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에 최고가 된다는 것은 열정과 지식. 그리고 부단한 의지를 요하는 일이다. 300년 사기장 역사를 이어가는 영남요嶺南窯 설립자 김정옥 사기장의 삶과 전통 도자기 제작 방식을 통해 장인의 철학과 투지를 따라가본다. 그 길에 완성미를 향한 인간의 염원과 선을 향한 인간의 기원이 드러난다. 김정옥 사기장의 한 평생 삶의 길을 따라 한국 전통문화의 맥을 이을 길을 모색한다.

To be the best in one era is to have a passion and knowledge. And it requires constant will. We will follow the philosophy and the spirit of the craftsman through the way of life and tradition of the craftsman Mr. Kim Jung-ok. In that way, the human desire for finishing and the origin of man for good are revealed. Mr. Kim Jung-ok succeeds a lifelong enthusiasm and looks for ways to preserve Korean traditional culture.
Editor Hyun Ji-hae | Photos Kim Young-sun

문경읍 세재로 579에 소재한 무형문화재 105 김정옥 사기장의 전수관

7대 200년 조선 사기장의 솜씨과 염원을 담은 영남요
숨 쉬는 그릇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수 십 번의 공정을 거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기장 김정옥 선생이 운영하는 문경 영남요의 일상 풍경이다. 올해 78세의 사기장은 7대째 문경에서 전통방식으로 사기그릇을 빚어온 사기장의 후손이다. 1991년 한국의 도예 부문 제1대 명장으로 선정된 김정옥 선생이 지난 81년 문경 진안리에 세운 영남요는 이제 9대째 조선 전통자기 제작법을 이어가는 한국 사기장 역사의 산실이다.

Yeongnamyo with the skill and desire of the 7th generation of Joseon porcelain for 200 years
It is the daily scenery of the Yeongnamyo in Mungyeong, operated by Mr. Kim Jung-ok, who takes for granted the passage of dozens of processes to create a breathing pottery. This year’s 78-year-old craftman is a descendant of a porcelain that has traditionally created porcelain at Mungyeong in the 7th generation. Mr. Kim Jung-ok was appointed as the first great master of Korea’s pottery department in 1991 and Ywongnamyo, founded by Kim Jung-ok in Jinan-ri, Mungyeong in 1981, is now the birthplace of the history of the Korean peninsula’s porcelain.

김정옥 사기장의 달 항아리

비록 영남요의 역사는 37년이지만 영남요가 담고 있는 사기장의 경험지식은 7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영남요의 역사는 19세기 초에 문경 관음리에서 사기장을 시작한 김취정을 필두로, 2대 김광표, 3대 김영수, 4대 김락집, 5대 김비안(운희), 6대 김교수, 그리고 7대 김정옥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김정옥 선생 이후 조선 전통 사기장의 기술과 노하우는 8대 김경식, 9대 김지훈으로 이어져 영남요, 아니 조선 전통 자기장의 미래 역사를 열어가고 있다.

Although the history of Yeongnamyo is 37 years, the knowledge of the experience of it goes back to the seventh generation. The history of Yeongnamyo is composed of seven generations of 2th Kim Kwang-pyo, 3th Kim Yeong-soo, 4th Kim Lak-jib, 5th Kim bi-ans (Yun Hee), 6th Kim Kyou-soo and 7th Kim Jung-ok. In addition, the skills and know-how of the traditional Korean pottery were inherited to the 8th Kim Kyung-sik and the 9th Kim Ji-hoon.

