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필법의 세계 최초 120체 천자문의 서예가&작가 심은 전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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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추구하는 세계가 다르다. 우리 시대에 서예계에 숱한 세계 최초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심은 전정우 선생이 추구하는 작가의 길을 통해 필법의 세계와 창작의 고통과 성과를 가늠해본다.

Every person has a different world to pursue. Shim, who is making the world ‘s first history in the world of calligraphy in our age, gathers the painfulness and achievement of the writing world and creation through the way of the writer pursued by JEON JEONG – WOO.
Editor Hyun Jihae | Photos Park Bo-hyung

일필휘지로 마치 천인이 쓴 듯한 다양한 필법을 발휘하는 우리 시대 최고의 서예가 심은沁隱 전정우全正雨옹. 올해로 32년 째 오로지 서예와 한자를 통한 창작활동을 해온 그의 작업은 이제 인간의 경지를 넘어서 신의 경지에 이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작업을 이렇게 칭한다.
‘글씨에 있어서 심은은 천재다. 심은의 글씨는 인간의 영역과 귀신의 경지를 넘어선 귀재다’—한국 시인협회 최동호 회장

He is the best calligrapher of our time who shows various ways of writing like an idiocy, as if it is written by an idiocy. This year, his work, which has been doing calligraphy work through Chinese calligraphy for 32 years only, goes beyond human beings to the level of God. So people call his work like this.
‘It’s a genius about writing. Your writing is beyond the realm of the ghosts’ — Chairman Mr. Choi Dong Ho of the Korean Poet Society

강화 심은미술관 앞에서 전정우 선생

세계 최초로 120서체 천자문을 6종류 쓴 120가지 천자문
심은은 서예계에 여러 가지 최초의 족적을 남기고 있다. 그는 서예에 입문한 2004년 세종문화회관 전시회를 끝낸 후 3개월 만에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의 5가지 서체의 천자문을 썼다. 이는 그에게 하나의 기록이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천자문은 300년대에 양나라 주흥사가 무제의 명령에 의해 최초로 지은 대 서사시입니다. 천자문은 한자1000자로 1구 4자의 사언 고시 250구로 되어 있습니다. 2004년 전시회를 마치고 역사적으로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 등의 5가지 서체로 천자문을 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10년 정도 공부를 해서 시도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일단 붓을 들자 3개월 만에 다 써버렸고, 그 이후는 다시는 그렇게 쓸 수 없게 되었죠.”
역사적으로 천자문을 남긴 명필가의 사례가 있다. 원나라 조명부 6체, 명나라 문진명 4체, 당나라 구양순 3체, 안진경 1체, 한국의 한석봉이 2체, 일본의 이다부 3체 등이다.
이후 심은의 천자문 쓰기 작업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8년 동안 120가지 서체로 천자문을 쓰는 한편, 각 서체당 종류만도 6가지가 된다. 그래서 총 120가지 천자문을 썼다. 자신이 이미 발표한 서체로 천자문을 써 온 시간이 이어졌다. 심은이 쓴 120가지 천자문은 종류를 헤아리기가 벅차다.
광개토왕비문 천자문, 갑골문 천자문, 금문 천자문, 추사 행서 천자문, 한석봉 천자문, 목간 천자문, 왕희지 천자문, 김인후 초서 천자문 등 120자에 포함된 천자문은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서체들이다. 120가지 천자문을 보면 한 사람이 썼다고는 도저히 믿기 어렵다. 이러한 궁금증에 심은은 붓을 잡았을 때의 경지에 대해 솔직히 표현했다.
“아침 9시부터 밤 11시까지 작업실에서 글을 씁니다.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듯, 몸과 마음이 하나가된 듯, 글을 쓸 때는 거의 몰아지경이 되어 붓과 내 몸이 하나가 되는 것 같습니다.”

