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PMIC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자리매김하며 한국 반도체산업의 역사를 기록한 허염 대표의 배려와 지식리더십의 길을 따라가본다. 무릇 모든 인생 길에 의미가 있겠지만, 혁신의 시대에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가 가야할 길의 모델을 발견할 수도 있으리.
As the first PMIC solution provider in Korea, we will follow the path of consideration and knowledge leadership of CEO Huh, who has recorded the history of the Korean semiconductor industry. It may mean anything in every way of life, but in the age of innovation, you might find a model of the way that leaders who lead social change should go.
Editor Hyun, Jihae / Photo Park Bo-hyung

지난 2010년 한국공학학림원은 한국 산업자원통상부 후원으로 실시한 ‘기술한국, 도전100년’ 기념식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산업기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한국의 100대 기술과 주역을 선정했다. 선정 후 한국공학한림원은 2010년 12월 연말에 선정자를 발표하고 시상식을 진행했다. 이 때 실리콘마이터스 허염 대표는 지난 35년 동안 업계에서 함께 공부하고 일한 동료 및 선후배들과 나란히 단상에 자리했다.
“이 때 하이닉스 재직 시절 개발한 CMOS 이미지센서와 디스플레이 구동칩이 100대 기술부문에 선정되어, 당시 공학한림원 윤종용 회장님으로부터 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 최초의 전력관리반도체칩(PMIC) 솔루션 개발사인 실리콘마이터스 창업경영자인 허염 대표는 지난 1976년 삼성전자 신사업팀에 입사한 이후 30년 동안 삼성전자 현대전자 하이닉스 국내외 법인에서 일했고, 2006년 매그나칩반도체 대표이사를 끝으로 대기업 임원 생활을 마감했다. 이후 2007년 봄 실리콘마이터스를 창업하고, 지난 13년 동안 기업성장과정을 주도해온 허염 대표는 한국 반도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갔다.

In 2010, the National Academy of Engineering of Korea(NAEK) selected 100 Korea’s top technologies and protagonists, reflecting on the history of industrial technology that led Korea’s economic growth at the “100 Years of Challenge for Technology Korea” sponsored by the Ministry of Commerce, Industry and Energy. After the selection, NAEK announced the winners at the end of December 2010 and held an awards ceremony. At the same time, Mr. Huh, was on stage alongside colleagues and seniors who had studied and worked in the industry for the past 35 years.
“At this time, CMOS image sensors and display driving chips developed while working at Hynix were selected as one of the top 100 technology categories, and it seemed to have been awarded by Mr. Yoon Jong-yong, Chairman of NAEK.
Mr. Huh, CEO & founder of Silicon Mitus, Korea’s first PMIC solution developer, has worked for Samsung Electronics’ andHyundai Electronics Hynix for 30 years since joining Samsung’s new business team in 1976. He ended his career as a major corporation with the CEO of Chip Semiconductor. Since then, Mr. Huh has opened a new chapter in the history of semiconductors in Korea in the spring of 2007 and has been leading the company’s growth process for the past 13 years.

2010년 한국공학한림원과 산업통상자원부 후원 ‘기술한국, 도전100년’기념식에서 하이닉스에서 개발한 CMOS 이미지센서와 디스플레이 구동칩이 100대 기술 부분에 선정되어 수상