전수관 1층의 제1전시실에는 1대부터 9대에 이르는 문경 사기장의 철학과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토요일 아침 가마에 불 때고 흙 빚는 영남요 사기장 장인들의 열정과 투지
지난 10월 말 경 조선 시대 사기장 문화를 이 땅에서 이어가는 김정옥 사기장을 만나기 위해 영남요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에 전수관 오른 편에 자리한 망뎅이 가마에서 사기장들이 한창 불을 때고 있었다. 김정식 사기장의 큰 아들 김경식 사기장이 불길을 보고 함께 일하는 직원이 적송 장작을 가마에 넣고 있었다.
가마방 앞에 있는 수비장에서 젊은 청년이 열심히 흙을 나르고 있었다. 김정옥 사기장의 손자이자, 영남요의 9대 김지훈 전수생이 아버지와 함께 휴일 아침에 부지런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이른 아침 읍내에서 볼일을 보고 온 김정옥 사기장은 손님을 반기며 불 이야기를 하며, 먼저 가업을 잇고 있는 손자에 대해 언급했다.
“약속을 하지도 않았는데, 가마에 불 때는 날에 오셨네요. 요즘 영남요는 두 달마다 가마에 불을 땝니다. 참 다행인 것은 손자가 10대부터 물레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손이 저를 꼭 닮아 신기했죠. 제가 찻사발 축제 위원장 일을 8년 하면서 대회를 열기 시작했어요. 손자도 대회에 출전하더니 우승을 하더라고요. 누구에게 말하지는 않았는데, 참 대견했습니다.”
이어 김정옥 사기장은 영남요에서 대를 이어 조선백자를 만들고 있는 큰아들 김경식 사기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섯 자식 중 외아들인데, 고등학교 때부터 저와 함께 흙을 만졌고, 물레질도 잘했습니다. 전승공예대전에 나가 도자기 부문에 총리상도 받고 하면서 실력을 쌓아가더군요. 도예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이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우리 전수관의 전수 조교로 일하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토요일 아침 사기장의 분주한 일상을 확인하고 사무실로 들어온 김정옥 사기장은 한탄 아닌 한탄을 했다.
“참 큰일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전통 방식이 힘들다고 다들 가스가마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지요. 전통가마에 불 때는 시간은 보통 15시간에서 17시간 정도 됩니다. 이번에는 금요일 저녁 7시에 시작해서 토요일 새벽 1시까지 제가 불을 땠습니다. 이어서 큰아들이 오전 9시까지 계속 불을 때고 있습니다.”
사기장에게 전통가마는 자신이 직접 물레질하여 만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최후의 마무리 과정이다. 아마도 자신의 영혼을 담는 일인 듯하다. 불길이 가마 안으로 펴지는 정도를 보면서 장작을 때는 모습에서 장인의 숨결이 사기그릇에 고스란히 배는 것 같다.

In Saturday morning, fire burns in the kiln, radiates the passion of the craftsmanship
Last October, I arrived at Yeongnamyo to meet Mr. Kim Jung-ok, the chief craftman of the Joseon porcelain, who continued the culture of the Joseon period. On the day when the rain had fallen, the porcelain on the right side of the commander was burning in the kilns. Mr. Kim Jong-sik, the eldest son of Mr. Kim Jung-ok, saw the fire and the staff member puts their firewood in the kiln.
The young man in front of the kiln room was eagerly carrying soil. The grandson of Mr. Kim Jung-ok and the 9th generation Mr. Kim Ji-hoon, the son of Mr. Kim kyung-sik, worked diligently with his father on the morning of the holiday.
In the early morning, the craftman Mr. Kim Jung-ok, who had seen the day in the town, welcomed the guests and talked about the fire, and mentioned about the grandson who was leading the family business first.
“I did not make an appointment with you about what’s going on here. Today we setted the fire in the kiln. Nowadays Yeongnamyo sets fire to the kiln every two months. I am glad that my grandchild started to learn spinning mills since he was a teenager, and his hands were very similar to me. I started to open the contest for eight years as the chief of staff of the ‘Festival of Teabowel’. My grandchildren also competed in the tournament and won the championship. I did not tell anyone, but I was really proud of him.”
Mr. Kim Jung-ok also mentioned about his eldest son Mr. Kim Kyung-shik, who is making Joseon white porcelain at Yeongnamyo.
“He is the only son of five, but he has touched the soil with me since high school, and he have had good at wheels. He went to the traditional crafts competition and got the prestigious prize in the pottery department and accumulated his skills. He completed his Ph.D. course in Ceramics and studied a lot of theories. We are working as a full-time assistant for our headquarters, and we are working on it. ”
On the morning of Saturday morning, Mr. Kim Jung-ok’s hurried to check the busy daily routine and lamented, while talking to me.
“It is a big deal. Nowadays, young people get used to use a gas kiln because it is difficult to make a traditional way. When burning in a traditional kiln, it takes a time for usually 15 to 17 hours. This time it started at 7 pm on Friday and I had a fire until 1 am on Saturday. Then his son was continuing to burn until 9 am.”
The traditional kiln is the last finishing process to improve the perfection of the work which is made by himself. Perhaps it seems to involve his soul. It seems that the breath of the craftsman is in the porcelain bowl when the firewood is seen when the fire spreads into the kiln.

