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면서 어려움에 처하면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 땅에서 충효를 삶의 지표로 삼고 살아가던 사람이 조선의 선비들이다. 20세기 초 조선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합병되어 망국의 지경에 있었다.
이 때 구국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걸고 의연히 싸운 안동 선비 임청각 당주 이상룡 선생이 택한 삶의 길을 따라가본다.

If you are facing difficulties in your life, you will be exposed to the truth. The people who lived with loyalty as an indicator of life in this land are the scholars of Chosun. In the early 20th century, Joseon was merged by Japanese imperialist forces and was in a state of exile.
At this time, we follow the path of life chosen by Andong Sunbi Mr. Lee Sang-ryong of Lim Cheong-gak, who fought for his life and fortune.
Editor Kim Jun-sung / Photo Kim Kyung-hae

중앙 철도에 의해 반쪽으로 잘려 나간 현재의 임청각 모습은 제국주의로 침해 당한 한국인의 영혼의 상처와도 같다

안동 시내에서 안동댐으로 중앙선 철로를 끼고 가는 길에 족히 40칸은 되어 보이는 기와지붕들이 늘어선 전통 가옥이 임청각있다. 임청각은 석주 이상룡 선생을 비롯하여, 선생의 아들, 손자 등 독립운동가 9명을 배출한 3대 독립운동가의 산실이다.

On the way from the center of Andong to the Andong Dam along the main line, there is a traditional house with 40 roofs. Lim Cheong-gak is the birthplace of three independent activists who produced nine independent activists including Seokjoo Mr. Lee Sang-ryong and his son and grandson.

임청각의 정신이 담긴 전시관 입구

만주에서 신흥무관학교 건립, 구국의 인재 양성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은 1911년 석주 이상룡 선생은 전 재산을 처분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여 만주 망명길에 올라서, 독립운동기지인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 선생은 1925년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맡아 독립운동가들의 파벌 통합을 시도했다.

Established Shin Heung Military Academy in Manchuria, cultivated the national leader

In 1911, who lost his country due to the ROK-Japan combination, Seok-ju Mr. Lee Sang-ryok disposed all his property and raised funds for independence movement to go up to Manchuria asylum.
In 1925, the teacher acted as the first state decree of the Provisional Government and attempted to unite the factions of independence activists.

이상룡 선생이 만주에서 수행한 독립운동의 흔적이 담긴 기념관 내부

만주로 망명하면서 사당에 신주와 위폐를 묻고 구국의 각오 다져

선생은 만주 망명 직전 임청각에 있는 사당으로 올라가 신주와 조상 위패를 땅에 묻었다. 그리고 나라가 독립되기 전에는 절대 귀국하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만주 망명길에 오른 2년 뒤인 1913년에 선생은 아들 이준형에게 “조선으로 들어가 임청각을 처분하라”고 명령했다.
그 후 국내로 들어온 아들 이준형이 ‘임청각을 팔겠다’고 하자, 문중에서 극구 말리며 독립운동 자금 500원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Pledged save the country and preparing for Manchuria on the Asylum Road, while burying the ancestor’s spirits and plaquess

The teacher went up to the shrine in Im cheong-gak, just before the exile of Manchuria, and buried the spirits and ancestral plaques on the ground. And he decided to never return home until the country became independent.
In 1913, two years after the Manchurian exile, the teacher ordered his son, Mr. Lee Jun-hyun, to “go into Chosun and dispose of Imcheong-gak.” After his son Mr. Lee Jun-hyun, who came to Korea, said he would sell ‘imcheong-gak’. And then the remained family in Andong gave him 500 won for independent activist.

임청각의 중채 모습

중채에는 현재 종손들이 거거하고 있다

세종 조에 입향조 이증이 건립한 99칸 기와집

임청각은 조선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원의 여섯째 아들인 영산현감 이증이 터를 잡아 입향조가 되었다. 임청각은 영남산 기슭의 비탈진 경사면을 이용하여 계단식으로 기단을 쌓아 지어진 99칸 기와집이다. 임청각은 안채, 중채, 사랑채, 사당, 행랑채, 별채는 물론 아담한 별당과 정원까지 조성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상류 전통한옥이다. 임청각은 현존하는 한국의 살림집 중 가장 오래된 가옥이다.

A 99-kan tile house where the IbHyangjo Mr. Lee Jyung had built in Sejong-jo

Lim Cheong-gak became the hometown of Lee Won’s sixth son, Lee Jyung, who had been in Yeongsan hyungam during Joseon dynasty. Lim Cheong-gak is a 99-kan tile house built on a staircase with a sloped at the foot of Yeongnam Mountain. Imcheong-gak is a typical upper-class traditional hanok that was built with anchae, Jungchae, Sarangchae, shrine, Hangangchae, and annex, as well as a small villa and garden. Lim Cheong-gak is the oldest living hanok house in Korea.

임청각의 행랑채와 사랑채로 향하는 길

정상에 위치한 임청각 사랑채 모습

일제 구국의 맥을 끊기 이해 중앙선 철도 놓아 50칸 강제 철거

특히 임청각은 일제가 임청각의 맥을 끊기 위한 의도로 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를 놓았다. 그 때문에 임청각 50여칸이 강제로 철거되었다. 이후 수시로 지나가는 열차의 굉음이 종택의 품위를 손상시켰다.

Japanese colonial rule, entering Central Line railroad to release 50 roof forcibly removed in order to break the spirits of the nation

In particular, Imcheong-gak laid a central railway across the yard, with the intention of the Japanese to break the pulse of Imcheong-gak. As a result, more than 50 Imcheong-gak were forcibly removed. Since then, the roar of trains has been damaging the dignity of Imcheong-gak.

임청각 옆 이씨 종가댁과 법흥사지 국보 7층 석탑

문화재청 2025년까지 임청각 복원 계획

한편 문화재청은 경북도, 안동시와 함께 2020년부터 2025년까지 예산 280억 원을 들여 안동 임청각을 일제강점기 중앙선 철로가 놓이기 이전의 옛 모습으로 가옥을 복원, 정비하기 위한 종합계획을 최근 마무리했다. 현재 임청각은 한옥 스테이로 활용되어 많은 관광객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살았던 선비들의 삶의 지조와 미학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Plan to restore the Imcheong-gak by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by 2025

Meanwhile,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long with Gyeongbuk-do and Andong-si, will spend a total of 28 billion won from 2020 to 2025 to develop and reconstruct a house to restore and maintain the home of the Andong Imcheonggak before the establishment of the central railway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41). Currently, Imcheong-gak is used as a hanok stay and many tourists are experiencing the ancestry and aesthetics of the scholars’ lives.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