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명철 교수(동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Prof. Youn Myung Chul
(Professor, Department of History, Dongguk University)

또 나는 길을 떠나 사막길을 달리고 달려 ‘사마르칸트’로 들어왔다. 몇 번째인지 모른다. 꽤 오래전, 어쩌면 15년 전인지도 모른다. 알타이 산 머리의 하양눈과 기슭의 하양몸을 드러난 자작나무와 백양나무숲들, 그리고 달리는 길옆으로 끝이 안보이게 펼쳐진 꽃밭들을 지나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드문드문 나타나는 모래사장 때문에 약간 당혹감을 느꼈는데, 어느새 도시가 나타나는데, 풀빛 하늘빛이 타일들이 비빔밥처럼 잘 맛나게 뒤섞여 똥그란 지붕과 칼날처럼 반듯한 벽들도 이루어진 건물들 숲이었다. 거기서 본 것은 타일과 돌로 만든 꽃밭들이었다. 그리고 때로는 흙먼지들이 아지랑이처럼 흩날리는 길에 미(美)로 가득찬 발자국을 찍어내는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신비한 표정을 지닌 여인들의 나라에 도착한 자신을 깨달았다. 그러자 야릇한 흥분이 일기 시작하였고, 내 유전인자 속에 봉인되었던 본성이 꿈틀거리면서 세상이 달리보이는 듯했다. ‘자유’라는 낱말이 가슴속으로 터져나오는 듯했다.
한번은, 2013년이었다. 자동차로 아시아의 동쪽, 한반도의 동남쪽 경주에서 자동차를 타고 출발하여 터키의 이스탄불까지 갈 때도 이곳에 들렸다. 그리고 도시 바깥쪽인 아프라시압 궁전 박물관을 방문하고, 앞에 세운 실크로드 기념비에서 강연과 신라금관, 소구인으로 추정되는 신라의 모조 토우를 기증한 특별한 행사를 가졌다.

I left the road, ran along the desert road, and entered ‘Samarkand’. It may be a long time ago, maybe fifteen years ago. It crossed the border through birch trees and birch groves that revealed the snow on the Altai head and the white body on the shore, and flower fields that stretched out of the way.
I was a little embarrassed by the sparse sandy beaches, and soon a city emerged, a grassy sky with tiles that blended together and tasted like bibimbap.
What I saw there were flower gardens made of tiles and stones. And sometimes they were beautiful women who photographed their footsteps full of beauty on the way of dust. I realized myself that I had arrived in the country of the most beautiful and mysterious women in the world. Then the freaking excitement began, and the world seemed to be different as the nature that was sealed in my genetics faltered. The word ‘free’ seemed to burst into my heart.
Once, it was 2013. It was also here when I started by car from the east of Asia and southeast of the Korean peninsula to Istanbul, Turkey.
He also visited the museum of the Afraciab Palace outside the city and had a special event at the Silk Road Monument, where he donated a lecture, a Silla Brass, and a Silla Imitation Toe, believed to be Soguin.

고구려 사신단

고구려 사신도

유라시아 대륙의 센터인 중앙아시아의 문화지대, 소구드의 사마르칸트

중앙아시아에서 문화가 발달했었고, 실크로드의 무역과 생산에 관련된 지역은 소구드, 즉 소구디아이다. 지리적인 환경을 고려하면 3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판지켄트(Panjikent) 등이 있는 중앙 소구드, 서남부의 부하라(부하라칸국)가 중심인 서부 소그드, 그리고 카쉬카다리야인 남부 소그드이다. 사마르칸트는 오아시스 도시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 중앙아시아에서도 한가운데 있는 아주 아주 오래된 도시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얼굴, 말, 문화, 건축물 등, 거기에다가 과거 쏘비에트연방의 한 지역이었다. 1965년에 Ya. 굴로모프(Gulomov)가 그 도시의 바깥쪽인 무너진 언덕과 폐허 더미인 아프라시압(Afrosiyob)궁전의 유적을 발굴하다가 폐허에서 7~8세기에 제작된 귀중한 벽화를 발굴하였다. 화려하고, 예쁘고,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묘한 색감을 가진 벽화가 네 면을 돌아가며 그려졌는데, 바르후만왕이 외국 사절들을 영접하는 장면이었다. 남벽에는 이 도시에 들어오는 사절들이 그려져 있다. 북벽은 2개로 나누어졌는데, 동쪽 부분은 창과 활을 들고 싸우는 말 탄 사람들이, 서쪽 부분은 강변에서 사람들과 배, 앉아 있는 여인들을 묘사하였다. 동벽은 벌거벗은 아이들, 코끼리, 말, 연꽃, 물고기, 새들, 동물들이 있다. 그런데 서벽에서 바르후만왕이 당나라, 초치, 인도, 이란, 토하리스탄 같은 외국사절들을 영접하는 의식의 장면이 있는데, 그 끄뜨머리에 2명의 한민족이 서있었다.