The world’s first 120 kinds of 1000s
Mr. Shim Eun leaves many different footprints in the calligraphy. After finishing the exhibition of Sejong Cultural Center in 2004, which he started to calligraphy, he wrote the text of five fonts in three months. This was a record for him. Let ‘s listen to him.
“In the 500s, the Ch’enjaemun was the first written by the two nations, It is made up of 250 kanji characters, each of which has 1000 characters. At the end of the exhibition in 2004, I learned that there is no historian writing a thousand letters in five value typefaces such as the whole book, Yes, So I studied for about 10 years and decided to try. But once I opened the brush, I did it in three months, and after that I could not write it again.”
There is an example of a famous writer who left a thousand words in history. There are 6 kinds of Yuan Dynasty, 6 kinds of Ming Dynasty, 4 kinds of Ming Dynasty, 3 kinds of Tang Dynasty, 3 kinds of Ming Dynasty, 2 types of Han Seok Bong of Korea and 3 kinds of Ding Dynasty of Japan.
After that, Shim Eun’s writing work continued. He has written 1000 letters in 120 fonts for eight years, and there are five kinds of fonts for each typeface. So I wrote a total of 120 fonts. There was a time when he wrote a thousand letters with the font he announced. The 120 kinds of gods written by Shimu are too numerous to count.
The thousand characters included in the 120 characters such as Kwanggwangtokgwan inscription Chunjaemun, Gangbokmun gaejaemun, gmunmoon gaejaemun, chusaungbun gaejaemun, hanjokbonggongjaemun, moonganggiljaemon, It is hard to believe that one person wrote it by looking at 120 kinds of texts. In response to such an inquiry, I sincerely expressed the situation when I took a brush.
“I write in the studio from 9 am to 11 pm. Sometimes I drink while drinking. Sometimes it is not possible to be drunken or bored. When I write, I almost become impatient and the brush and my body become one.”

2018년 여름 심은은 10번째 농필천자문을 썼다

2018년 여름 10차의 농필천자문 세계
지난 2011년부터 심은은 다양한 서체를 혼합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자전에도 없는 글씨가 탄생하기도 했다. 서예 평론가들은 심은의 서체를 보고 평한다.
‘이 서체는 문자가 생신 이래로 새로운 서체가 탄생한 것입니다.’
심은은 스스로 농필천자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경지를 설명한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1번씩 쓰고 있지만, 쓸 때마다 새로운 글씨가 나옵니다. 그 때마다 무념무상의 경지에서 쓰게 됩니다. 지금까지 10차까지 농필천자문을 썼습니다. 한 글자에서도 해서와 초서, 전서, 목간 등을 혼용했습니다.”
평론가들은 그의 혼용 농필천자문을 이렇게 평가한다.
‘심은 선생의 글씨는 융합했지만, 조화가 잘 되어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우리는 이 혼용체를 심은체라 부른다.’
지난 10년 동안 매년 꾸준히 발표된 심은체는 이제 후세 서예가들이라도 따라 쓸 수 없을 만큼 또 다른 경지의 서예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The world of the 10th car of the summer of 2018
Since last year, Shimun has left a mixture of various fonts. There was also a letter that was not in rotation. Calligraphers criticize Shim Eun’s calligraphy.
‘This font is a new typeface since the letter was born.’
Shimun explains how he can not help himself.
“I wrote it once a year for the past 10 years. Every time I write, a new letter is written. Until now, I have written a thousand papers of Kungpil until the 10th. Even in one letter, I used both chopsticks and chopsticks.”
The critics evaluate his mixed –
‘Although Mr. Shim’s writing fused, he is well balanced and balanced. We call this mixture a planted body.”
In the past decade, Shim Eun Chee has been published annually and is now one of the calligraphy genres that followers can follow.