첨단산업 투신 위해 공학에 입문, 한국 최초의 컴퓨터용 한글CRT터미널과 미니컴퓨터 개발

유년시절부터 물리와 수학 영재로 인정받으며 성장한 허염 대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첨단제품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70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신입생으로 공학에 입문했다. 이후 KAIST에서 석사를 마친 후, 삼성전자에 입사해 한국 최초의 컴퓨터 영업 및 개발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허염 대표는 당시 자신이 삼성전자에서 어떻게 한국 최초로 공공기관에 컴퓨터를 판매하고 한국형 컴퓨터 개발의 주역이 되었는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
“70년대 중반 삼성전자 강진구 사장님이 ‘우리도 가전사업 외에 정보통신산업을 시작해서 미래 첨단산업에서 먹거리를 개발해보자’라는 비전을 세우셨죠. 당시 미니컴퓨터가 출현하여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으로 이 정도는 우리도 도전해 봐야 하겠다 하고 만든 신사업팀에 제가 발탁된 겁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아날로그 가전제품 위주의 회사로서 디지털이 막 도입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우리 팀은 사업의 1단계로 가전제품 영업과는 다른 하드웨어 이외에 소프트웨어 서비스 개념이 포함된 영업체계를 먼저 습득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미국 HP에서 컴퓨터를 도입해 한국 시장개척을 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미국 HP에서 컴퓨터 카다로그를 받아서 한글 홍보 브로셔를 만들었습니다. 마침 그 때 IBRD차관으로 시행하는 전국 국립대학교 행정전산화용 미니컴퓨터 도입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컴퓨터 영업을 했습니다. HP 컴퓨터 교육은 고사하고 실물도 보지 못한 상황에서 우리 팀은 컴퓨터 11대를 팔았고, 그 때 추가로 들여온 1대를 가지고 컴퓨터 국산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컴퓨터 시대를 넘어 이제 스마트폰 시대에 접어든 21세기 초반에 70년대 한국의 IT산업 현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가 이런 말을 믿겠는가. 그 정도로 1970년대 중반 한국은 정보통신산업의 불모지였다. 컴퓨터 1대를 갖게 된 삼성전자 신사업팀은 한글자판기 개발프로젝트부터 시작했다. 허염 대표는 그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당시 KAIST 후배를 포함하여 5명이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초창기 인텔의 8-bit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사용하여 CRT 디스플레이 단말기의 내부 PCB보드를 개조하고 펌웨어를 다시 짜서 한글 자판기로 입력했죠. 그러면 CRT 화면에 한글이 출력되는 On-line 단말기를 6개월만에 성공적으로 개발했습니다. 정말 짧은 시간에 밤낮없이 일해서 만든 결과입니다. 이후 한글 단말기를 가진 컴퓨터를 한국 시장에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 신사업팀의 20명 개발실 직원들은 HP의 마이크로프로그레밍이 가능한 CPU를 이용하여 한국 응용시장에 최적화된 CPU로 개조했다. 그리고 필요한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메인프레임의 프론트엔드로 사용할 수 있는 1979년 미니컴퓨터를 개발했다. 당시 컴퓨터 기술과 실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생애 처음 미니컴퓨터 개발과제를 이끌면서 허염 대표는 현실의 한계를 실감하면서 미래계획을 세웠다.
‘내가 한국에서 배운 공학적 지식으로는 컴퓨터라는 최첨단 기기를 제대로 개발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번 과제를 끝내면 미국 실리콘밸리로 가서 컴퓨터를 개발할 수 있도록 공부도 하고 최고 기업체에서 일하면서 실력을 쌓아야 하겠다.’

Introduced engineering to the high-tech industry, developed Korea’s first computer Hangul CRT terminal and minicomputer

Recognized as a gifted student of physics and mathematics since childhood, Mf. Huh started his engineering career as a freshman in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1970 with the goal of developing cutting-edge products representing Korea. After finishing his master’s degree at KAIST, he joined Samsung Electronics and worked as the first player in computer sales and development in Korea. Mr. Huh explained with a clear smile how he was the first to sell computers to public institutions in Korea and become a leader in the development of Korean-style computers.
“In the mid-1970s, Mr. Kang, Jin-gu, president of Samsung Electronics, set up a vision that ‘we will start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industry in addition to the home appliance business and develop food in the future high-tech industry.’ At the time, mini computers appeared and started to spread, and I was selected by the new business team that we had to challenge. At that time, Samsung Electronics was an analog consumer electronics company, and digital was just introduced. As the first phase of our business, our team decided to acquire a sales system that included a software service concept in addition to hardware other than home appliance sales. That’s why HP pioneered the Korean market by introducing computers from HP. To do this, we received a computer catalog from HP in the US and created a Korean brochure. At the same time, I worked on the computer business for the introduction of minicomputers for administrative computerization of national universities, which are under IBRD loans. With HP computer training dead and never seen, our team sold 11 computers, and then we started localizing the computer with an additional one. ”
If anyone who doesn’t know the past status of Korea’s IT industry in the 70s in the early 21st century, where it is already entering the smartphone era beyond the computer age, who would believe this? In the mid-1970s, Korea was a wasteland of the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industry. Samsung Electronics’ new business team, which had a computer, started with the Hangul Vending Machine Development Project. Mr. Huh explained the process.
“At the time, five people started developing, including junior KAIST. In the early days, Intel’s 8-bit microprocessor was used to modify the internal PCB board of the CRT display terminal, rewrite the firmware, and enter it into the Korean language vending machine. Then, we successfully developed an on-line terminal in 6 months with Korean characters displayed on the CRT screen. It is the result of working day and night in a really short time. After that, I started selling computers with Hangul terminals to the Korean market.”
Twenty employees in the development department of Samsung’s new business team converted HP’s microprogrammable CPU into an optimized CPU for the Korean application market. The company developed a minicomputer in 1979 that could develop the necessary system software and use it as the front end of the mainframe. At that time, while leading the development of minicomputers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with lack of computer skills, Mr. Huh established his future plans, while realizing the limitations of reality.
‘With the engineering knowledge I’ve learned in Korea, it’s hard to develop a state-of-the-art device called a computer. At the end of this assignment, I will go to Silicon Valley to study computer development and work at a top company to build my skills.’