Samarkand, Sogud, the cultural region of Central Asia, the center of the Eurasian continent

Culture developed in Central Asia, and the region involved in the trade and production of the Silk Road is Sogud, or Sogudia. Considering the geographical environment, it consists of three parts: the central Sogur, which includes Panjikent, which is centered in Samarkand, the western Sog, which is centered in Bukhara (Bukhara Khan State) in the southwest, and the southern sog, which is the Kashka Dariya. .
Samarkand is an oasis town. It is a very old city in the middle of Central Asia, in the middle of the Eurasian continent. Not so long ago, the faces, horses, culture, architecture, etc., were completely different from ours, and they were part of the former Soviet Union.
In 1965, Gulomov excavated the ruins of the crumbling hills outside the city and the ruins of the Afrosiyob Palace, a pile of ruins, and then found valuable murals from the ruins during the 7th and 8th centuries. Colorful, pretty, and strangely colored murals unfamiliar to Koreans were painted on four sides, where King Barhuman accepted foreign envoys.
On the south wall are envoys entering the city. The northern wall was divided into two, the eastern part depicting horse riding men fighting with spears and bows, and the western part depicting women, boats and women sitting by the river. The east wall contains naked children, elephants, horses, lotuses, fish, birds, and animals. On the west wall, however, there was a scene of King Barhuman receiving foreign envoys such as Tang, Chochi, India, Iran, and Toharistan, and two Koreans stood at the end.

아프라시압 성벽 (알렉산더가 건설한 도로부분이 남아있다)

사라즘 유적지 무덤에서 발굴된 사람 (후잔드 박물관)

화려한 복장의 고구려인 4천 Km의 사마르칸트에서 중앙아시아인과 교류

젊고 잘생긴 고구려 사신들은 머리에 전형적인 조우관을 쓰고, 두 손을 앞으로 모으는 고 있으며, 허리에는 고리가 긴칼(환두대도)를 차고 있다. 고구려가 당나라와 마지막 전쟁을 벌이는 7세기 중반 경에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사마르칸트까지 보낸 것으로 추정한다. 거의 4000여 km의 거리이다. 투르크(돌궐)이나 소구드인들의 도움을 받았을 가능성은 높다. 이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놀랐고, 특히 한국인들은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믿어질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반도에 갇혀 살았고, 인식도 기껏해야 중국의 중심부만을 기웃거리는 정도였었기 때문이다. 실은 아직도 ‘사마르칸트’라는 도시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러니 고대에 우리와 중앙아시아는 전혀 접촉이 없었고, 그들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마르칸트는 실크로드 가운데의 한 가운데 있으면서 중앙아시아의 소구드 상인들이 낙타 등에 비단 등의 물건 등을 싣고 이동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한때는 티므르 제국의 수도로서 세계 문화의 중심지라는 평가도 받았었다.

Goguryeo interacted with Central Asians, Samarkand, far away from 4,000 Km

The young and handsome Goguryeo messengers wear a typical jaguan on their heads, bringing their hands together, and their waists with long rings. It is estimated that Koguryo sent Samarkand as part of its foreign policy in the middle of the seventh century during the last war with the Tang. The distance is almost 4000 km. Most likely, they were helped by Turks or Sogurs.
Many people were surprised when this fact became known, especially Koreans could not believe it. I could not believe it. Because we lived on the peninsula for a very long time, and our perceptions were at best snooping around the center of China. In fact, not many people have ever heard the name of the city of Samarkand. So in ancient times we thought that Central Asia had no contact at all and that they did not even know they existed.
However, Samarkand is in the middle of the Silk Road, where Sogur merchants in Central Asia carried goods such as silk on camels. At one time, it was regarded as the center of world culture as the capital of the Timre empire.

