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인류 문명사의 인프라 컨텐츠를 조성하는 일이다. 20세기의 건축문화와 건축기술을 녹인 랜드마크 건물을 설계한다는 것은 20세기 문명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일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60년 역사의 건축그룹 대표로서 이 시대의 건축문화를 이끌어가는 허승회 회장을 통해 그 철학과 건축감성, 그리고 시대의 건축문화를 파악해본다.
Architecture is the creation of infrastructure contents of human civilization that creates something out of nothing. Designing landmark buildings that combine the 20th century’s architectural culture and construction technology is one of the pillars of 20th century civilization. Born in Korea and representing the 60-year-old architecture group in the United States, Chairman Mr. Huh, Seung-Hoe leads the architectural culture of this era. Editor Hyun, Jihae / Photographer Kim, Joonam

지난 20년간 미국을 대표하는 건축그룹 PDI를 경영해온 한국이 낳은 지구촌 건축가 허승회 회장

미네소타의 아시아인 최초의 미국 건축협회 명예원로 회원 (FAIA)이 된 PDI 디자인그룹 허승회 회장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건축가다. 허승회 회장은 한양대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첨단 건축기법을 배우기 위해 1971년 미국 미네소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 건축업계에서 시대적 패러다임을 만들었다.
그 계기는 허 회장이 설계한 건축물이 건축주에게 편익을 제공함은 물론 도시 브랜드를 창출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Mr. Huh, Seung-Hoe, chairman of the PDI Design Group, became the first Asian American member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ure (FAIA) in Minnesota. In 1971, Mr. Huh, Seung-Hoe graduated architecture at Hanyang University and went to the University of Minnesota to learn advanced construction techniqueshe made a paradigm of American Architecture. The reason is that the architecture designed by Chairman Huh created a city brand as well as providing convenience to the owner.

허승회 회장이 설계한 최고의 한국 건물 주 캐나다 한국 대사관

미네소타 대법원

미네아폴리스 컨벤션 센터 내부

미네소타 대법원 내부

미네소타주를 설계한 건축가

허승회 회장이 건축가로서 처음 설계에 참여한 건축물은 미네소타 로스쿨이다. 첫 설계작품이 친 환경 작품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이후, 그는 미국 대학의 로스쿨과 법원 건축물 설계를 도맡아했다. 특히 매년 500여개의 행사가 열리는 미네아폴리스 컨벤션 센터는 미네소타를 상징하는 랜드마크 건물이다. 이 컨벤션 센터의 설계를 한 사람이 PDI그룹의 허승회 회장이다.
이후 허 회장은 미네소타의 법대, 대법원, 험프리 기념관, 범죄 연구소, MPR 방송국, GE 캐피탈그룹 본사 등 도시 곳곳의 주요 건물의 설계에 참여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허 회장은 미네소타주를 건설한 건축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Architect designed the State of Minnesota

The building that Mr. Huh first participated in designing as architect is Minnesota Law School. Since his first design was well-received for being eco-friendly, he was responsible for the design of law schools and court structures at American universities. In particular, the Minneapolis Convention Center, which hosts over 500 events each year, is a landmark building that symbolizes Minnesota. The architect of the convention center is Mr. Huh Seung-hoe, chairman of PDI Group. Since then, he has been involved in the design of major buildings throughout the city, including Minnesota’s law school, the Supreme Court, the Humphreys Memorial, the Crime Institute, MPR stations, and GE Capital Group headquarters. That’s why he is called as the architect of Minnesota.

중국의 리조트 단지

아제르바이젠 골프리조트

세계 70개국의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 리조트, 박물관, 문화센터 등 설계