박사학위 후 DARPA VLSI 설계자동차 연구하며, 반도체칩에 집적화하는 시스템산업과 조우

1979년 허염 대표는 전액 장학급을 받고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스탠포드 대학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허염 대표는 먼저 3년동안 컴퓨터시스템과 관련한 넓은 분야의 강의를 통해 첨단학문적 지식을 습득함은 물론 첨단산업의 흐름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갔다. 특히 당시 미국 국방부의 DARPA가 지원하는 VLSI (Very Larger Scale Integration) 프로그램이 막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훗날 반도체와 시스템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이때 허염 대표는 VLSI 설계 자동화 분야에서 연구를 수행하면서 새로운 전자공학의 세계를 열어갔다.
“설계자동화 소프트웨어가 잘 돌아가는 워크스테이션이 스탠포드에서 개발되었는데, 그 때 창업된기업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입니다. 3D 그래픽스가 잘 돌아가도록 설계한 VLSI과제 결과물을 바탕으로 실리콘그래픽스가 창업되었죠. 모두 VLSI 연구 결과를 이용한 것입니다. 특히 VLSI 연구과정에서 개발된, 성능과 효율성이 탁월한 RISC-CPU와 UNIX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사용한 워크스테이션이 차세대 클라이언트-서버의 컴퓨팅의 기반이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 때만 하더라도 PC의 두뇌에 해당하는 인텔 CPU는 구조상 성능개선의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After getting Ph.D., he researched DARPA VLSI design automobile and encountered system industry integrated in semiconductor chip.

In 1979, Mr Huh received a full scholarship and entered the Ph.D program in electronic engineering at Stanford University in Silicon Valley. In the first three years, Mr. Huh learned a wide range of computer science-related lectures and gained insight into the trends of high-tech industries. In particular, the Very Large Scale Integration (VLSI) program, supported by the US Department of Defense DARPA, has just begun. This program was a huge project that later changed the paradigm of the semiconductor and system industries. Huh opened a new world of electronics while conducting research in the field of VLSI design automation.
“A workstation that works well with design automation software was developed at Stanford University. The company is Sun Microsystems. Silicon Graphics was founded on the basis of the results of VLSI projects designed to make 3D graphics work well. All are based on the results of the VLSI study. I predicted that the workstations, using RISC-CPU and UNIX system software with excellent performance and efficiency, which were developed in specially VLSI Research Course, would be the foundation for computing the next generation of client-server. At that time, I predicted that there will be a limit in performance improvement of Intel’s CPU, which is a brain of computer.”

허염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 소재 삼성전자 미국법인에서 일하며 삼성개발센터 구축하여 워크스테이션 개발과정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창업 준비 중 삼성에 스카웃되어, 실리콘밸리 삼성개발센터 구축하여 WS 개발과정 진행

