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춘

해동경사연구소 이사장
Mr. Kwon Oh-chun,

Chairman of Institute of Eastasian classics

안동에 갈 때마다 필자는 부용대를 오른다. 부용대는 안동의 하회마을 북쪽 강 건너편에 위치한 절벽을 이른다. 연꽃처럼 솟아오른 바위라 하며 부용대라고 한다. 군자의 꽃이라 불리는 연꽃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군계일학의 기상을 상징하는 꽃이다. 하회마을을 감싸도는 낙동강 변에 위치하는 부용대 정상에서 하회마을을 정확하게 조망할 수 있다.

Every time I go to Andong, I climb to the Buryeongdae, which is a cliff across the river north of Hahoe Village in Andong. Hahoe Village is said to be a space that rose like a lotus flower. The lotus flower, which is called the flower of the fortune, is a flower that symbolizes the very elegant thing that beautifully blossoms even in a harsh environment. You can see Hahoe Village precisely from the top of Buryeongdae, which is located on the side of Nakdong River.

솔숲에서 옛 선인들의 삶과 학풍을 느끼고 기리며
부용대에는 솔숲이 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높은 키를 자랑하는 솔숲에서는 사시사철 솔바람이 분다. 부용대는 하회마을의 종가댁인 풍산 류씨 가문의 두 형제, 서애 류성룡과 겸암 류운용 형제가 기거하며 학문에 정진하던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부용대 입구에 있는 겸암정사는 1564년 류운용 선생이 관찰사 소임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서 학문에 정진하기 위해 건립했다. 겸암은 정사에서 기거하며 학문에 정진했다.

부용대에서 숲으로 올라가는 입구 왼편에는 겸암의 아우인 서애 류성룡 선생이 겸암정사를 건립하며 형을 기리며 쓴 비문이 있다. 그 글을 보면 서애 선생의 겸암 선생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엿보인다.

Feel and appreciate the life and academy of the great scholar in the pine forest.
There is a pine forest on the side. In the pine forest, which boasts a height high enough to cover the sky, Buryeongdae is home to two brother of Pungsan Ryu family, SeoAe Ryu Sungryong and Gyumam Ryu Unyong brothers who are living in Jeongsa, Hahoe Village, which was built it to devote themselves to academic studies. He and his colleagues have been involved in academic affairs.

On the left side of the entrance to the forest from Buryeongdae, there is an inscription written by SeoAe Ryu, Sung-Yong, in honor of his brother. In that article, I can see the respect of SeoAe to his brother Gyumam.

부용대를 오르며 선인의 삶을 반추하며 인간의 길을 생각하며

겸암 선생의 후학 양성터 ‘화천서원,’ 선생의 위폐 배양
퇴계 선생의 제자인 겸암선생은 살아 생전 고향에 내려와 스스로 배우고 후학을 가르치며 생을 마감하였다. 겸암 선생을 기리는 화천서원의 본누각 현판은 지산루地山樓다. ‘높은 산도 땅밑에 낮춘다’라는 지산루는 퇴계 선생께서 겸암 선생에게 ‘항상 마음을 낮추라’는 뜻으로 내린 지산을 현판으로 삼은 것이다. 서원의 동편은 유도문由道門 즉, 도를 따르는 문이다. 겸암의 겸 또한 겸손의 도를 따라가는 사람이란 뜻이다.

화천서원은 겸암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0년인 1786년 유림이 건립했다. 그 해 9월 류운용 선생의 위폐를 모신 후 증손자를 배향하며 이후 100년 동안 향사했다. 화천서원은 1871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러나 1966년대 전후로 후손들이 기금을 모아 1976년 현재의 모습으로 중수되어 보존되고 있다.

A Place of teaching disciple of Gyumam
As a disciple of the scholar Toegye, Gyumam came down to his hometown and finished his life by learning himself, teaching his followers. The honor of Gyumam, Hwachun seowon is written in Jisanru, called “high mountains lower under the land.” is a sign that the scholar Toegye ‘s teaching, who understood Ryu UnYong’ s whiz, and always kept his mind down. The eastern part of the seowon is the gate leading to the guiding gate. Gyum of Gyumam means a person who follows the truth of the humility intention.