허승회 회장의 건축가로서의 실력과 브랜드 네임이 알려지면서 업무 영역도 지구촌 곳곳으로 확장되었다. 허 회장이 이끄는 PDI 디자인 그룹은 현재 미국 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아제르바이젠, 이라크 등 지구촌 70여개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허 회장은 리조트 건설붐을 타고 괌리조트, 아제르바이젠과 이라크(아르빌 지역)의 골프 리조트 & 빌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허 회장은 박물관 설계에도 다수 참여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일본 겐조 탕게 교수와 함께 미네아폴리스 박물관과 예술대학 프로젝트이다. 이후 장우성 월전 미술관, 대전 지질 박물관, 청평 생애 박물관, 세종 문화센터 (증축)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허승회 회장은 대한민국에서도 건축설계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992년 캐나다 한국 대사관 설계 현상 공모에 참여해 당선된 허 회장은 한국의 건축인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이후 서초동 한전아트문화센터 공모에서 당선되기도 했다. 한전아트문화센터는 6개의 복잡한 기능을 대형 몰(Mall) 형태에 담는 가운데, 이를 외형적인 구조에서 반영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Participate in architectural projects in 70 countries, designing resorts, museums, cultural centers, etc.

With the recognition of Chairman Huh’s ability as an architect and his brand name, his work has expanded to other parts of the world. The PDI Design Group, led by Huh, is currently working on projects in more than 70 countries around the world, including the United States, China, Vietnam, Azerbaijan and Iraq. Since 2008, he has been working on the resort construction to develop golf resorts and villas in Guam Resort, Azerbaijan and Iraq (Arville). He also participated in the design of the museum. His representative works include the Minneapolis Institute of Art and the College of Art project with Professor Kenzo Tange of Japan. Since then, he has worked on projects such as Jangwooseong Woljeon Art Museum, Daejeon Geological Museum, Cheongpyeong Life Museum and Sejong Cultural Center (extension).
Chairman Huh also conducted architectural design projects in Korea. Chairman Huh, who was elected to participate in the design contest for the Korean Embassy in Canada in 1992, began to form a relationship with Korean architects. Later, he was elected at the competition for the KEPCO Art Culture Center in Seocho-dong. The KEPCO Art Cultural Center received great attentions by putting six complex functions into a large mall, reflecting them in its external structure.

대구 컨벤션센터

부산 벡스코

부산 벡스코와 한국 최고의 레지던스 한남더힐, 삼성동아이파크 설계

한편, 허승회 회장은 미네아 폴리스 컨벤션 센타 건립 이후 세계적인 컨벤션 설계 전문가로 부상하여, 24 개 이상의 컨벤션 설계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작품이 부산 벡스코, 대구 컨벤션 센터이다. 뿐만 아니라, 허 회장은 한국에서 현재 최고가를 기록하는 레지던스 한남 더힐, 삼성동 아이파크의 설계를 통해 한국의 상류층 사회에서 명성이 자자하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부자들이 주목하는 ‘풍수’라는 측면을 고려하면서 조망, 향, 통풍 및 친환경에 집중하는 가운데, 건축주와 사용자의 관리와 유지까지 배려한 설계를 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자신의 건축 철학에 대해 부연했다
“두 건물의 설계 고려는 모두 강을 끼고 있어 강에 대한 경관을 극대화했습니다. 아이파크의 경우, 재물을 상징하는 물이 집으로 흘러 들어오는 조망을 구현했습니다. 또한 복잡한 대로에서 단지에 진입하지 않도록 출입구를 대지 뒤로 돌려, 뒤편 진입로에 인공 폭포를 만들고 꽃나무를 심어 새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Design of Busan BEXCO and Korea’s Best Residence Hannam The Hill, Samsung Dong I Park

Meanwhile, Chairman Huh has emerged as a global convention design expert since the construction of the Minneapolis Convention Center, where he participated in more than 24 convention designs. His representative works are BEXCO and Daegu Convention Center in Korea. In addition, Chairman Huh is renowned in Korea’s high-class society through the design of Residence Hannam The Hill and Samseong-dong i-Park, which currently have the highest prices in Korea. This is because it was designed with consideration for the management and maintenance of the owners and users while focusing on the view, direction, ventilation, and eco-friendliness, Furthermore he designed it, while considering the ‘feng shui’ aspect that Korean rich people pay attention to. Huh talked about his architectural philosophy.
“The design considerations of both buildings are along the river, maximizing the landscape of the river. In the case of the iPark, the waters that symbolize riches flow into the house. We also turned the entrance back to the ground to avoid entering the complex from the busy street, creating an artificial waterfall on the back ramp and planting a flowering tree to listen to the sound of birds.”

