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노닐며 성장한 한 건축가의 자연주의 삶의 현장에서 그가 만드는 설계와 삶의 조화로운 컨텐츠를 엿본다.

In the naturalistic life of an architect who grew up with nature, he peeks into the harmonious contents of his design and life.
Editor Hyun Jihae | Photo Kim Soo Jin

‘류춘수 건축가는 어떤 사람인가’가 그의 건축에 영향을 미치는 또 하나의 변수다. 이 단계에서 그는 말한다.
“문명은 눈에 보이는 반자연이고, 문화는 눈에 안보이는 반자연입니다.”
문명과 문화의 본질을 이보다 저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다. 그의 본질적 사고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What kind of architect Mr. Ryu Choon-soo is another variable that influences his architecture.
At this stage he says.
“Civilization is semi-natural to see, culture is semi-natural to be invisible.”
I think there is no word that can express the essence of civilization and culture better than this. Where is his essential thought?

반야정사 평면도

반야정사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며

류춘수 건축가는 경북 봉화의 자연 속에서 태어나, 지금도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자연주의자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미술영재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청정자연 지역을 대표하는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그는 20살 전까지 봉화와 경북의 들판에서 놀며 자랐다. 유년 시절 워낙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렸던 탓에 ‘경북 최고의 미술영재’란 자부심에 대학도 당연히 미술대를 지망했다. 그러나 그 시절 입시 미술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란 탓에 두 번 입시에 낙방하고 건축과로 진로를 바꾸었다. 대학입학 준비를 다시 하던 시절 그는 고향의 절 문수산 축서사에서 스님들과 절간 생활을 했다. 감수성 예민한 스무 살 청년 시절의 산사에서의 생활은 평생 그가 고즈넉한 산사의 풍경과 자연의 소리를 마음과 감성에 담는 시간이었다. 이는 또한 류춘수라는 건축가의 컨텍스트가 만들어진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유년시절 청정 자연의 마을에서 자란 그는 밤하늘의 별빛과 반딧불을 밤 친구처럼 벗하며 자랐다. 그런 생활로 인해 그는 우주 천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수학과 물리학에 흥미를 가지고 혼자 공부를 했다. 건축가가 아니라면 천체물리학자가 되어야 할 정도의 천제물리학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은 사람이 건축가 류춘수이기도 하다.

Architect Mr. Ryu Choon-soo was born in the nature of Bonghwa, Gyeungbuk, and is still living in nature. He was an gifted artist who liked painting since he was a child. He got used to play in the fields of Bonghwa and Gyeongbuk until 20 years old. Since he was a child, he liked painting and painted well. Therefore, he wanted to go to art school. However, since he grew up without knowing what the entrance exam for art school was at that time, he failed the test at twice.
Finally, he changed the course to architecture. When he was preparing for college, He lived with the monks at ChukseosaTemple at Mt. Moonsoosan. It had been a time for him to put the quiet scenery of the mountain and the sound of nature in mind and emotion, while sensitive 20 year old youth staying in quiet mountain. It is also the time when the context of an architect Mr. Ryu Choon-soo was created.
Especially, he grew up in a town of clean nature, especially when he was a child. He took out the starlight of the night sky and the firefly like night friends. Because of such a life, he has a great interest in the cosmic body and is interested in mathematics and physics. If he does not become an architect, he should be an astrophysicist. He is an architect who has a lot of interest and kindness in cosmic world and mathematics.