심은미술관 2층 천자문 방에 선 심은 천정우 선생

광개토대왕 천자문

모교 강화 강후 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심은미술관
강화에 가면 폐교된 강후초등학교 자리에 들어선 심은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강화가 나은 천재 서예가이자, 우리 시대에 서예의 한 족적을 이룬 심은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다. 인천시는 얼마전에 미술관 부지를 매입했다. 시에서는 미술관이 소재한 군에서 미술관 건물을 새롭게 건립하도록 건물도 매입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지난 2000년 들어선 심은미술관은 폐교의 교사 일부를 리모델링하여 1관에서 3관까지 운영되고
있다. 1관은 회화 작품관이고, 2층의 2관은 120체 천자문 일부를 전시하는 공간이다. 3관은 글
자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표현하고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비구상작품 서체들이다.
지난 2010년 이후 서예를 통한 작품활동을 해온 심은은 자신의 작업 세계에 대해 말했다.
“앞으로 서예는 읽는 서예가 아니라, 조형성을 갖춘 보는 서예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작품관에 대해 설명하는 한편 심은은 한중일 3국의 각기 다른 서예문화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한국에서 서예가 창조를 통해 작품으로 승화했지만, 일본은 도道, 중국은 법法에 머물고 있습니다.”
지난 2013년 심은은 중국 천진시와 인천시 공동 주관으로 천진시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이 때 70여 명의 원로들이 전시관을 찾아와 작품을 감상한 후 6, 7명의 인사가 그와 대면 미팅을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한중일 3국의 서체의 차이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심은은 그 같은 의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제시한다.
“일본은 틀을 만들어 그 곳에서 뛰쳐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이미 옛 것입니다. 한 번은 동경 시내 동경신미술관에서 8천 명이 참가하는 전시회가 있어 참관했습니다. 500평이 한 개의 방으로 87개의 방으로 구성된 큰 전시회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시회는 8천 명이 나오지만 한 명의 스승 서체를 모방하고 있었습니다.”
심은이 세 방을 모두 보고 나오자 대뜸 일본 학자들에게 그에게 소감을 질문했다.
“청출어람靑出於藍해야 합니다. 제자가 스승의 것을 모방하다가도 어느 순간에 옛 틀을 깨로 새로운 창조를 해야 합니다.”
한 번도 동일한 형태의 서체를 써본 적이 없는 심은으로서는 당연한 작품평이다. 그에서 오늘과 똑같은 작업은 죽음을 뜻한다. 매일 매일 변화하는 자연처럼 인간의 생각과 작품활동도 그 연속선에서 변화하지 않으면 의식과 사고가 죽어있음과 진배없는 것이리라.
그런 작품관을 가진 심은의 서체를 본 일본 평론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아! 일본에는 이런 서체가 없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서 이런 다양한 혼용서체가 나올 수 있나요? 3천 년 만에 심은체가 나온 것입니다.”
한자 나라인 중국은 전통에 매몰되어 있고, 일본의 서예는 스승을 답습하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스승을 넘어서 창조의 세계인 예술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예술은 오로지 창조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본과 중국의 서예 전시회를 둘러보고 난 후 심은은 자신을 다시금 채근하곤 했다.

‘그들의 글은 기존 서체의 모방과 답습에 그치고 있다. 새로운 것이 없으면 결코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나의 길을 가야겠다!’

Shim Eun Museum of Art, Donated by Incheon City
Mr. Shimeun is a genius calligrapher who is good at strengthening, and ShimEun Meseoum is a space for displaying works of Shimun who made a mark of calligraphy in our age. However, Shimun Museum is the Incheon Metropolitan Museum of Art. Incheon city first bought a closed school and set up a museum site. In the city, all related documents are being transferred to the faculty and the county so that the museum building in the faculty and the county where the art museum is located.
In 2000, the Shimon Museum of Art remodeled some of the teachers of the Catholic Church, operating from one to three have. The first gallery is a painting gallery, and the second gallery on the second floor is a partial exhibition space of a copy of the 120-page script. Article 3
It is an unoccupied work expressing the principles of the world through the people and showing the spirit of the times. Shim, who has been working on calligraphy since 2010, talked about his work world.
“In the future, calligraphy is not a calligraphy to read, but a calligraphy with a formative character.”

In addition to explaining his works, Shimu expressed his views on different calligraphic cultures of the three countries of Korea, China and Japan.
“In Korea, we have sublimated into a work through calligraphy creation, but Japan is a road and China is a law.”
In 2013, Shimen held an exhibition in Tianjin City, co-hosted by Tianjin and China. At that time, about 70 elders from Beijing visited the exhibition hall and watched the work. Six or seven people met him. They were constantly curious about the difference between the three countries’ fonts. Shimu offers a clear answer to such questions.
“Japan is not able to get out of there by making a frame. The textbook is already old. One time, there was an exhibition where 8,000 people participated in the Tokyo Metropolitan Museum of Contemporary Art. It was a big exhibition consisting of 87 rooms in one room of 500 pyeong. However, this exhibition had 8,000 people, but imitated a teacher’s font.”
When Shim saw all three of these rooms, he asked Japanese scholars for his testimony.
“I must indulge in the blue sky. The disciple imitates the master’s thing, but at some point, we must create a new creation with the old frame.”
It is a natural review of works that have never used the same type of fonts. In the same work today, it means death. If human thought and work activities, like nature that changes every day, do not change in the continuous line, consciousness and thinking will die and there will be no progress.
Japanese critics who see Shing’s typeface with such an artwork speak in this way.
“Ah! There is no such typeface in Japan. How can you come up with these various mixed typefaces from one person? The planting came out in three thousand years.”
Chinese calligraphy and calligraphy in Japan are still in the process of following a teacher. It is beyond the master to create and to reach the level of art. Art is only possible by creation. After seeing the calligraphy exhibitions in Japan and China, Shimun used to reassemble himself.