‘보면 볼수록 좋은 최고의 작품’ 위해 매일 성실히, 정직하게 노력하다
장작 가마와 가스 가마는 열의 성질의 다른 만큼 그릇 색깔의 농도와 성질이 다르다고 한다. 자연의 빛깔이 살아있는 사기그릇을 탄생시키려고 하는 60년 사기장의 열정과 의지가 만든 전통 사기 제작 방식에 대한 애착이 누구보다도 강하다. 전통가마에 15시간 이상 장작 불을 땐 후 이틀 정도 열기를 식힌 후 비로소 사기를 꺼낸다.
한 번에 100개 정도의 크고 작은 사기그릇이 들어가는 반면 불을 식힌 후 가마에서 끄집어 낸 사기 중 그릇으로 건지는 것은 50% 미만이다. 사기장이 스스로 빚은 사기그릇이 혹은 작품이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 때 그릇은 사기장의 손에 의해 가차 없이 깨진다.
김정옥 사기장이 보기에 어떤 작품이 가장 좋은 작품인가 질문했다. 60년 사기장의 대답을 듣고 보니 우문현답인듯했다.
“보면 볼수록 좋은 작품이 있습니다. 저는 그게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도예가가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다시 질문했다. 이 질문에 대한 김정옥 사기장의 대답은 60평생을 사기장으로 살아온 장신의 생활철학과도 같았다.
“재능이 부족하면 많이 노력하면 됩니다. 성실하게 진실되게 살면 됩니다. 남을 손을 빌려서 만들면 안 되고, 무엇이든 직접 해서 배우며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하도록 해야 합니다.”

Trying to be sincere and honest every day for the best work, while looking at it
Firewood kilns and gas kilns are said to have different concentrations and properties in the color of the pottery as different from the nature of the heat. The passion of a 60-year-old craftman, who is trying to create a porcelain that lives in the natural color, is stronger than anyone else’s attachment to traditional porcelain production methods. If you burn a firewood in a traditional kiln for more than 15 hours, the fire will cool off for about two days before it turns out to be a porcelain.
While there are about 100 large and small pottery and bowls at one time, it is less than 50% that the fire is cooled and then delivered to the bowl as a porcelain that is pulled out of the kiln. when the work is not what he wants, the pottery is broken by the hand of the craftman.
I asked to Mr. Kim Jung-ok about what kind of work is the best work.
“There is a better work to look at. I think that is a good work.”
Then I asked again how a potter could make a good work. The answer to this question is the life philosophy of a craftman who lived for 60 lifetimes as a pottery.
“If you lack talent, you can do a lot of effort. You can live sincerely and truthfully. You should not borrow someone else’s hand, you should learn to do it yourself, and make it progress every day. “

