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루에서, 옛 선비들의 절개와 인간적 고뇌를 엿보다

영호루에서, 옛 선비들의 절개와 인간적 고뇌를 엿보다

이 땅 곳곳에 산재하는 유적지와 문화재에는 이 땅에 살았던 조상들의 삶의 모습과 학문적 컨텐츠가 담겨져 있다. 한강 이남의 4대 누각으로 여겨지는 안동 영호루에 올라 옛 선비들의 학문적 기개와 감성을 엿보는 시간을 갖는다.

There are historical and cultural sites scattered throughout the land which shed lights to the lives and academic foot-steps of the ancestors who lived in this land. Here at Andong Youngho-Ru Pavilion which is considered as one of the three most signicant leading pavilions in Korea. We ponder about ancient scholars’ academic spirits and senses briefly.
Editor Kim Jun-seung | Photo Kim Sung Soo

영호루 전경

안동 시가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안동 영호루에 오른다. 천 년의 세월 동안 이 땅을 지킨 영호루에서 오래전에 이 땅에서 일상의 삶을 살다간 선인들의 학문적 기개와 사상을 이해하면 오랜 역사문화의 정체성과 컨텐츠의 모습과 의미가 드러난다.

Standing at Youngho-Ru which has stood here for a thousand year overlooking the city of Andong, we can have a glimpse of the academic spirits and ideology of the sages who once lived in this land. With this understanding, we feel that Youngho-Ru reveals the identity and contents of the long historical culture.

영호루 앞 기념비

한강 이남의 대표 누각 ‘영호루’, 피난길 공민왕의 위안처
안동의 영호루는 경남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전북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한강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이다. 『영가지永嘉誌』에 의하면 고려 공민왕恭愍王 10년,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서 왕이 이 곳 복주로 신하들을 거느리고 피난하였다고 한다. 왕은 피난중의 적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자주 남문밖에 우뚝 서 있는 영호루를 찾았고, 때로는 누각 밑 강물에 배를 띄우기도 하였다고 한다. 난리가 평정되어 환궁한 왕은 복주를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영호루를 잊지 못하여 친필로 한 映湖樓 3자가 쓰인 금자현판金子懸板을 보내어 누각에 달게 하였다고 한다.

Youngho-Ru, a leading Pavilion in south of the Han River, Resting place of King Gongmin of Goryeo
Yeongho-Ru in Andong is a leading pavilion of south of the Han River along with Yeongnam-Ru in Milyang, Choksuk-Ru in Jinju, and Kwanghan-Ru in Namwon in Cheonbook. According to the book『Yeonggaji』, King Kongmin in his 10th year, when Honggun rebels staged an uprising, took refugehere with hundreds of his subjects. In order to comfort his mind during the refuge, the king often climbed to the Yeongho-Ru which stood high outside the South Gate, and occasionally cruised aboard the sail boat under the pavilion. It was said that the King, who returned to his palace after the uprising was subsided, missed the Youngho-Ru, and promoted this place to Daedohobu and sent a gold plate on which he personlly brush-wrote “Youngho-Ru” to be hung on the pavilion.

영호루 증축 기념사

1969년 안동 시민의 힘으로 청하동에 새로 들어선 영호루
누각은 조선 중기에 홍수로 인하여 유실되었지만, 2차례 중건된 영호루는 100여 년 동안 안동의 관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갑술년 홍수에 영호루는 다시 유실되었다. 영호루가 사라지고 강가에 빈터만이 자리하자, 전통과 옛 문화를 숭상하는 안동 군민이 1969년 12월 「영호루 중건 추진 위원회」를 조직했다. 안동 시민들의 힘으로 안동시가지 남쪽의 강언덕 정하동亭下洞에 1,085평의 대지를 확보하고, 1970년 11월에 영호루가 중건되었다.

노송이 우거진 영호루에 오르면 멀리 북서쪽으로 선비의 영봉 학가산鶴駕山이 우람하게 솟아있고 강 건너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시가지를 싸고 있는 영남산映南山은 철따라 색깔이 변하며, 영호루의 절경을 이룬다

Youngho-Ru was reconstructed by Andong citizens in Chungha-dong in 1969
However, the pavilion was lost by a flood in the mid-Chosun dynasty. Despite the loss of the structure a couple of times, Yeongho-Ru was reconstructed and it has served as the gateway to Andong for longer than 100 years. But Youngho-Ru disappeared again by a food. It became a vacant lot on the river-side. The people of Andong, who valued the tradition and ancient culture, organized the ‘Youngho-Ru reconstruction Streering Committee in December, 1969. The organized Andong citizens secured 1,085 Pyeong of land in Andong City’s south at Chungha-dong, and Youngho-Ru was rebuilt in November, 1970.

When you come to Youngho-Ru covered with the old pine trees, you will see a magnificent view of Hakgasan, known as a spiritual mountain across the river. Mt. Yeongnamsan, which encircles the city area, changes its colors along the river and forms a superb scene of Yeongho-Ru.

영호루에서 바라본 안동시내 전경

이 땅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학자들 영호루에 올라 시를 남기고
영호루에 오르면 이 땅의 수많은 덕 높은 학자들이 시문을 겨룬 흔적이 역력하다. 조선조 개국공산 정도전鄭道傳을 비롯해, 정몽주鄭夢周, 권근權近, 김종직金宗直, 이황李滉 등 당대의 대표적 문인이 영호루에 올라 글을 남기며 각자의 학문적 경지를 겨루는 가운데 후세에 학자적 풍모를 남기기도 했다.
이황 선생의 글을 한번 음미해 본다.