박사 학위 후 허염 대표는 VLSI 설계자동화 DARPA 연구과제를 계속하여, 1989년 마무리했다. 37세가 되던 해에 허염 대표는 자신이 배운 첨단지식을 활용하여 워크스테이션(WS)기술 회사를 창업하기로 결정했다. VLSI와 유닉스 체제를 기반으로 새로운 컴퓨터를 연구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창업 멤버들을 확보한 후 허염 대표는 투자의향을 보인 삼성전자와 미팅을 했다. 투자 유치를 위해 삼성과 계속 미팅을 하던 중 허염 대표는 강진구 부회장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허박사! 삼성에 들어와서 개발을 해 보면 어떤가? 사업은 먼저 경험을 충분히 쌓고 나중에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은가?”
강진구 부회장의 러브콜을 생각하면서도 창업을 계속 준비하던 즈음 허염 대표는 김영수 컴퓨터부문 대표로부터 재차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허염 박사나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 면면을 보니 개발은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업을 성공하기 위하여서는 A부터 Z까지 다 경험해봐야 하는데, 이번에 삼성전자가 HP사와 협력해서 워크스테이션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니, 일단 삼성의 일원이 되어서 이 중요한 일을 꼭 맡아서 해 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1989년 삼성에 스카웃된 허염 대표는 4년 반 동안 실리콘밸리에 삼성의 RISC CPU 개발센터를 설립하고 한국을 오가며 개발과정을 진두 지휘했다. HP와 협력비즈니스 모델을 협상하고 기술 라이선스와 함께 CPU와 워크스테이션 개발을 병행했다. HP와 삼성은 어려운 개발 과정을 끝내고 신제품을 개발해 출시했는데, 가격대비 우수한 성능으로 시장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러나 전자산업의 흐름은 항상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혁신자의 편이다. 90년 중반 인텔이 강력한 펜티엄 CPU를 출시하고 지속적 성능 향상으로 RISC CPU를 압도하면서 인텔 펜티움을 사용하는 값싼 PC가 워크스테이션을 대체했다. 당시 삼성의 메모리반도체사업은 궤도에 올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면서 많은 이익을 내는 단계에 있었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에 이어 시스템반도체와 워크스테이션과 같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장 환경의 변화로 삼성의 워크스테이션 사업은 당초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그러나, 허염 대표는 이 프로젝트가 기술적 파급효과 측면에서는 삼성전자의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세계 선진 IT기업과 비교할 때 메모리반도체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는 매우 뒤처져 있었습니다. 당시 첨단IT산업의 선두주자 HP와 함께 일하면서 거의 모든 기술 분야에서 앞선 기술을 체득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시스템반도체용 로직 공정, CPU, ASIC, 시스템 설계 및 검증 방법, PCB 및 하우징 열 분석방법, 생산품질 확보 방법 등에서 첨단기술을 모두 터득할 수 있었죠. 특히 HP 마케팅부서와 함께 일하면서 제품 개념을 정하는 일에서부터 마케팅 실행방법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스탠다드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Scouted by Samsung while preparing for start-up, Establishing the Silicon Valley Samsung Development Center and executing the WS development process

After completing his Ph.D., Dr. Huh continued the research of the VLSI design automation DARPA project and finished it in 1989. At the age of 37, Mr. Huh decided to set up a workstation technology company, while using the state-of-the-art he learned to create. He tried to look for a team member to create a company to research new computers based on VLSI and Unix system. After securing the founding members, Mr. Huh held a meeting with Samsung Electronics, which showed a willingness to invest. During the meeting with Samsung to attract investment, Mr. Huh received a love call from Vice Chairman Mr. Kang Jin-gu of Samsung.
“Dr. Huh! What about entering Samsung and developing WS? You may start your business, while gaining enough experience first and then do as much after that? ”
In the meantime, he was still preparing to start a business while thinking of Kang Jin-gu’s love call. Mr. Huh again received a scouting proposal from Mr. Kim Young-soo, CEO of Computer Division of Samsung.
“Due to Dr. Huh and the people involved, I think you can develop well. However, In order to be successful, you need to experience everything from A to Z. Since Samsung decided to work with HP to promote the workstation business, why don’t you become a member of Samsung and do this important job? ”
Dr. Huh, who was scouted by Samsung in 1989, established Samsung’s RISC CPU development center in Silicon Valley for four and a half years, leading the development process in and out of Korea. He negotiated a business model with HP and worked on developing a CPU and workstation with technology licenses. HP and Samsung completed the difficult development process and developed and launched a new product, which responded very well with the excellent price • performance.
However, the flow of the electronics industry is always on the side of innovators who create new paradigms. In the mid-1990s, Intel released a powerful Pentium CPU and overpowered the RISC CPU with continuous performance improvements, replacing the workstation with a cheap PC using Intel Pentium. At that time, Samsung’s memory semiconductor business was on track and making a lot of profits while securing global competitiveness. So, Samsung Electronics was preparing new future foods such as system semiconductors and workstations after memory semiconductors. However, due to this change in the market environment, Samsung’s workstation business ended without achieving its original goal. However, Dr. Huh emphasized that the project is a step in the development of Samsung Electronics in terms of technological ripple effect.
“At that time, Samsung Electronics was far behind in other areas except memory semiconductors compared to the world’s leading IT companies. Working with HP, a leader in the high-tech IT industry at that time, I had the opportunity to acquire advanced technology in almost every field of technology. We were able to acquire advanced technologies such as logic processes for system semiconductors, CPUs, ASICs, system design and verification methods, PCB and housing thermal analysis methods, and production quality assurance methods. In particular, working with HP’s marketing department, we were able to experience and learn global standards, from defining product concepts to how to implement marketing. ”

