 지원해나갈 계획이다. 한국의 문화적 컨텐츠가 우주와 소통하고 우주의 질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시대를 열어가는 전초기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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