사라즘 유적지 정문

아프라시압 궁전의 북벽, 기원전 3~2세기

사라즘 유적지 내부

발굴된 그릇 등 유물

중앙아시아인들의 생활문화의 길, 실크로드

일반적인 실크로드 가운데 실크를 무역한 전형적인 실크로드가 ‘사막의 길(oasis-road)’ 이다. 동쪽의 중국 ‘시안(西安)’을 출발해서 감숙성의 란조우, 둔황을 거쳐 투르판, 우루무치 등의 신장지역을 통과해 타슈켄트, 사마르칸, 부하라, 멜부르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을 거쳐, 서아시아 지역인 이란의 마샤드, 이스파한, 테헤란, 타브리즈 등을 거쳐 터키의 이즈미르, 콘야, 이스탄불이라는 지중해 동쪽 해안까지 도달하는 길이 7000km의 고대 교통로이다. 물론 이 주선 외에도 다양한 지선들이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몇 가지 사실을 오해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소위 ‘실크로드’를 중국인들이 개척하고, 중국 상인들이 활약한 것이라는 것이다. 4000km가 현재의 중국 경내를 통과한 이유도 있다. 하지만 실크로드의 문화와 도시들은 중국인들, 특히 한족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오히려 다양한 분야에서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일찍부터 사람들이 거주했었다. 구석기 시대에도 인간이 거주했고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이 발달했다. 사마르칸트 근처인 ‘사라즘’ 유적지는 중앙아시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도시유적(Proto-urban site of Sarazm)이다. 사마르칸트와 타지키스탄의 국경지대이며, 제프라샨강과 페르가나 평원이 가깝다. 기원전 제 4 천년 기부터 기원전 제 3 천년기 말까지 인간의 거주지가 발달하였다.

Silk Road, the Path of Living Culture for Central Asians

Among the common silk roads, the typical silk road that traded silk is the oasis-road. Departing from Xian, in the east, through Lanzhou, Gansu of Gansu, through Xinjiang, Turpan, Urumqi, and other Central Asian regions such as Tashkent, Samarkan, Bukhara, and Melbourg. It is an ancient 7000 km long transit route from Iran’s Mashad, Isfahan, Tehran and Tabriz to Turkey’s Izmir, Konya and Istanbul east coasts. Of course, there are various branches besides this arrangement.
Many people misunderstand some facts. One of them is that the Chinese pioneered the so-called ‘silk road’ and Chinese merchants were active. There is also a reason why 4000 km passed through the present Chinese grounds. However, the culture and cities of the Silk Road are not much related to the Chinese, especially the Han Chinese. Rather, it was influenced by Central Asia in various fields.
Contrary to our ideas, the Central Asian region was populated early. Humans lived in the Paleolithic era, and agriculture developed in the Neolithic period. Near Samarkand, the ruins of Saramism are the first Proto-urban site of Sarazm in Central Asia. The border between Samarkand and Tajikistan is close to the Jefrashan River and the Fergana Plain. Human settlements developed from the fourth millennium BC to the end of the third millennium BC.

사라즘 유적지 주거지

돌로 만든 농사도구 (후잔드 박물관)

소형 맷돌 (후잔드 박물관)

농사유물인 보리알 (후잔드 박물관)

중앙아시아 소구드 지역 3천년전부터 도시 건설, 페르시아 주민들 중국과 교역

사실 소구드 지역에서는 3000년~5000년 이전에 도시와 요새, 궁전과 성, 사원과 일종의 교통시설인 ‘카라반 사라이(caravan-saray)’들을 건축했고, 농업과 목축은 물론이고, 상업과 수공업에도 뛰어났다. 우즈베키스탄의 남부인 소폴리테파(Sopolitepa) 유적에서 비단을 발굴하였는데, 3,600~3,700년 전의 물품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제품들이 중국산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곳에서는 비단을 자체적으로 생산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기원을 전후한 시기부터는 페르시아계 주민인 월지(月支)인들이 동쪽인 중국 지역에서 수입한 우수한 비단을 서아시아, 로마, 이집트 등으로 수출하였다. 심지어는 월지인들이 살았던 인도의 북부,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비단제품들이 발굴된다.

City building from B.C. 3,000 years ago, Persians traded with China

Indeed, the Sogurd region built cities, forts, palaces, castles, temples, and caravan-sarays, a form of transportation, in agriculture and livestock, as well as in commerce and crafts. Excellent Silk was excavated from the ruins of Sopolitepa, southern of Uzbekistan, from 3,600 to 3,700 years ago. Surprisingly, the products weren’t made in China. If so, it produced silk itself.
However, from the time before and after the origin, the Persian resident Wolji exported excellent silks imported from the eastern part of China to West Asia, Rome and Egypt. Even silk products are found in Afghanistan, northern India, where the Wolji lived.