Hwacheon Seowon erected in 1786 to honor the scholarship of Gyumam. In September of that year, after serving the ancestral tablet of Ryu Unyong, and a great-grandson was laid out. Hwacheon Seowon was demolished in 1871 by Daewongun’s order to eradicate scholarship. However, since 1966, their descendants have gathered their funds and are preserved as they were in 1976.

서애 류성룡 선생께서 퇴임 후 『징비록』을 집필한 옥연정사

서애 선생이 『징비록』 집필한 옥연정사, 세심재에서
부용대 정상에 올라 하회마을을 조망하고 다시 북동쪽의 가파른 언덕길을 내려가며 옥연정사를 마주한다. 옥연정사는 서해 류성룡 선생이 벼슬길을 마치고 안동에 내려와 건립했다. 1586년에 건립된 옥연정사는 입구 시문에 서애 선생의 감성을 알 수 있는 글귀가 있다.

옥연정사의 사랑채는 하회마을을 측면으로 바라보고 서있고, 뒤로 안채가 자리한다. 사랑채에서 서애 선생은 후손들을 위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친 내용을 기록한 『징비록』을 저술했다. 겸암과 서애 선생 두 형제는 부용대 서편에 위치한 겸암정사와 동편에 위치한 옥연정사에서 각각 기거했다. 두 형제 학자들은 각자 학문을 연마하고 자신들의 공직 활동과 학문을 기록한 서적 집필도 하면서 학문적 동지가 되어 노후를 부용대에서 보냈다.

옥연정사는 서애 선생이 서당으로 사용하던 세심재 洗心齋와 내방객을 맞이한 원락재遠樂齋 2채가 있다. 서당채 주련 편액의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주역계사편 중’
意或從事於斯 以庶幾萬一爾
의혹종사어사 이서기만일이

그 뜻 ‘여기에 마음을 두어 만에 하나라도 이루기를 바란다.’를 헤아리니, 옛 선인도 학문과 도 이루기가 결코 쉽지 않았음을 짐작한다.
서당채의 마루에 앉으면 하회마을의 한 자락과 마주한다. 마루에 감록헌瞰綠軒 편액이 보인다. 이 글은 왕희지의 ‘우러러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래론 푸른 물 구비 바라보네’라는 시어에서 유래한다. 감록헌 마루를 가운데 두고 좌우 방 1칸이 있다. 옥연정사 세심재 마루에서 하회마을을 마주하고 앉아 서애 선생 생전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한다.

세심재 뒷편에 안채로 사용되는 원락재가 있다. 원락재는 친구의 내방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명명했다. 『논어』 1장 학이편의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에서 유래한다. ‘먼 곳으로부터 벗이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글구에서 보듯 예나 지금이나 학인들이 함께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며 학문을 겨룰 수 있는 벗을 갈구했음을 이해하게 된다.
원락재 2칸 마루에 보이는 현판 애오헌愛吾軒은 도연명의 시 ‘오역애오려吾亦愛吾廬’에서 유래한다. ‘나 또한 내 오두막집을 사랑하노라’라는 시어에서 서애 선생의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다. 서애 선생은 원락재에서 기거하며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At Seashimjae of Okyeonjeonsa of the scholar Seoae
I used to climb to the top of Buryeongdae and looks out over the village of Hahoe, descends the steep slope of the north again, and faces the square office. The scholar SeoAe Yoo Sungryong completed the his tenure and descended to Andong. It was built in 1586, and it has an inscription on the entrance that shows the sensitivity of Seo Ae.
The roof of Okyeonjeongsa stands facing Hahoe Village and the anchae house is located behind. SeoAe wrote a book, 『Jingbirok』, which recorded the contents of defeats for the descendants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The two brothers, Gyumam and SeoAe, lived in Gyumamjeongsa, located on the west side of Buryeongdae, and Okyeonjeongsa, on the east side respectively. The two brothers, each of whom was a scholar, worked as a scholarly friend while studying and writing books that documented their public activities and scholarship.

There are two houses of Okyeonjeongsa that SeoAe used Seshimhae as a studying place and Wonshimjae for visitors. The words of the apprenticeship of Sodang’s juryeon are visible.

It means that ‘I hope I will set my heart here and make one in ten thousand.’ I guess that it was never easy to achieve the truth and the scholarship for the scholar of those years.