영남요는 두 달에 한 번 망뎅이 가마에 불을 때서 사기를 구워낸다

20여 년 문경 관음리 조선 사기점에서 전통방식 배우고 작품 활동
김정옥 선생의 사기장 인생은 선생의 나이 18살 때 시작된다. 그 시절에 대한 김정옥 선생의 기억이다.
“선친께서는 5대 김비안 조부의 DNA와 감성을 타고나셨기 때문에, 도자기를 잘 만들고 그림도 잘 그렸죠. 선친은 해방이 된 후 도자기를 구워 지역의 상인들에게 판매를 했는데, 도자기를 사려는 사람들이 우리 집 마당에 진을 치고 있을 정도였어요. 당시 도자기상들은 선친이 만드신 자기를 팔아 일용할 양식을 사서 식솔들을 먹여살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6.25 이후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제가 18살 때부터 사기장 일을 시작했지요. 선친으로부터 제 나이 33살 될 때까지 흙을 체취하고 도자기를 구워 조선 사기를 만드는 것을 배웠지요.”

집안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김정옥 선생은 선친으로부터 장인 기질과 솜씨를 물려받은 아들이었다. 문경읍 관음리에서 나이 40이 다 되도록 20여 년 동안 산에서 채굴한 흙을 지게에 지고 관음리 사기점으로 실어와 자기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집념을 태워갔다. 무거운 흙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다 숱하게 넘어져 무릎을 깨기도 했다.
그러나 깊은 산골에서 아무리 열심히 작품을 만들어도 작품의 판로를 개척하기 힘들었다. 1982년 무렵 김정옥 선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살 길을 찾아 산속에서 내려와 문경의 길목에 작업장으로 사기점을 옮겨 1983년 영남요를 열었다.

현재도 문경 관음리에는 조선 사기점이 있다. 그의 사촌들이 아직도 그곳에서 전통 방식의 사기점을 운영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기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나무와 사토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관음리에서 20년 넘게 조선 사기 제작을 한 김정옥 사기장의 제작 환경에 대한 설명이다
“소백산이 지나가는 충북 제천에 원시림이 있습니다. 그곳에 20호 정도의 장인들 집이 있는데, 이 사람들이 모를 심고 나서부터 나무를 베어냅니다. 그 나무들이 여름이 지나면 수분을 흡수해 물렁물렁 해져서 자르기 쉽게 됩니다. 가을이 되면 베어놓은 나무를 소에 싣고 와서 가마에 불을 땝니다. 몇 백 년 동안 조선의 사기장들이 그런 방법으로 조선 사기를 만들었습니다.”

Learning the traditional way of pottery and making own works at Gwaneum-ri for the past 20 years
Kim Jung-ok ‘s pottery life begins when he is 18 years old. It is the memory of Mr. Jung-ok Kim for those days.
“My father was born with the DNA and sentiments of my grandfather, Kim Bin-an, and he made porcelain and painted well. After the liberation in 1945, he made pottery and sold it to merchants in the area. People who were trying to buy his pottery were camping in our home yard. At that time, pottery merchants sold their precious products to buy food for daily use and to feed their family. But after 6.25, my family’s economy started to lean, and I started working as a pottery since I was 18 years old. I learned how to make Joseon porcelain by burning pottery and collecting soil from my father until I was 33 years old.”
Kim Jung-ok, who was born as the third son of the family, was a son who inherited his craftmanship and skill from his father. In Gwaneum-ri, Mungyeong-eup, he was buried his enthusiasm and passion in the mountain for over 20 years with digging the soil and carrying it to his workplace until 40-years old. He climbed mountains several times in a day with heavy soil.
However, it was difficult to find a way of selling the works of art even if the works were made so hard in the deep mountain. In 1982, Mr. Kim Jung-ok moved down the mountain to find a way to live with his family and moved his work place to the workplace on the way to Mungyeong. He again opened his Youngnamyo in 1983 in current place.
At present, there is also a pottery in Gwaneum-ri, Mungyeong. His cousins are still running traditional pottery there. The reason is because of the abundance of trees and satos needed to make the pottery. Here’s Mr. Kim Jung-ok’s explanation about the production environment. He has been making pottery of Joseon for over 20 years in Gwaneum-ri.
“There is a primeval forest in Jecheon, Chungbuk where Mt.Sobaeksan passes. There are about 20 artisans’ houses in the area, and these people cut trees after planting a grain. The trees absorb the moisture after the summer and become soft and easy to cut. When it falls, they loads a paddy field tree into the cattle and put the firewood in the kiln. For hundreds of years, the dignitaries of the Joseon pottery have created their porcelain in such a way. “