客中愁思雨中多 況値秋風意轉加
객중수사우중다 황치추풍의전가
獨自上樓還盡日 但能有酒便忘家
독자상루환진일 단능유주편망가
慇懃喚友蔣歸燕 寂寞含情向晩花
은근환우장귀여 적망향정향만화
一曲淸歌響林木 此心焉得以枯槎
일곡청가향림목 차심언득이고차

나그네 시름이 비 만나 더한데, 더구나 가을 바람 더욱 심난하구나
홀로 루에 올랐다 해짐에 돌아옴이여, 다만 술잔 들어 집 그리움 잊는다
은근히 벗을 불러 돌아가는 제비는, 쓸쓸히 정을 품어 늦은 꽃을 향하구나
맑은 노래 한마디 숲 속을 울리는데, 이 마음 어쩌다 마른 삭정이 되었구나

청량산을 산책하며 숱한 시를 남긴 퇴계 선생은 자연을 은유하며 복잡한 심사와 굴곡진 세상살이를 한탄하며 치유를 받은 음유시인이다. 한 남자로서, 어버이로서, 그리고 정치 리더로서 쉽지 않은 긴 인생을 도道와 긍휼의 정신으로 걸어간 선생이다. 하루도 게을리 하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여 퇴계는 결국은 사람의 할 바를 이름하는 도를 깨우치고 학문적 일가를 이룬 분이다. 그러나 여인의 지아비로서 퇴계 선생은 가까이 한 세 여자를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내고, 어버이로서 자식 또한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 보냈다. 학문적으로 도를 이룬 그도 어쩌면 한 인간으로서 마음 둘곳 없이, 외로운 지구별의 나그네와 같은 존재였으리라.

Scholars who enriched of their times in this land left great poems at Youngho-Ru
When you come to Youngho-Ru, you will see the vivid traces of many great scholars of this land who competed among themselves for poetry. The leading literary giants during the period of history such as Mr. Jungmongju, Mr. Kwon Keun, Mr. Kim Jong-jic, and Mr. Lee Toegye left their literary works in Youngho-Ru, leaving their competitive realms and scholarly characterics for the future generations..

Let’s enjoy the writings of the Great Scholar Toegye
客中愁思雨中多 況値秋風義轉加
獨自上樓還盡日 單能有酒便忘家
慇懃喚友蔣歸燕 寂寞含情向晩花
一曲淸歌響林木 此心焉得以枯槎

The thought of stranger is deep in heart in the rain,
I am more worried about the autumn wind than I am.
I came back at time of sun’s going down, I just soothed my mind with a cup of liquor.
The swallow, turning back to his nakedness with his lover, turns to the late flower,
The clean song is sung in the forest, and my heart has become a dry trick.

Scholar Toegye , who climbed to Mt. Cheongyangsan and left many poems,
Mr. Lee Toegye was a poet who enjoyed for metaphor of nature and healed with complicated mind. As a a man, a parent, and a political leader, he carried a rather difficult and long life with a philosophy of justice and compassion. He concentrated ceaselessly in the academic cultivation, he achieved to refine his path of righteousness and established distinction as a scholar. But as a husband of a woman and a father, he suffered loneliness by losing three women and a child by death. Although he achieved high level of academic scholarship, he has no place to rest his lonely mind and probably, he was merely a lonely star of the world.

경호루를 다녀간 이 땅의 정치 리더와 학자들의 시문

영호루의 시문

퇴계 이황 선생의 시문

퇴계, 비오는 늦가을 영호루에서 외로운 선비의 절개를 읊조리고
어느 늦가을 비가 오는 즈음 영호루에 올라 시인은 그리움에 사무쳐 벗과 노니는 제비를 부러워하누나! 그래도 제비는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철 지난 꽃이라도 곁에 두지만, 올곧은 선비는 그 또한 할 수가 없는 지경이다. 비록 숲 속에 청아한 행복에 겨운 노랫소리 울려퍼지지만, 마음 둘 곳 없는 음유 시인은 마음이 외로워 흥을 낼 수가 없다.

덕 높은 학자의 풍모를 지니고 한 세상을 살아간 노 선비의 외로움이 영호루에서 절절히 울려퍼진다. 아! 외로운 음유시인이여! 그대 몸을 누일 마음 따뜻한 여인이라도 곁에 두고 생을 마감했으면 오죽 좋았으랴! 덕이 높을 수록, 외로움 또한 깊어간 퇴계의 삶이 시를 통해 가늠되며 인생의 아이러니를 새감 실감케한다. 진리는 그렇게 깊은 외로움 속에서 꽃피는 열매인가 하노라!

Toegye, in the rainy late autume, lamented his loneliness without any excitement
When it is raining late autumn, the poet ascends to the Youngho-Ru, and envies his longing, his friend and his swearing lady. Still, the swallow sets aside the last flower to comfort the loneliness, but the upright scholar cannot do it either. Though in the woods a pure voice sings in happiness, but an old scholar without a mind is lonely in heart and cannot make excitement.

The loneliness of the old sunbi, who lived in a world of virtuous scholars, echoes in Yeongho-Ru. Ah! A lonely poet! If you were to lay your body around a lady with a warm heart and close your life, it would have been better! The higher the virtue, the more lonely you deepen. With the poetry of Toegye, we realize the irony of human’s life.

By | 2019-03-29T17:03:58+00:00 3월 29th, 2019|Categories: 자연&나눔, 한국의 미|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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