한남더힐 조감도

한남더힐 내부 분수대

삼성동 아이파크

이외에도 허 회장은 한국 최고의 레지던스로 손꼽는 한남더힐을 설계했다. 한남더힐의 곡선형 주거 단지는 각 유니트 사이에 스카이 가든을 두어 야채와 꽃을 가꿀 수 있게 하면서, 이를 이용하여 통풍을 가능하게 했다. 또한 일부 주택단지는 산을 등지고 배치해야 하기 때문에, 바위를 쪼갠 듯이 설계하면서, 아랫집 지붕가든이 윗집의 가든처럼 보이게 했다. 한편 허승회 회장은 “소개된 프로젝트 모두 수많은 업체들과 함께 만든 작품이며, 특히 한국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한 한국 건축가들에게 감사를 드린다”라고 부연했다.

Chairman Huh also designed Korea’s representative residence in a way that combines Korean philosophy and urban aesthetics to create a result that satisfies both the owner and the user.
He also designed Hannam The Hill, one of the high-priced residences in Korea. Hannam The Hill’s curved residential complex has a sky garden between each unit, allowing vegetables and flowers to be grown, while allowing ventilation. In addition, some housing complexes had to be placed on the back of the mountain, so the rock roof was designed to look like a lower house roof garden. On the other hand, Chairman Huh added, “All of the projects introduced were made with numerous companies, especially I would like to thank to Korean architects who participated in the Korean project.”

미네소타대학 유학시절 파카 교수의 첫 강의를 듣은 허승회 회장은 파카 교수와 평생 제자와 스승의 관계를 유지하며 스승이 설립한 PDI디자인그룹을 이끌어 가고 있다

미네소타 건축대학 유학, 평생의 멘토 파카 교수 조우하고 재능 연마

허승회 회장이 미국 중북부 도시 미네아폴리스의 대표적인 건물을 설계하게 된 배경은 미국 건축업계의 패러다임을 만든 건축가들과 함께 배우고 일하며 터득한 그의 학습지식과 업무경험에 기인한다. 허 회장은 1970년 한국 문교부에서 일하며 만난 미네소타 교육대학 학장 켈러 박사로부터 미네소타 건축 대학을 추천받아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는 현장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건축사들이 대학에서 교수가 되어 후학을 양성한다. 미국의 ‘에로 싸리넨’ 건축 사무실에서 디자인 책임자로 일하며 명성을 쌓던 파카 교수는 미네소타 대학교수로 초대되었다. 교수로 재직하면서 건축설계 사무실을 운영하던 파카 교수는 당시 미네아 폴리스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인 ‘예술종합단지 설계프로젝트’를 일본의 동경제대 출신의 건축가 겐조 탕게교수와 협업으로 진행했다. 미네소타 대학에서 허 회장이 수강한 첫 과목이 파카 교수의 강의였다. 학교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허 회장은 파카 교수의 건축사무소에 인턴십으로 들어가 실무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허 회장은 오래 전 일을 상기하며 당시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당시 교수님이 제게 맡기신 첫 번째 일은 어린이 극장 프로젝트의 문(door) 상세를 그리는 일이었죠. 건축가가 문 상세를 디자인 한다는 것도 제대로 몰랐기 때문에 문의 상세 (door detail) 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조심스레 옆에 있는 경험자에게 도면 샘플을 구해서 연구하면서 결국 도면을 그려 냈습니다. 제 그림을 보고 파카 교수님과 담당 보스가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면서, “다음은 평면을 맡아 보라”하면서 새로운 임무를 주셨지요. 제가 배우면서 열심히 하여 성과를 내었기 때문에 파카 교수님 사무실 초고속 승진을 했습니다.”