9~10세기 유리제품 (후잔드 박물관)

각종 보석들. 특히 청금석 무역이 발달했다 (후잔드 박물관)

조로아스터교의 신상과 도구들 (오시 전시관)

히바시로 가는 길의 아무다리아강

대상들이 오고갔던 사막길

실크로드 무역망. 9~10세기 실크로드 (타지키스탄 두산베 박물관)

B.C. 6세기경 페르시아인 중동 지역에 조로아스트교 전파, 지배세력으로 군립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기원 전 6세기 후반에는 이란 지역에서 아케메네스 왕조가 새롭게 출발하여 동쪽으로 진출하였고, 다리우스 Ⅰ세는 기원전 6세기 초에 중앙아시아의 아프가니스탄 북부, 이란의 동쪽인 파르티아 지역을 장악하였고 박트라(Baqtra, 아무다리아강) 강변에 도달하였다. 이렇게 해서 아프가니스탄 북부, 이란의 동쪽인 파르티아지역까지 장악하였다. 이후에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페르시아 문화가 들어왔고, 조로아스터교라는 ‘꺼지지 않는 불’을 숭배하는 종교(拜火敎)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이때 타지크인들의 조상들은 페르시아에 복속되었다. 그래서 사마르칸트와 가까운 타지키스탄의 후잔트, 판자켄트 등의 도시로 들어가면 지금도 페르시아인들이나 그리이스인들의 혈통이 많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Persians preached Zoroastianism and ruled the Middle East around the B.C. 6th century

There is a reason for that. In the late sixth century B.C.E., the Akemenes Dynasty began a new start in Iran, and in the early sixth century B.C.E., Darius I took control of northern Afghanistan in Central Asia and the part of the Partia region, east of Iran. Reached the riverside. In this way, they occupied the northern part of Afghanistan and the part of the region of Fartia, east of Iran. Later, Persian culture came into Central Asia, and the Zoroastrian religion of “unquenchable fire” took root. At this time, the ancestors of the Tajiks were subjugated to Persia. So when you enter the cities of Huzand and Pankhent in Tajikistan, which are close to Samarkand, you can see that there are still many of the Persian and Greek descent.

히바시로 가는 길의 사막지대

부하라 시내 광장앞에 세운 낙타를 끄는 소구드 대상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한 실크로드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박물관)

B.C. 329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정복, 중앙아시아에 그리스 문화 전파

그런데 다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 제국을 쓰러뜨리고, 기원전 329년에 페르시아인들이 만든 도로망을 이용하여 중앙아시아로 진군하였다. 그리이스 군대를 맞이한 사마르칸트인들은 철저하게 저항을 벌였으나 결국은 함락당하였다. 알렉산더군 대는 도시를 철저하게 파괴했고, 살육을 자행하였다. 사가들은 이 도시 이름을 “마로칸드(Marokand)”라고 기록했고, 그것이 사마르칸트(samarkand)로 변하였는데, ‘교차로’, ‘상인들의 만남’, ‘상업이 활발한 장소’등의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중앙아시아에 그리이스 문화를 전파하고 이식하려고 다양한 정책들을 써가면서 노력했다. 여러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알렉산드리아’ 같은 도시들을 건설하였는데, 후잔트는 시르다리야 강의 페르가나 분지 입구에 위치해 있는데, 기원전 329년경에는 ‘알렉산드리아 에스카테’였다. 이 도시는 동과 서의 나라가 연결되고, 실크로드가 지나는 주요한 길목이었다. 알렉산더의 성품과 문화정책 등을 평가할 때 자주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알렉산더는 그 지역의 여자인 ‘록산나’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부하들에게도 현지 여인들과 혼인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자연스럽게 백인종과 황인종의 혼혈이 탄생하고 두 가지 다른 문화가 섞여 갔다. 하지만 정복전쟁을 무리하게 추진하던 그는 인도로 간 원정길에서 갑자기 죽고, 4명의 부하들에 의하여 분할되면서 제국들이 만들어졌다. 이 때 사마르칸트는 상업, 수공업, 도시 정비와 건축이 매우 발달했다.

Alexander the Great conquered Persia in B.C. 329 and spread Greek culture to Central Asia

Again, Alexander the Great of Macedonia overthrew the Persian Empire, and in 329 B.C.E., advanced to Central Asia using the road network made by the Persians.
The Samarkans who greeted the Greek army made a thorough resistance but eventually fell. Alexander’s army destroyed the city thoroughly and carried out slaughter. The saga writes the name of the city “Marokand,” which has turned into samarkand, meaning “crossroads”, “merchants’ meetings,” and “commercially active places.”

Alexander, however, sought various policies to spread and transplant Greek culture in Central Asia. He built cities like Alexandria, which he named himself in various places, and Huzant was located at the entrance of the Fergana Basin on the Sirdariyah River, about 329 B.C.E., Alexandria Escate. This city was the main road connecting the East and West countries and the Silk Road.
When evaluating Alexander’s character and cultural policy, there is a frequently appeared content. Alexander greeted Roxanna, a local woman, as a wife, and promoted marriage to local women. Naturally, a mixture of white and yellow races was born and two different cultures mixed. But forcing the war to conquer, he suddenly died on the road to India and was divided by four men to form empires. At this time Samarkand was highly developed in commerce, crafts, city maintenance and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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