94년 현대에 스카우트되어, 하이닉스 시스템반도체사업부 경영 참여

1994년 봄 실리콘밸리에서 허염 대표는 현대 정몽헌 회장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정몽헌 회장의 기술력 확보전략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허염 대표는 1996년부터 현대전자의 미국법인 CTO가 되어 실리콘밸리에서 신기술 발굴을 위해 5천만불의 자금을 운용하는 가운데, 실리콘밸리 중심의 기술벤처에 투자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처음으로 기술과 경영을 접목하는 벤처 캐피탈리스트로서의 경험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던 벤처 캐피탈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한편 좋은 투자 대상 기업들을 리스트하며 전략적인 투자처를 파악하고 투자 협의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 하반기부터 DRAM 가격 폭락과 함께 불경기가 시작되면서 허염 대표는 서울 본사로 부임했다. 1997년 한국으로 돌아온 허염 대표는 당시 현대전자의 미디어사업본부장를 맡아 경영에 참여했다. 당시 외환위기와 메모리 반도체의 경기 악화 지속으로 인해 회사는 구조 조정을 해야 했다. 이 때 허염 대표는 미디어 사업을 분사시킨 후 시스템반도체사업본부를 맡아서 경영하게 되었다. 이후 정부의 빅딜정책에 의하여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 합병하게 되었고, 이어 하이닉스가 새로 탄생했다. 이 때 허염 대표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 양사의 시스템반도체사업 통합본부장으로 부임해서 두 회사의 조직을 통합하여 새로운 경영전략 수립을 진두 지휘했다. 그러나 당시 지속되는 메모리반도체 불경기로 회사의 자금 사정은 나날이 열악해졌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메모리반도체의 제품 및 원가 경쟁력을 위하여서는 선행공정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에 시스템반도체분야에 대한 투자 여력이 전혀 없었다.

Scouted to Hyundai in 1994 and participated in management of Hynix’s System Semiconductor Division

In the spring of 1994, Dr.. Huh was scouted by Hyundai’s CEO. Mr. Chung, Mong-hun. Dr.. Huh, who formed a consensus on CEO Chung Mong-Hun’s strategy for securing technology, became the CTO of Hyundai Electronics in 1996 and invested $ 50 million to discover new technologies in Silicon Valley, while investing in technology ventures centered on Silicon Valley.
“I had my first experience as a venture capitalist combining technology and management. We have networked with venture capitals working in Silicon Valley, and we have a new experience as we list good investment companies, identify strategic investments and discuss it. ”
However, since the recession began with the price drop of DRAM in the second half of 1996, Dr. Huh headed to Seoul headquarters. Dr.Huh, who returned to Korea in 1997, took over management as head of the media business division of Hyundai Electronics. At the time, the financial crisis and memory chip market continued to deteriorate, requiring the company to restructure. At this time, Dr. Huh spun off the media business and took charge of the system semiconductor business headquarters. Later, due to the government’s big deal, Hyundai took over LG Semiconductor, followed by Hynix. At this time, Mr. Huh took over as head of system semiconductor business of Hyundai Electronics and LG Semiconductor, and led the establishment of a new management strategy by integrating the two companies’ organizations.
However, due to the ongoing memory chip recession, the company’s financial situation became worse. Nevertheless, continuous investment in the advanced process is needed for the competitiveness of products and costs of memory semiconductors. It was absolutely necessary, but there was no room for investment in the system semiconductor field.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주역으로 활동하며 산업발전에 기여한 허염 대표