1970년대 미국 건축학계를 풍미하던 건축사조는 브루탈리즘(Brutalism)으로, 당시 대부분의 건물들이 거친 콘크리트 덩어리였다. 그 이후 1980년대부터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이 유행했으나, 1990년대 들어 디콘스럭셔니즘 (De-Constructionism) 등의 각종 사조가 난무했다. 그러나 다시 미니멀리즘 (Minimalism)이 대두하여 2010년대까지 이어졌다.
미국 건축학계를 풍미한 이러한 사조와는 달리 파카 교수는 ‘에로 싸리렌’이라는 설계 철학을 이어가며, ‘모더니즘’을 고수했다. 파카 교수는 무엇보다 7개의 디자인 원리(Principal)를 중심으로, 기능, 편리성, 효율성을 추구하며 건축주와 사용자를 고려한 건축으로, 예술성이 있는 건축을 추구했다. 허승회 회장은 이런 파카 교수의 설계 철학을 수용하는 가운데, 자신의 건축감성을 살려 문화와 시대적 변화를 통찰하는 건축을 강조했다.
“제가 미국 건축학계에 몸담고 일을 한지 어언 50년이 되어갑니다. 그동안 건축 학계를 풍미한 건축사조들을 뒤돌아 보면, 모든 유행과 사조들이 시대를 넘어 다시 되돌아옵니다. 그 이유는 설계란 인간을 위한, 인간이 원하는 건물의 형태와 공간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고, 인간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가 동일하기 때문이지요. 다만 시대마다 경제 패러다임과 시대정신이 다른 것은 결국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철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Studying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Encounter Lifetime Mentor Prof. Parker

Chairman Huh’s design of a representative building in Minneapolis, a mid-North American city, is based on his learning and work experience, which he learned and worked with architects who created the paradigm of the American architecture industry. Mr. Huh studied abroad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Architecture with the recommendation of Dr. Keller, the Dean of the Minnesota University of Education, who met with the Ministry of Education in Korea in 1970.

In the United States, architects who are recognized for their skills in the field become professors in colleges to train their students. Prof. Parker, who worked as a head of design at the American office of “Ero Saarinen”, was invited to be a professor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Prof. Parker, who was a professor of architecture design while working as a archtect, collaborated with Professor Kenzo Tange, an architect from Japan’s Tokyo University, on the project, “The Art Complex Project,” which was the largest project in Minneapolis.
He took the Parker’s class at first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Chairman Huh is recognized for his ability at the school, began his internship at Prof. Parker’s architecture office and began gaining practical experience. Mr. Huh reminded his stories of a long time ago and shared his experiences.
“The first thing my professor gave me at that time was to draw the door details of the children’s theater project. I didn’t even know the architect was designing the door details, so I was confused because I didn’t know where and how to start the door detail. However, I carefully obtained a drawing sample from an experienced person next to me and studied it. After seeing my painting, Prof. Parker and my boss complimented me, “Well done,” and then gave me a new assignment. As I learned and worked hard, I made a very fast promotion at Prof. Parker’s office.”

The architectural trend that swept the American architecture world in the 1970s was Brutalism, where most buildings at that time were rough blocks of concrete. Since then, Post Modernism has been in vogue since the 1980s, but in the 1990s, various trends such as de-constructionism have been around. But again Minimalism emerged until the 2010s.
Unlike these trends, which struck the American architectural community, Prof. Parker continued to have the design philosophy of ‘ero sariren’ and adhered to ‘modernism’. Prof. Parker pursued architecture with artistic focus on architecture, consideration of owners and users, with a focus on seven design principles. Chairman Huh embraced Parker’s design philosophy, emphasizing architecture that used his architectural sentiment to gain insight into culture and changes in time.
“It’s been 50 years since I worked in the American architectural community. In the meantime, if you look back at the architectural trends, all the trends are back in time. The reason is that design is to create the shape and space of a building that humans want, and because the values and goals that humans pursue are the same. The reason why the economic paradigm and the spirit of the age are different from age to age is because people’s way of life and philosophy are different.”