전시관 1층의 제3전시실에는 사기장과 전수자들의 작품 전시

전시된 작품은 국내외 관광객들과 방문객들에게 판매된다

1987년 한국문화재재단 문경의 조선 사기장 10년간 조사하며 기록화 작업
1대 김취정 사기장을 필두로 7대 김정옥 사기장에 이르기까지 200여 년 동안 조선의 전통 사발을 만드는 장인의 존재가 세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1987년이다. 그 계기는 조선 사기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그해 김정옥 선생이 자신이 만든 조선 사발을 들고나간 전승공예대전에서 비롯되었다. 당시의 상황에 대한 김정옥 사기장의 설명이다.
“그 때 조선 사발을 출품했는 데, 문화재위원 예용해 선생이 보시고 대뜸 ‘이런 거 만드는 분이 아직 있었군요. 조선 사발을 만드는 분들이 모두 돌아가신 줄 알았는데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김정옥 사기장의 가슴에 고동이 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는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조선 사기를 만들면서도 처음 들어본 말이었다.
조선 사기를 알아보는 문화재위원의 촉감에 의해서 그날 조선 사기는 문경 영남요에서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예용해 위원이 영남요를 다녀간 이후 10년 동안 문경읍 관음리 일대의 사지점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어 기록으로 정리되었다.

Started to research and record of Mungyeong’s Joseon pottery in 1987 for 10-years
It was in 1987 that the craftsman who made the traditional bowl of Joseon for 200 years until the 7th Kim Jung-ok with the head of the 1st craftman Kim Chie-jung, was revealed to the world. The occasion came from the ‘Contest of Junsung Gogyea’ where Kim Jung-ok carried out traditional bowl to announce the Joseon pottery to the world. It is an explanation of the situation of the time, Mr. Kim Jung-ok.
“When I exhibited the traditional bowel, Mr. Yea Young-hae, the Cultural Properties Commissioner came up to me and talked to me, “What a surprise! I think all the people who made this bowl were dead!”
As soon as he heard the sound, his heart began to beat in the chest. And in his eyes dew began to grow. It was the first time that he had heard about it for 20 years, while working as a pottery.
By the tactile touch of the Cultural Property Commissioner who recognized the pottery of Joseon period, the Joseon pottery came back to the world from Yeongnamyo in Mungyeong that day. For the last 10 years since the visit of the Commissioner at Yeongnamyo, the research to the pottery at Gwaneum-ri, Mungyeong had been done and recorded systemically the history and culture of Joseon pottery.

무역박람회에서 만난 일본 도자기상과 30년간 거래하고 일본인 조선 사기장 제자 되고
무역박람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선 사기가 세상에 드러난 시간이었다. 1984년 무역박람회에 참관한 일본인 바이어 나무모 상이 조선 사기를 알아본 것이다. 나구모 상은 영남요 전시관에 있는 조선 사발을 사려고 했으나 김정옥 선생은 돈을 받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 가치를 알아본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사했다. 일본으로 돌아간 나구모 상은 다시 영남요를 찾아 10만 원하는 사기그릇 100여 개를 주문해 일본으로 가져갔다. 김정옥 사기장이 조선의 막사발을 신봉하는 일본인들과 맺은 인연은 그후 30년 동안 거래 관계로 이어졌다. 물론 그로 인해 영남요의 살림도 피고 작품 활동도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조선 사기장이 전통 기법으로 문경에 사기점을 운영하는 것을 알게 된 일본인 고바야시 상은 한국을 찾아와 김 교수 사기장의 제자가 되기도 했다. 선친과 고바야시 상과의 인연을 대해 김정옥 선생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설명했다.
“올해 84세가 되는 고바야시 상은 80년대 말부터 선친에게 조선 사기 제작 방법을 배워서 장인이 되었고, 자신이 배운 것을 일본에 전파했습니다. 일본의 호사까와 수상도 고바야시 상에게서 조선 사기장 기법을 배워갔다고 합니다.”