이러한 재무환경 하에서 투자 없이 기존 자산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제 하에 허염 대표는 합병 이전 두 조직이 가진 경쟁력을 파악했다. 그런 가운데, 양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는 사업전략을 구상했다. 당시 허염 대표가 주목한 것은 유휴 메모리팹이다. LG반도체와 현대전자 합병 후 놀고 있는 0.18um~0.5um 급의 8인치 메모리팹 2개와 6인치 메모리팹 1개가 시스템반도체로 이관되었다. 그래서 시스템반도체사업부는 처음으로 전용팹을 구비하는 가운데, 제품 적기 개발 및 생산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허염 대표는 전용팹을 최대한 활용하는 아날로그•파워•믹스드시그널 제품군 위주의 파운드리 사업과 자사제품 사업의 2개 축으로 사업구조를 조정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허염 대표는 유휴팹을 사용하는 파운드리 사업의 가치창출 방안으로 특수공정과 임베디드메모리 개발을 통한 특화파운드리 사업모델을 수립했다. 새로운 사업전략을 실행하면서 하이닉스 시스템반도체의 실적은 개선되었다. 그 결과, 시장에서도 그 인지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사업은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파운드리 사업은 미국 및 일본의 파워•아날로그 분야 선도 업체들을 장기고객으로 확보했다. PC와 휴대폰에 사용되는 오디오코덱의 경우 세계 Top3 업체를 모두 고객으로 유치하여 이 분야 파운드리 1위를 차지했다. 이후 하이닉스 특화파운드리 사업모델은 다른 업체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다. 허염 대표는 자사제품 중 CIS(CMOS 이미지센서)는 매우 의미가 큰 제품이라고 말하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LG와 삼성은 이미지센서로 CCD 기반이었지만, 우리는 CMOS를 선택했습니다. 현대전자가 하바드대학의 우디 양Woody Yang 교수와 협력하여 CIS 개발을 일찍 시작했습니다. 제가 부임했을 때, 당시 개발제품의 컬러이미지가 아직 흑백같이 보이는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를 보는 순간, ‘아하, 바로 이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화질면에서는 CCD가 훨씬 앞서 있었지만, CMOS공정을 사용하는 경우 관련 기능을 이미지센서칩에 내재화할 수 있고, 전력소모가 적고 화질개선이 되기 때문에 개발을 잘하면 분명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가속화를 위하여 공정, 소자, 회로, 응용 등 각 기술분야별 핵심 개발자뿐만 아니라 마케팅까지 포함한 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하여 체계적인 개발 프로세스를 도입해서 추진했습니다. 그 결과, VGA급 CIS를 세계 선도기업들과 같은 시기에 개발 출시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는 우리가 최초였습니다.”
하이닉스에서 생산한 CIS의 경우 화질의 우수성으로 인해 업계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당시 옴니비젼, 마이크론, 필립스나 도시바보다 훨씬 화질 면에서 우수하여 경쟁사에서 모두 부러워할 정도였다. 휴대폰에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삼성전자의 카메라폰이 하이닉스 CIS를 대거 채택하면서 매출 성장과 함께 높은 수익율로 효자상품 역할을 했다. CIS 이외에도 자체 제품군인 LCD 구동칩 및 MCU 사업도 호조를 보이고 파운드리 사업도 제 역할을 했다. 그 결과, 합병 초기인 1999년 매출 2000억원에 불과하던 시스템반도체사업은 이듬해부터 처음으로 흑자를 내기 시작했으며 2004년 매출 1조원으로 급성장했다. 아울러 2004년에는 무려 3600억원의 현금수익을 창출했다. 만성적자로 시달리던 시스템반도체사업부를 성공적으로 운영했던 허염 대표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는 특화파운드리 사업의 정착과 혁신제품으로 성장과 함께 흑자경영이 지속되었죠. 그러나 메모리사업은 불황이 지속되면서 적자의 폭이 증가하여 회사 전체의 재무구조는 더 악화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선행공정에 대한 투자가 불가피한 상황 때문에 회사의 모든 투자가 메모리에 집중되었죠. 그래서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자체 투자는 고사하고, 시스템반도체 역사상 처음으로 흑자 행진을 이어가도 그간 고생한 임직원들에 대한 연봉 인상이니 보너스 지급은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문제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스템반도체도 생산팹 개선에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고, 후속혁신 제품 개발을 서둘러야 하나 현상 유지만 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고객 중에는 파운드리 업그레이드에 투자를 하겠다는 곳도 있었지만, 하이닉스 전체를 보면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때 하이닉스의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가 서로 살아 갈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으로 허염 대표는 자회사 형태의 분사를 생각했다. 마침 그 때 하이닉스 채권단은 시스템반도체를 해외투자자에게 매각하겠다는 내부 결정을 하게 됨에 따라, 허염 대표는 매각을 통한 분사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Under the premise of maximizing the use of existing assets without investment in this financial environment, Dr. Huh identified the competitiveness of the two organizations before the merger. Meanwhile, the company devised a business strategy to maximize the synergy between the two companies. At that time, Dr. Huh paid attention to the idle memory fab. After the merger with LG Semiconductor and Hyundai Electronics, two 8-inch memory fabs of 0.18um ~ 0.5um class and one 6-inch memory fab were transferred to system semiconductors. So, the System Semiconductor Division has the first time to have a dedicated fab and have timely product development and production capacity. He was focusing on pounds based on analog, power and mixed signal products that can make the most of dedicated fabs.