반야정사 측면

반야정사의 정자

반야정사는 3면에서 외부와 소통하는 문이 있다

멘토 김수근 선생의 ‘공간’에서 국내외 프로젝트에 참여, 첨단 설계지식과 노하우 배우고
그런 한편 류춘수 건축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컨텍스트는 공간건축연구소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근세 한국 건축의 거장 김수근 선생과 일한 시절의 경험이 아닐까 싶다. 그의 멘토 김수근 선생과 함께 작업하며 장인의 철학과 정신, 그리고 집념을 배우고 터득했다. 그 과정에서 류춘수 건축가는 공간에 맡겨진 수많은 대형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가운데, 30-40대에 건축가로서 세상에 알려진 수많은 기념비적인 건축물을 설계했다. 그는 88올림픽 공원의 다섯 개 경기장 기본설계를 담당했고, 세계 최초의 ‘케이블 돔’ 구조 체조경기장을 설계와 감리를 수행했다. 이 때 당시 세계 최초의 케이블 돔 구조 설계자인 미국의 가이거Geiger박사와 함께 협력해서 설계한 것이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설계에서도 그는 수많은 국내외 건축가와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했다. 그는 서울월드컵경기장 턴키설계공모에 참여하며 혼신을 다했다. 이 때 지붕 구조설계에서 88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처럼 미국 Geiger박사팀과 삼성 엔지니어링과의 협력으로 방패연 이미지의 멤브레인 건축을 구현했다.
그는 국내외 프로젝트를 하면서 국내외 건설사, 엔지니어링 팀들과 일하며 하이테크 기술과 노하우도 섭렵했다. 이후 그는 중국, 일본, 말레이시아 등 해외의 주요한 공공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현지 건축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우수한 건축설계 노하우와 공법을 소개하는 역할도 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1992년 국제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중국 해남시 868타워다. 868타워는 류춘수 건축가가 해외에서 시도한 설계 중 가장 규모가 큰 건축물이기도 하다.

While working at Mentor Mr. Kim Soo-geun’s ‘Space’, Participating in domestic and international projects, Learning advanced design knowledge and know-how
On the other hand, the most influential context for understanding the architect, it would be a time for him to share his experience with Mr. Kim Soo-geun, the master of modern Korean architecture that represents Korea. When he worked with his mentor Mr. Kim Soo-geun, he learned the philosophy, spirit, and commitment of the craftsman. In the process, While Mr. Ryu Choon-soo participated in numerous large-scale projects entrusted to space, he has designed numerous monumental buildings known. He built a five-stadium basic design of the 88 Olympic Park And he designed and supervised the world’s first ‘cable dome’ structure gymnasium. At this time, it was designed in collaboration with Dr Geiger, the first cable dome construction designer in the United States. He also worked with numerous domestic and international architects and engineers in the design of the Seoul World Cup Stadium. He participated in the contest for the design of the Seoul World Cup stadium. At this time, in the design of the roof structure as in the gymnastics arena, he worked in cooperation with Dr. Geiger and Samsung Engineering.
And He has been also working with domestic and overseas construction companies and engineering teams while doing domestic and international projects. Since then, he has been involved in major public construction projects overseas, including China, Japan and Malaysia. He also interact with local architects abroad and introduce them to korean excellent architectural design know-how and construction methods. The representative work was the 868 tower in Haenam, China, The 868 tower is also the largest structure among the designs that Mr. Ryu Choon-soo has attempted abroad.

반야정사에서 자연과 동화되는 삶의 기쁨을 누리며

건축주가 편안하고 행복한 건축을 지향하는 자연주의 건축가의 꿈
1986년 평생의 멘토 김수근 선생이 타계한 이후, 류춘수 건축가는 이공건축을 설립해 자신의 건축세계를 다시 열어갔다. 이 땅에서 반세기 동안 한국 건축사에 이름을 남긴 그는 요즘 역삼동 사무실과 봉화 반야정사를 오가며 건축가의 삶을 살고 있다. 이즈음 건축가로서의 그의 일상과 바람, 그리고 삶의 화두는 무엇일까?
“시간이 갈수록 자연에 동화되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이 각자의 것이 되려면 ‘지구상에 태어난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지구상에서 생명체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환희이며, 경이로움입니다. 행복해지려면 거대한 우주의 원리와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저는 아름다운 반야계곡이 있는 봉화 반야정사에 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A dream of a naturalist architect whose architects are aiming for comfortable and happy architecture
After the lifelong mentor Kim Soo-geun’s death in 1986, Mr. Ryu Choon- Soo founded ‘Beyond the Space’ and opened his own world again. He left his name in Korean architecture for half a century,
He is living the life of an architect going back and forth between the Yeksam office and the Banyajungsa in Bongwha. What are his daily routines, the wants, and his life as architects these days?
“As time goes on, it seems to be assimilating to nature. In order for happiness pursued by humans to be their own, we must think happily on the earth. A day living on earth as a creature is a joy, a wonder. To be happy, there must be a gigantic universe principle and an understanding of the ecosystem. And I am happiest when I am in Bonghwa Banyajungsa with beautiful Banyan Valley.”