Trading for 30 years with the Japanese merchant who met at the Trade Exhibition and a Japanese become a Joseon pottery’s student
The Trade Exhibition was a time when Joseon pottery was revealed to the world in various aspects. Mr. Nagumo, a Japanese buyer who attended the trade fair in 1984 at the Trade Exhibition, recognized Joseon’s pottery. Mr. Nagumo tried to buy a bowl of Joseon of Yeongnam, but Mr. Kim Jung-ok did not receive any money. He presented his work to the Japanese who understood the value of his work. After returning to Japan, Mr. Nagumo ordered 100 pieces of pottery to him that amounts a price of 100,000 won, and took them to Japan. Kim Jung-ok’s relationship with the Japanese who honor the Joseon pottery led to business relations for the next 30 years. Of course, Yeoungnamyo has been well managed by his business and he also actively resumed his work abroad as well as in Korea.
An Japanese Mr. Kobayashi came to Korea and became a disciple of his father Mr. Kim Kyou-soo. Mr. Kim Jung-ok explains the relationship between his father and Mr. Kobayashi in a delightful expression.
“The 84-year-old Mr. Kobayashi became a craftsman in the late 80s after learning how to make Joseon pottery from my father, and spreading what he learned to Japan. The Prime Minister of Japan, Mr. Hosokawa, also learned from Mr. Kobayashi about the technique of Joseon pottery.”

조선 사기장 역사 정리된 후 국가 무형문화재 제105호 기능보유자로 선정
문경의 사기점 조사를 통해 조선 사기장의 역사가 정리가 되어가던 1996년 김정옥 선생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05호 사기장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이후로 김정옥 사기장은 해외 주요 박물관의 조선 사기 전시회에 초대되었다. 그는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을 정성스럽게 제작한 후 자랑스럽게 한국 전통 조선백자와 막사발의 존재를 알리고 조선 사기점의 역사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자신의 생애 중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되는 전시회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1996년 처음으로 스미소니언 박물관 상설전시를 했습니다. 이때 외국인들의 조선백자의 순백미를 알아보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면서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제 생애에 가장 감격스럽고 자랑스러운 날이었습니다. 1998년에는 동경에서 아시아 4개국 명인 전문가 회의 한국 대표로 참가해서 우리 백자의 제작 노하우와 장인들의 정신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저는 항상 조상님들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2007년 김정옥 사기장은 영국에서 작품 전시를 하며 유럽인들에게 한국 전통문화의 진수를 알리는 역할을 했다. 이후 김정옥 사기장은 캐나다, 독일, 프랑스 등의 선진국 박물관에서 개최된 초대전에 참가했다.

Selected as the holder of function No. 105 of th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after the record of the history of Joseon Pottery
In 1996, Mr. Kim Jung-ok became the holder of the Funtion No. 105 of the National Intangible Cultural Property. Since then, Mr. Kim Jung-ok has been invited to exhibit at the Joseon pottery Museum in major overseas museums. He deliberately produced the works to be exhibited at the exhibition and proudly informed the existence of Korean traditional Joseon white porcelain and bowls and informed the history of Joseon porcelain. It is his explanation of the exhibition which is remembered as the most precious time of his life.
“For the first time in 1996, I exhibited at the Smithsonian Museum. At this time, I was so impressed that I witnessed the sight of foreigners knowing the pure white beauty of the Korean white porcelain. It was the most exciting and proud day of my life. In 1998, we also participated in the 4th Asia-Pacific Conference of Experts in Korea to promote the know-how and craftsmanship of our white porcelain. I have always been grateful and thankful to my ancestors for sharing me with their skill and craftmanship.”
In 2007, Mr. Kim Jung-ok held a work exhibition in Britain and informed Europeans about the 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Since then, Mr. Kim Jung-ok has participated in the invitations held in museums of advanced countries such as Canada, Germany, and France.