The company restructured its business into two pillars, the foundry business and its own product business. Dr. Huh tried to create value for foundry business using idle fab, through special process and embedded memory development. Specialized Foundry business model was established through this process. Hynix System Semiconductor’s Earnings in Implementing New Business Strategies began to improve. As a result, the market began to see a sharp rise in awareness in the market.
The foundry business, in particular, has secured long-term customers with leading power and analog companies in the US and Japan. Audio codecs used in PCs and mobile phones were the world’s top foundries by attracting all of the world’s top three customers. Since then, Hynix’s specialized foundry business model has been the benchmark of other companies. Dr. Huh explained that CIS (CMOS Image Sensor) is a very meaningful product among its products.
“LG and Samsung were CCD based image sensors at the time, but we chose CMOS. Hyundai Electronics started developing CIS early in cooperation with Prof. Woody Yang of Harvard University. When I was appointed, the color image of the product at that time was still in the early stages of looking black and white. The moment I saw it, I thought, ‘Aha, this is it!’ Because CCD was far ahead in terms of image quality at the time, it was determined that if the CMOS process was used, the related functions could be internalized in the image sensor chip, and power consumption was improved and image quality was improved. To accelerate, we introduced a systematic development process by introducing a program system including marketing as well as key developers in each technology field such as process, device, circuit, and application. As a result, we developed and launched VGA CIS at the same time as the world’s leading companies. Of course we were first in Korea. ”
The CIS produced by Hynix was praised by the industry for its excellent image quality. At that time, it was much better than OmniVision, Micron, Philips, or Toshiba in terms of image quality, and was envious of all its competitors. As cameras were installed in mobile phones, Samsung’s camera phones adopted Hynix CIS in large numbers, which contributed to the growth of sales and high profit rate. In addition to CIS, the LCD driver chip and MCU business, which is its own product line, was also brisk and the foundry business also played a role. As a result, the system semiconductor business, which generated sales of only 200 billion won in 1999, the first stage of the merger, began to generate surplus for the first time in the following year, and grew to 1 trillion won in 2004. In 2004, it generated a whopping 360 billion won in cash revenue. Dr. Huh, who successfully ran the system semiconductor business, which suffered from chronic deficits, said in a retrospect.
“Hynix’s system semiconductors have continued their surplus with growth as a specialized foundry business and innovative product. However, the memory business suffered a recession, which led to an increase in deficits, worsening the overall financial structure of the company. Nevertheless, all the company’s investments were concentrated in memory because of the inevitable investment in upstream processes. As a result, I have not been able to think of bonus payments because of my self-investment in system semiconductors and the increase in salaries for those who have suffered for the first time in the history of system semiconductors.
Then the problem began to surface. System semiconductors also needed to invest in improving production fabs, and they had to hurry to develop follow-up innovative products, but only maintained the status quo. Some customers wanted to invest in foundry upgrades, but they could not invest in Hynix as a whole. Then, as one way for Hynix’s system semiconductors and memory to live together, Huh thought about the spin-off of subsidiaries. At that time, Hynix creditors decided to sell their system semiconductors to foreign investors, so Dr. Huh shifted to spin-off through the sale.