2002년부터 한상대회 리딩CEO로 선정되어 해마다 한국에서 개최된 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허승회 회장은 2019년 10월 여수한상대회에 참가하여 고국의 발전상을 목격하며 감격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열성과 끈기로 일하며, 업계에서 인정받는 건축가

열성과 끈기, 그리고 창의적 재능으로 업무에 성과를 거두면서 허승회 회장은 회사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했다. 그 결과, 허 회장은 1980년에는 파트너가 되어 회사 운영에도 참여하며 경영자적 안목을 키워갔다. 무엇보다 허 회장은 프로젝트가 주어지면, 먼저 최상의 결과를 창출하기 위해 충분한 생각과 고심을 한 후에 업무를 처리해서 성과를 냈다. 뿐만 아니라, 허 승회 회장은 본인의 업무를 하면서도, 동료들의 일까지 도와주었기 때문에 사내에서 ‘Fireman’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허 회장은 당시 자신이 그렇게 일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처음에는 유학후 한국에 돌아오기 위해 일을 빨리, 많이 배우려고 주말과 밤에도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많이 배우게 되고 성과도 나면서, 동시에 일이 너무 재미있어 더욱 열심히 하면서 성취감을 얻게 되었죠. 그러나 일주일에 2번 골프를 칠 정도로 휴식도 하면서 일했습니다.”

Worked with enthusiasm and persistence, recognized architects in the industry

Chairman Huh has built a solid position in the company by earning a lot of work with enthusiasm, persistence and creative talent. As a result, Chairman Huh became a partner in 1980 and participated in the operation of the company, raising managerial perspective. First of all, when he begin to start a project, he think hard enough to produce the best results, and then worked on the results. He also earned the nickname “Fireman” in-house because he helped his colleagues while doing his jobs. Chairman Huh explained the background of his work at that time.
“At first, I worked on weekends and nights to learn a lot of work quickly in order to get back to Korea after studying abroad. As a result, I learned a lot and achieved, and at the same time, the work was so fun that I worked harder and gained a sense of accomplishment. But I worked with a break, enough to play golf twice a week.”

1997년 파카 교수의 뒤를 이어 TLPA 대표로 취임, 건축설계업의 성장 주도

지난 1997년 허 회장은 파카 교수가 설립한 The Leonard Parker Association(TLPA)의 새로운 대표로 취임했다. 당시 파카 교수는 자신의 아들이 건축가 교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표 자리를 허 회장에게 넘겨준 것이다. 처음 제의를 받고 허 회장은 거절을 했지만, 거듭되는 제안을 수용하기 위해 5가지 조건을 파카 교수에게 제시했다. 그 중 중요한 한 두 가지에 대해 허 회장이 설명했다.
“첫 번째는 회사 규모문제로서, 파카 교수님은 최고의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30명으로 한정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그 숫자를 최소 120명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두 번째는, 당시 파카 교수님은 상업시설, 감옥, 병원 설계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하에 프로젝트의 성격을 통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기능적인 건물도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TLPA의 미션에 부합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프로젝트 이든, 우리의 디자인 재능으로 고객과 사회에 공헌 해야 한다.”고 주장했죠.”
파카 교수는 오랜 고심 끝에 허승회 회장의 조건을 수용했다. 그리고 1997 년 취임 후 허 회장은 취임사에서 약속 했듯이, 1년 후에 28명의 직원을 60명으로 증가시키며 조직 성장을 주도했다. 그리고 2년 차에 파카사 아리조나 지사장 루퍼Loope 교수가 100년기
업 듀란그룹Durant Group의 CEO가 된 후 양사 합병을 시도했다. PDI는 디자인을, 듀란은 경영을 맡는다는 조건으로 통합하여, 미국은 물론 글로벌 건축설계 업계의 발전을 주도해 가기로 했다.
허 회장은 1999년 양사의 합병 이후, 미국 전역에 16개 지사를 설치하고 직원도 350명 이상 충원했다. 통합회사에서 파카 교수가 1대 대주주, 허 회장이 2대 대주주가 되었다.

Becomign a CEO of TLPA in 1997, following Parker, Leading the growth of the architectural design industry.