When you sit on the floor of the Seodang Chae, you face one hem of Hahoe Village. On the floor you can see the juryeon of Ghamrokhun. This article is derived from Wang Huiji’s poetry, “Look up at the blue sky and look down at the blue water.” There is one left and right room in the middle of the Ghamrokhun floor. I visit Okyeonjeongsa and sit on the floor of Seshimjae and face the village of Hahoe, and I imagine what the scholar SeoAe did and thought here.

There is an Wonrakjae used as an inner house on the back of the Seshimjae. He named it as means to wait for a friend. The reason for this is that, in the first half of the 『The Analects of Confucius』, you can see from the heading, ‘Is not it fun to see friends from far away?’ From this point, we may understand that they wanted to have friends who can compete in academic talks and talk about a story in life together.
The board Aeojae of Wonrakjae is derived from the poetry ‘吾亦愛吾廬’ of the poet Do Yeon Myung. You can see the simple life of Seo Ae at the syllabus ‘I also love my hut’. Seo Ae dwelt at Wonrakjae and wrote 『Jingbilok』.

류운용 선생의 학문을 기리고 제자를 양성한 화천서원

자연 속에서 지천명의 의미를 생각하며, 변화가 진리임을 자각하며
필자는 안동에서 한학 공부를 시작하고, 구담정사에 기거하면서 자주 부용대를 올랐다. 필자는 그 즈음 부용대를 찾아 16세기에 이 땅의 선인으로 학문을 연마하고 나라 살림을 살았던 리더들의 삶터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채근했다. 그 즈음 겸암과 서애 두 분은 내가 가야할 삶의 롤모델이었다. 필자는 그 즈음 부용대를 오르면서 늘 생각했다.
‘비록 내가 지금 공부를 해서 벼슬길에 올라 나라를 경영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분들이 이 곳에서 갈고 닦은 학문의 길을 한 번 가보자! 그게 이 땅에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는 동안 추구해 볼만 한 일이 아니겠는가!’

필자는 부용대를 거닐면서 자연에 대한 경이감과 함께 거부할 수 없는 진리를 느끼곤 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여기면서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자연을 훼손하고 이용하며 근대 이후 300년을 살아왔다.
그러나 필자는 노자의 말처럼 ‘천법도 도법자연天法道 道法自然’ 즉,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를 진리로 생각한다. 필자는 신은 자연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자연을 보면서 그 원리를 느끼고, 자연의 엄연함과 원리에 동화되어 사는 것이 사람다운 삶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부용대를 오르고 내릴 때마다 들리는 새소리, 바람소리를 듣고, 주변의 나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해마다 나무의 나이테가 두떠워지는 것을 보고 느끼면서, 어느 날쯤엔가 어떤 깨달음이 왔다.
‘변화가 곧 자연이고, 진리가 아닐까?’
그래서 ‘나도 매일 변화하고 새로워지려고 노력해야겠다’라고 다짐했다. 증자께서도 ‘오일 삼성 오신吾日 三省 吾身’이라고 하셨듯이, 매일 반성하고 각성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옛 성인도 예외가 아니었음을 이해하며 필자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Aware that change is the truth
I started studying classics in Andong, and I frequently went to Buryeongdae while living in Gutamjeoungsa. At that time, I found my way to go in the life of the leaders who lived in the 16th century. I was always thinking about those times and scholars, while climbing the Buryeongdae.
‘Even if I am studying now and cannot manage the country, let me follow to the path of study that they have cultivated here! It is something that should be pursued while I was born on earth and living as a human being!’

I walked the forest of pine trees of Buryeongdae and felt the truth that I could not reject with the wonder of nature. Since the Industrial Revolution of the 18th century, human beings have been regarded as a warrant of all things, and have been living and exploiting nature for 300 years since modern times.
However, I think the truth is that ‘the sky is imitated by nature and the truth imitates nature’, as in the words of 『Nozai』.I think that God came from the nature. I feel the principle of seeing nature, and I think it is human life to live in harmony with the nature and the principle of nature.

When I climbed up and down Bureyongdae, I heard the sound of the birds singing, the wind, and watched the surrounding trees change. As the sun went down and the moon went, and the yearly rings of the trees were seen to fall, one day, some sense of enlightenment came to im my mind.
‘Could change be a nature and a truth?’

So ‘I am going to change every day and try to be new.’ I also tried to reflect on my own and think about changing the meaning of the scholar Jyungsa, “I should reflect myself three times such as get up ,and eat, and before going to b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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