‘Their writings are only imitating and following the existing fonts. Without new things, it can never be art. I have to go my way! ‘

시대정신을 담은 서예를 통한 회화작품관

타고난 재능과 최고의 스승, 그리고 90%의 땀과 노력으로 이룬 경지
2000년 강화에 미술관이 건립된 이후 그는 일주일에 5일은 미술관 내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하루 15시간을 보냈다. 그 곳에서 심은이 하는 일은 오로지 붓을 들고 작품을 하는 일이다. 그는 천재적 예술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비결을 자신의 언어로 말한다.
“각고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물론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하고, 옛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고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고의 스승을 모시는 일입니다. 최고로부터 배워야 최고의 반열에 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1세기 초반 한국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의 서예작가의 반열에 오른 심은의 스승은 누구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다니면서 혼자 독학을 하면서 스승을 찾아 다녔죠. 이 때 인사동 서예방 ‘필방’에서 당대 최고의 스승을 수소문했습니다. 이 때 일중 김충현 선생과 여초 김은현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글씨를 직접 가르쳐주시는 여초 선생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 여초 선생의 문하에서 글을 배웠으나 심은은 이후 직장생활을 하느라 서예를 배울 수 없었다. 대신 선생의 제자로부터 스승의 서체 복사본을 받아 퇴근 후 주경야필하며 배움에 대한 목마름을 해결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후 심은은 스스로 도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스승의 도움이 없이 중앙일보 전국휘호대회에 나가 3등을 차지했다. 남들은 10년을 공부해도 나가기 힘든 대회를 불과 6개월 공부후에 출전하여 당당히 등위권에 입상하여 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81년 심은은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나가서 입선을 하는 한편 1985년에는 특상을 차지했다. 독학으로 밤에는 서예를 공부하고 낮에는 직장에서 일했던 심은에게 하나의 명분이 생겼다.
“당시 회사에서 차장으로 이사의 일을 하면서 업무가 가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주말에도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서 더 이상 서예와 회사 일을 병행할 수 없다고 판단되어 1986년 직장에 사표를 내고 전업 서예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회사의 안전과 환경문제에 관한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던 만큼 심은은 상사로부터 만류의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그의 결심에는 변화가 없었고, 그는 사표를 내고 서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나온 후 삼성그룹 비서실 직원들 일부는 그에게 서예를 배우러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룹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고 서예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자신의 작품활동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심은은 서울 인사동에서 서예교실을 열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서예를 가르치며 서예문화를 보급하는 일을 즐거이 수행했다. 심은의 제자 중에는 작가도 있고, 삼성그룹 직원들도 있다.
서예가의 길로 들어선 심은은 어느 날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부름을 받아 회사로 들어갔다. 이병철 회장은 심은에게 말했다.
“회사에 있을 때 열심히 일했다고 들었네! 회사를 사직했으니, 한국의 최고의 서예가가 되어 보시게나!”
그 날 이후 심은은 고 이병철 회장을 한 달에 서 너 번 찾아가 서예 지도를 해주기도 했다.