In 1997, Chairman Huh became the new representative of The Leonard Parker Association (TLPA), founded by Prof. Parker. At that time, Parker handed over his position to Chairman Huh even though his son was an architect professor. Upon receiving the first offer, Chairman Huh declined, but presented five conditions to Prof. Parker to accommodate the repeated proposal. Chairman Huh explained three of these important things.
“The first is the size of the company, and Prof. Parker has asked 30 people to maintain the best design. But I thought we’ve got at least 120 people working on a global project. So I claimed to be increased, Secondly, at that time, Prof. Parker was controlled the nature of the project under the principle of design-centric work. But I insisted on “designing buildings in order to meet the mission of TLPA, whether it’s a project or our design talent, we have to contribute to our customers and society.”
Prof. Parker accepted the conditions of chairman Huh after a long struggle. And since taking office in 1997 as promised by his inaugural office, chairman Huh added that after a year, 28 employees would increase to 60 and achieved the growth. And in the second year, when Parker’s Arizona chief Mr. Loope is becoming CEO of Durant Group, they tried to merge the two companies.
Under the promises that the PDI take charge in Design, and Duran take charge in management. They incorporated under the terms of their management, leading to the development of the global architectural design industry as well as the United States.
Since the merger of the two companies in 1999, he has established 16 offices across the United States and has recruited 350 employees. In the combined company, Prof. Parker became the largest shareholder and Chairman Huh became the second largest shareholder.

부산 롯데107층 빌딩

2006년 PDI월드 그룹과 PDI 컨소시움 발족, 지구촌 설계프로젝트 참여

이후 7 년간 회사는 양사 체제로 운영되었다. 그러나 양사의 문화 차이로 합병 후 3 년차에 대표 루퍼가 파면 되고, 5년 후 파카 교수가 반강제로 정년 퇴직하게 되었다. 그런 결정에 합의할 수 없었던 허 회장은 2006년 듀란과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PDI 월드그룹 (PDI World Group, 이하 PDI)을 새로이 출범시킨 허 회장은 그 같은 결정을 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설계디자인 중심의 건축사무실과 경영에 중점을 두는 건축사무실이 추구하는 설계 운영 철학이 달라서 함께 일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보드 멤버로 교체되면서, 주식 보유에 무관하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상황이 발생했죠. 회사명도 듀란으로 변경하고 파카를 제외하면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함께 일한 7년 동안, 배운 것도 많았고, 그 점 때문에 ‘새로운 건축사무실을 시도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다면 디자인 중심 PDI그룹의 건축가들이 추구하는 건축철학은 무엇일까?
“우리가 하는 설계작품은 모양이 동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변환경 즉, 컨텍스트(Context)에 부합하는 가운데, 기능을 중시하며 예산에 맞추어 설계합니다. 자연의 이기를 철저히 이용하는 친환경 건축에 충실하면서, 인간이 조금씩 다르듯 우리가 설계한 건물도 위치, 기능, 예산 등에 따라 변화를 추구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중요시하는 것은 ‘건축주의 꿈을 건축으로 실현시킬 수 있도록 고심하고, 사용자와 운영 관리자의 입장에서 설계”를 하기 때문에 건물 형태가 변화하게 됩니다. 이런 디자인 철학을 설계에 반영하기 때문에 건축주들이 우리를 찾는 것 같습니다.”

2006년 이후 허 회장은 시대에 부합하는 경영이념과 전략을 구사하며 PDI 그룹을 재출범시켜 운영하고 있다. 특히 허 회장은 2000년에 구상한 PDI 컨소시움(Consortium) 회원사 시스템을 2006 년 6월부터 실행하여 운영하는 가운데, 새로운 건축설계업을 실행했다. 그 원리는 전문화 시대에 지구촌 곳곳에서 건축업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을 가진 전문가들과 함께 설계팀을 형성하여, 특히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최고의 성과를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기본 원리를 실행에 옮겨, 현재 세계 각국의 120개 회사가 PDI Consortium Member로 등록되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 전세계에 500개 이상의 기업을 회원사로 확충할 계획을 가진 허 회장은 그 비전에 대해 부연했다.
“그렇게 하면, 우리 PDI가 선정하는 건설 관련 자재도 ‘PDI Certified’ 마크를 찍어 품질향상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활용할 경우 글로벌 설계 전문기업으로서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전세계 건축 산업의 인재들과 협력네트워크를 출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그 효과가 엄청날 것입니다.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로 많은 회사들이 무너졌지만, 우리는 이 시스템 덕분에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도중 허 회장은 건축가로서의 자신의 꿈에 대해 언급했다
“건축가로서 꼭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친 환경에 도움을 준다고 믿고 있는 초고층 건물을 지구상에 세우는 일입니다. 그동안 롯데 107층, 해운대 150층, 100층 등 많은 초고층 건물을 설계건축했지만, 50 층 이상인 건축물을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의 꿈은 우리의 미션과 부합하는 일인데, 저렴하면서도 예쁜 조립 주택을 개발하고 제작하여 지구촌의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입니다.”