반야계곡의 깊은 소 곁에서 망중한을 즐기며

반야정사 계곡에서 삼림욕 하며

반야계곡에서 자연과 동화되는 반야정사의 나그네로 살아가며
류춘수 건축가의 감성과 인성을 좀 더 느끼기 위해 봉화의 반야정사를 찾았다.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반야정사는 아담한 주택이자, 건축가의 스튜디오였다. 봉화의 바위산 아래 7km 길이의 반야계곡가에 난 긴 대지 위에 사과나무를 심고 그 옆에 20평 규모의 집을 지은 후 그는 계곡의 사람이 되었다. 한옥형 구조를 지닌 반야정사는 3면에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설계가 되어 있다. 흔히 보이는 현관 없이 마루에서 바로 부엌과 작은방, 그리고 주인의 스튜디오로 연결된다.
반야정사가 가진 터의 백미는 집 앞으로 흐르는 계곡이다. 집에서 10m 위에 2m 수심을 지닌 계곡이 있다. 여름 한철 반야정사는 찾는 방문객들은 계곡에서 멱을 감고, 계곡의 바위 위에 앉아 한 여름의 오수를 즐기기도 한다. 반야정사는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장 자연적이고 원시적인 삶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 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우리 시대의 가장 본질적 철학자들이 아닐까 싶다.
자연인으로 돌아가 행복한 일상을 보내며 국내외 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류춘수 건축가는 건축가로서 아직 하고 싶은 건축이 많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그가 지향하는 건축은 여전하다
“건물에 사는 건축주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건축을 하고자 합니다. 그 건물의 주인이라는 점만으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으로 인정받으면 그 건물은 좋은 건축물이 되는 것입니다.”

붓과 만년필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자연주의적 감성으로 건축주가 희망하는 삶을 담는 건축물을 아날로그적 붓드로잉으로 그리는 건축가 류춘수. 디지털 시대에 살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지만, 결코 기계나 디지털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 중심의 따뜻한 사고와 자연주의적 감성을 잃어버리기를 거부하는 류춘수 건축가는 자신의 우주관을 대변하는 이공의 지붕 아래에서 매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후배 건축가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면서 한국 사회도 이제는 건축가의 창조적 활동에 대한 존중과 마땅한 대우가 이뤄질 수 있는 문화적 풍토가 조성되기를 기대하며 한국 건축설계의 미래를 열어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Living in the Banya Valley as a stranger living in harmony with nature
To find out more about the sensitivity and personality of the architect, Mr. Ryu Choon-soo, I searched for Banyajungsa in Bongwha. It took a almost for four hours to get to his lovely house from Seoul. It was a small house and architect’s studio. After planting an apple tree on a long land in a 7km long Banya Valley below the rocky mountain of Bonghwa, he has built a house of 20 pyeong next to it. And he became a person of the valley. It is designed to enter the house from three places from the floor to the kitchen, to the small room, and to the studio of the owner without a common front porch.
The secret area of the Banyajungsa is a valley flowing in front of the house. There is a pond with a depth of 2m above the house 10m. In the summer, visitors can enjoy a summer sake by sitting on the rocks in the valley. Banyajungsa has the most natural and primitive lifestyles that people in everyday life in digital media city can enjoy. Perhaps the person who can find the charm of Banyajungsa is perhaps the most essential philosophers of our time.
As a naturalist, he has a happy life and is carrying out domestic and overseas design projects. However, as always, the architecture he intends remains.
“The building owner wants to build the most comfortable and happy building. The building itself is a good one if you are recognized as a wonderful person by people who are living near the owner of the building.”

“Mr. Ryu Choon-soo, an architect who draws a brush and a fountain pen from his hand and draws a building with an analogistic brush drawing, Although he lives in the digital era and uses digital technology, he refuses to lose the warmth of human mind and naturalistic sensibility that can never be replaced by mechanical or digital technology. He is a fiercest living person. He learns and works with younger architects, and now Korean society is also playing a role in opening the future of Korean architectural design He hopes that a respect for the creative activities of architects will be respected and a cultural climate will be achie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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