김정옥 사기장은 지난 삶에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사기장의 길을 물려준 조상에게 감사하는 한편 살아있는 동안 한국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리고 전파할 계획이다

조선 사기장 전통방식 전수 목적으로 2016년 사기장전수관 건립, 운영
1996년 무형문화재 105호로 선정된 이후 10년 동안 김정옥 사기장은 생애에서 가장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해외 전시회를 통해 조선백자와 막사발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유감없이 했다. 그 즈음부터 김정옥 사기장은 생각했다.
‘이제 내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전통 사기장 제작 방식을 후손들에게 가르쳐서 이 땅에서 몇 백 년 사기장의 흔적과 지식이 보존되도록 후진을 양성해야겠다.’
그런 생각에 이르자 김정옥 사기장은 무형문화재에게 제공되는 전수관 건립을 계획했다. 그때부터 김정옥 사기장은 전수관 건립에 필요한 부지를 마련하고 전수관 설립에 필요한 일들을 해나갔다. 김정옥 사기장은 전수관 건립과 운영에 관해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서 설명했다.
“현재 한국에 공예 문화재가 60분 정도 있는데, 규모의 전수관을 운영하는 문화재가 5명 정도 됩니다. 문화재가 전수관을 건립하려면 토지를 국가에 제공해야 하며, 국가에서 건립 비용이 40억 정도 보조됩니다. 건립 후에는 운영비가 지원되며 전수관에서 전수교육을 해야 합니다.”
문경읍 세재로 579의 부지 1,080평에 들어선 무형문화재 사기장 전수관은 수백 년을 이어갈 수 있는 한옥으로 건립되었다. 전수관 1층 제1전시실에는 18세기 후반에 사기장이 된 김정옥 선생의 선대부터 후손까지 9대 300년 사기장 가문의 활동 스토리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실 입구에는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물레가 전시되어 있다. 2층의 제2전시실에는 한국 도자기의 역사관으로 삼국시대와 가야 토기에서부터 고려청자, 분청사기, 조선백자 등이 전시되어 있다. 1층의 제3전시실에는 사기장과 전수자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방문객들에게 판매가 된다.

Establishment and operation of Junsookwan in 2016
Since being selected as Intangible Cultural Asset No. 105 in 1996, for the past 10 years, Mr. Kim Jung-ok has played the most active work in his life and played a role in informing the world of Korean white porcelain and bowls through overseas exhibitions. From that time, he thought.
‘Now I will teach my descendants the way I made the traditional pottery that I inherited from my ancestors, and I shall cultivate the backwardness to preserve the traces and knowledge of a few hundred years’
When it came to such a thought, the craftman planned to construct a Junsookwan for intangible cultural properties. From then on, Mr. Kim Jung-ok worked on the necessary sites for the construction of the Junsookwan. Mr. Kim Jung-ok explained some things about construction and operation of the Junsookwan.
“Currently, there are about 60 people of cultural artifacts in Korea. For cultural properties to build Junsookwan, land must be provided to the country, and 4 billion won for the construction in the country is provided to the people. After the construction, the operation cost is supported and the training should be carried out at the Junsookwan.”
Mr. Kim Jung-ok had built hi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site as a hanok which can be maintained for hundreds of years at 579 Saejae-ro in Myeongeup. The first exhibition room on the first floor of the Junsookwan shows the activity stories and works of the 9th generation for 300-years clan family from his ancestor who became a delegate in the late 18th century, to the descendants of Mr. Kim Jung-ok. At the entrance of the 1st exhibition room, the only remaining wheel of the Joseon pottery in Korea are exhibited. The second exhibition room on the second floor displays the history of Korean pottery from the Three Kingdoms period and Kaya pottery to the Goryeo celadon, Buncheongpottery, and Joseon porcelain. In the third exhibition room on the first floor, the works of the craftman and the specialists are displayed and sold to visitors.