Launched PDI World Group and PDI Consortium in 2006 and participated in global design project

For the next seven years, the company operated under both companies. However, due to cultural differences between the two companies, the CEO Looper was dismissed three years after the merger, and five years later, Prof. Parker retired as an anti-mandatory retirement. Unable to agree on such a decision, chairman Huh decided to separate from Duran in 2006.
And chairman Huh, who launched the PDI World Group (PDI), explained the background behind the decision.
“I realized that it was difficult to work together because of the different design and operating philosophy of design-oriented architecture and management-oriented architecture. And when they were replaced by young board members, there was a situation where decisions were made regardless of stock holdings. They also changed the company name to Duran and I thought we couldn’t work together anymore. Of course, during my seven years of working together, I learned a lot, which made me think, ‘I should try a new architecture office.’

So what are the architectural philosophies pursued by the architects of the design-oriented PDI Group?
“Our designs are not the same shape. We focus on functionality and design on a budget, in line with our surroundings, or context. While faithful to eco-friendly architecture that takes full advantage of nature’s energy, our buildings are designed to change according to location, function, and budget. Most importantly, the building’s shape changes because we are ‘working hard to make architects’ dreams come true in architecture and designing them from the perspective of users and operations managers’. It seems that the owners are coming to us because they reflect this design philosophy in their designs.”

Since 2006, chairman Huh has relaunched and operated the PDI Group, using management principles and strategies that match the times. In particular, Chairman Huh started and operated the PDI Consortium member company system, which was envisioned in 2000, and he launched a new architectural design business in June 2006. The principle is that in the era of specialization, design teams are formed with experts in the field of construction industry in various parts of the world, especially in large projects, to achieve the best results. Putting this basic principle into practice, 120 companies from around the world are currently registered as PDI Consortium Members and participating in the project. Chairman Huh, who plans to expand more than 500 companies worldwide as a member, adds to the vision.

“In this way, the construction materials selected by our PDI can also be marked with the ‘PDI Certified’ mark to achieve quality improvements. This system will be very effective because it will not only strengthen your competency as a global design company, but will also launch a collaborative network with talents from the global building industry. Many companies collapsed in the 2008 financial crisis in the United States, but this system helped us overcome the crisis.”
During the interview, chairman Huh mentioned his dream as an architect.
“As an architect, I want to try to build skyscrapers on the planet that I believe are conducive to the environment. Many high-rise buildings, including Lotte 107, Haeundae 150, and 100, have been designed and built. Another dream is to meet our mission : to develop and build affordable, beautifully built homes to help those who need a home in the world.”

월전 미술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길을 개척하는 파이오니어

젊은 시절부터 예기치 않았던 일을 겪으며 새로운 인생길을 개척했던 허승회 회장. 그는 자신의 건축 철학처럼 사회에 공헌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추구해왔다.
그가 갖는 삶의 인식은 어쩌면 76년 인생을 살아온 건축가의 소망이 아닌, 현자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했다.
“인생은 진흙 길을 걷는 것과 같습니다. 현명하게 성공적으로 사는 방법은 비전을 가지고 멀리 보면서 걸어가되, 동시에 현실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발 밑을 계속 보며 걸어야, 각자가 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Pioneer created a new way of life without settling in the present

Chairman Huh has pioneered a new way of life through unexpected events since his youth. He has continually sought to contribute to society like his architectural philosophy. His perception of life sounds like the voice of a sage, not the wish of an architect who has lived for 76 years. He advised young people.
“Life is like walking on muddy paths. The way to live wisely successfully is to walk with a vision while looking far away, while at the same time being true to reality. That’s why I think it’s only necessary to keep walking on foot to achieve your goals and live a successful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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