With innate talent, the best mentor, and 90% of sweat and effort
Since the museum was built in Kangwon in 2000, he spent 15 days a day in the workshop, which was set up in the gallery for five days a week. The thing that he planted there is to write with a brush only. He speaks in his own language the secret to reaching the level of a genius artist.
“We must suffer suffering. Of course, there must be a natural talent, and in order to overcome the old, the efforts of the insurgency are needed. But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process is to be the best teacher. You have to learn from the top, you can climb to the top.”
Then, who is the teacher of Shim, who has been ranked among the best calligraphers in the world beyond Korea’s best in the early 21st century?
“I graduated from college and went to my first job while doing my own self-study and looking for a mentor. At this time, the best teacher of the day was asked in the Inscription of “Inscription”. At this time, I learned the existence of Kim Chung Hyun teacher and Kim Eun Hyun teacher. At that time, I became a disciple of the teacher who taught me to write.”
For six months, I learned to write under Mr. Yeo Cho, but I could not learn calligraphy since I was working in the company. Instead, he received a copy of the master’s font from his disciples and settled down after work, resolving thirst for learning.
Two years later, Shimun began to challenge himself. Without help from the teacher, I went to the national volleyball tournament and won the third place. Others have competed for 6 months after studying for 10 years, but won the prize. Two years later, in 1987, Sim Shim entered the Korean National Gallery of Fine Arts and entered the national contest. I studied calligraphy at night by self study, and I received a great prize from Shim Eun who worked at work during the day.
“At that time, as I moved from the company to the deputy, my work began to increase. I have to work on the weekend It was decided that the calligraphy and company work could no longer be concurrent, I chose the road of full-time calligrapher.”
At that time, he had been doing important work on the safety of the company at the Samsung Group Secretariat.
I had to listen to the words of the gentle. But there was no change in his determination, and he resigned and became a calligrapher I came in.
After his resignation from the company, the staff of the Samsung Group secretariat told him to learn calligraphy.
It started. And as he lectures on calligraphy while receiving the best treatment from his group, I started to devote myself to my activities. Since then, Shimun has opened a calligraphy classroom in Insa-dong, Seoul.
They were happy to teach calligraphy and spread the culture of calligraphy. Among Shim Eun’s disciples are writers. There are also Samsung Group Public Relations Office and Secretariat staff.
Shim, who entered the way of a calligrapher, entered the company one day after receiving a call from Lee Byung-chul of Samsung Group. this President Byeongchul said that Seimun wrote the writing.
“Be your best and be the best in this field!”
After that day, Shim Eun visited the president Lee Byeong-chul in a month and gave calligraphy instruction.

항상 초심으로 돌아가 작품을 쓰는 일에만 몰두하고 있는 심은 전정우 선생은 새로운 창작 집념으로 역사를 만드는 서예가의 반열에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이 없으면 전시회 해서는 안됩니다’
그로부터 어느덧 32년이 흐른 지금 심은은 자신이 서예를 쓰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다.
“글씨가 너무 좋습니다. 무엇보다 글을 쓰면 무아지경, 무념무상의 상태가 됩니다. 흰 화선지 앞에 서면 제가 글을 쓰는 것 조차 잊어버리곤 합니다.”
심은에게 서예를 하고 글을 쓰는 일은 마치 도인이 도를 구하듯 선의 경지에 이르는 일이다. 그는 도를 구하듯 획을 긋고 붓을 화선지에 날리며 자신의 인생을 글에 바쳤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라 1만 시간 정도를 바치면 누구든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최고의 경지에 달하려면 10만 시간이 필요하다. 하루 15시간 30년 글쓰는 일을 신명나게 해온 심은의 길을 보면 어렵지 않게 그러한 진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에게 이후 계획에 대해 질문했다. 그는 말했다.
“저는 예나 지금이나 새로운 작품을 위해 매일 매일 화선지 앞에서 섭니다.”

새로운 작품이 없으면 전시회를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심은 전정우 선생, 그는 분명 법고창신해야 하는 21세기 융복합 시대에 하나의 시금석을 제공하는 창조적 예술가의 사표이다.

‘If there is no new work, you should not exhibit’
Now, 32 years after that, Shimun told the candid reason why he wrote his calligraphy.
“The writing is very good. If you write more than anything, it will be free of mistakes and inconveniences. In front of white paper I write that I lose even writing.”
Calligraphy and writing to Shim Eun is like reaching the good ground, just as a deity is seeking the road. That Scribbled a stroke as he sought the road and poured a brush on his flowerbed and devoted his life to writing. 10,000 hours
According to the rule, if you give 10,000 hours, anyone can become an expert in any field. However, It takes 100,000 hours to reach the place. The way of Shim-eun that has sparked the writing of 15 hours a day and 30 years a day It is not difficult to understand such truth.
I asked him about his future plans. He said.
“I am in front of Hwasanji every day for a new work, yes or now.”

If you do not have a new work, you should not do an exhibition.
It is a resignation of a creative artist who provides a touchstone in the 21st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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