김정옥 사기장은 ‘누구든 열심히, 진실되게 한 길을 걸어가면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업과 소임에 집중하는 전문가다

인내하며 최고의 작품을 구하는 장인정신으로
김정옥 사기장 전수관 밖 정원에는 ‘무한불성無汗不成’이라고 쓴 비석이 서있다. ‘땀 흘리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김정옥 사기장의 평소 신념을 직접 글로 쓴 비석이다. 그 비석을 쓴 이유를 사기장은 강조했다.
“저를 롤모델로 삼아 후손들이 잘 하라는 뜻으로 쓴 글입니다. 저는 선친의 반에 반도 못 따라갑니다. 우리 선친은 그 시절 일대에서 사기 대장이었습니다. 체력도 좋아서 하루에 840기의 사기를 만들었는데, 저는 그 반도 못합니다. 지금은 재료라도 좋지만, 그 시절에 무른 사토로도 요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도 매일매일 열심히 노력해서 무형문화재가 되었고,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작품도 만들었습니다.”
천재의 번뜩임도 좋지만, 매일매일 노력하며 완성을 해가며 한 시대의 사기장에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김정옥 사기장. 그는 국가가 나서서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일에 나서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말했다.
“국가가 한국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개발하는 일을 추진하는 것은 우리가 문화민족으로 우뚝 서는 길입니다. 그러려면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들게 전통문화를 지키고 가꾸어온 장인들이 건강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건강보험을 책임져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한국 사회로부터 큰 혜택을 입었다고 생각하는 김정옥 사기장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전통을 지키는 이 땅의 장인들이 건강하게 노후를 보낼 수 있기를 기대했다. 미국은 물론 영국, 캐나다, 중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한국 전통 사기 문화의 진수를 알리고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한 김정옥 사기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말했다.
“살아있는 동안 우리 시기의 우수함을 알리고 보급하는 일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동남아, 남미, 호주 등에서 전시회를 계속하여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독특함을 세계 각국에 알리고 싶습니다.”

With patience and craftsmanship to get the best work
There is a monument in the garden outside Junsookwan. ‘If you do not sweat, you cannot achieve it’ is a monument that directly writes the usual beliefs of Mr. Kim Jung-ok. He emphasized the reason for the monument.
“I wrote this as a role model for my descendants. I am not following half of my father. My father was the best pottery in those days. He was able to make 840 works a day because of his strength, but I cannot even make it. Now it is a good material, but in those days he made a sutra with a loose Sato. However, I worked hard every day to become an intangible cultural asset, and I have also created works that are recognized both at home and abroad.”
It is great to have a glitter of genius, but every day I try to finish it. He said he was fortunate to be in the business of preserving our traditional culture.
“It is a way for our nation to stand up to the cultural people to promote the preservation and development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If so, we should actively promote our culture overseas as well. And most of all, I think that it is necessary for the artisans who guarded and cultivated the traditional culture to work hard to be responsible for the health insurance so that they can go back in good health.”
Mr. Kim Jung-ok, who has been greatly benefited from the Korean government and the Korean society, has been grateful and hoped that the craftsmen of this land who are keeping the tradition can return to their old age in good health. Kim Jung-ok, who played a major role in informing and spreading the essence of Korean traditional pottery culture in advanced countries such as the United States, Britain, Canada, China and Japan, said in the future plans.
“I want to continue to advertise and promote the excellence of our porcelain while I am alive. I would like to continue exhibitions in Southeast Asia, South America, Australia and other countries to inform the world about the excellence and uniqueness of our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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