분사한 매그나칩반도체 성장경영에도 외국인 주주들과 경영견해 달라, 창업 결심

2002년 허염 대표는 하이닉스 시스템반도체의 독특한 사업 모델과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IR 자료를 준비했다. 그리고 반도체사업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투자업계 경험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투자유치 활동을 했다. 그 결과, 미국의 사모펀드로부터 9억7천만불에 달하는 투자를 유치했다. 허염 대표가 추진한 성공적인 투자유치 활동과 시스템반도체사업의 1조 매출에 힘입어 2004년 10월 하이닉스의 시스템사업본부는 매각이 되었다. 그리고 허염 대표가 바라던 대로, 스핀 오프라는 형태로 사업본부 전체가 독립된 회사의 형태로 되살아났다. 2년이 넘는 우여곡절 끝에 2004년 10월 매각계약서가 체결되면서 기존의 사업구조와 전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매그나칩 반도체가 탄생했다. 하이닉스에서 분사된 매그나칩반도체의 대표이사로 한동안 재직한 허염 대표는 신생 회사를 살리는 일에 전념했다. 이를 위해 CFO와 함께 미국에서 로드쇼를 개최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단상에 올라 회사를 소개하는 마케터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반도체 시장을 대변하여 해외 투자 시장에서 허염 대표는 주목 받는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2004년말부터 회사의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핵심 원인은 하이닉스 하에서 매각기간이 길어지면서 분사에 대한 가능성을 비관적으로 본 핵심인력들이 더 좋은 조건으로 경쟁사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당시 하이닉스 회복을 기대하면서 우리 사주를 무리하게 샀던 직원들이 주가가 지속적으로 폭락하자, 개인적으로 심각한 재정난을 겪기도 했다. 핵심 인력의 이탈로 후속 핵심 제품의 개발 차질이 일어났다. 그러나 당시 하이닉스의 어려운 재무상환으로 핵심인력을 잡기 위한 카운터 오퍼들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신제품 부족으로 발생하는 매출 감소는 매그나칩으로 분사후인 2005년 하반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글로벌 반도체경기도 전반적으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매출이 감소세를 보이며 경영상태가 어려워지자, 투자자들은 즉각적인 구조조정을 원했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인력시장을 잘 하는 허염 대표는 일방적으로 투자자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허염 대표는 ‘반도체사업은 특성상 한번 문제가 생기면 회복하는 데 쉽게 3년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허염 대표는 사업회복에 대한 복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투자 회수에 급급한 사모펀드 투자자들은 계속 과도한 구조조정을 요구하면서 단기 회복을 주장했다.
한국 반도체사업의 기반을 조성한 1.5세대 기술자이자 경영자로서 허염 대표는 평소 인재 제일주의 철학을 견지한 경영자다. 그런 만큼 허염 대표는 일방적인 인력구조조정에 반대를 표명했고, 외국인 주주들은 그에게 “Your brain is with us, but your mind is with you people.”이라고 말하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외환위기 이후 8년 가까이 한국 반도체산업의 양대산맥을 형성하는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기술자로서, 경영자로서, 투자유치자로써 1인 3역을 해온 허염 대표가 선택의 기로에 서는 시간들이 지속되었다. 당시 심경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당시 저는 한국 반도체 산업 1세대들과 함께 공부하고 일하며 한국 반도체 산업을 반석 위해 올려놓기 위해 30년동한 한국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 때까지 한 번도 제가 가는 일에 의심을 하거나 상사로부터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일하지는 않았습니다. 저의 경영이념이나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 이사회의 결정에 제가 동의할 수 없었고, 이제는 제가 갈 길을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2006년 허염 대표는 8년 가까이 자신이 열정과 지식을 다해 일구었던 회사를 떠났다. 회사를 떠나면서 허염 대표는 반도체 산업에서 경영자가 지속가능경영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절감했다.
‘회사는 업을 제대로 아는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고, 시스템반도체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정말 중요한 것은 제품의 파이프라인을 건실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Determined to start business with foreign shareholders even for spin-off MagnaChip Semiconductor growth management

In 2002, Dr. Huh prepared IR data based on Hynix’s unique business model and solid track record. The company also attracted investment based on its extensive knowledge of the semiconductor business as well as its investment industry experience and network. As a result, it has attracted more than $ 970 million in investment from US private equity funds. Hynix’s system business headquarters was sold in October 2004, thanks to successful investment promotion activities and the one trillion sales of the system semiconductor business. And as Dr. Huh hoped, the entire business headquarters was revived as an independent company in the form of spin off. After more than two years of inflection, the October 2004 sale agreement signed MagnaChip Semiconductor, while maintaining the existing business structure and strategy.
Dr. Huh, who has served for a while as the CEO of MagnaChip Semiconductor, spun off Hynix, was dedicated to saving the new company. To do this, he held a road show in the United States with the CFO, and became a marketer who introduced himself to the stage. At the time, Dr. Huh was a prominent figure in the overseas investment market representing the Korean semiconductor market.
But at the end of 2004, the company’s management began to get harder. The key reason is that as the sale period was extended under Hynix, key personnel who pessimistic about the possibility of spin-off began to drop off as competitors on better terms. At the time, employees who had bought their shares excessively in anticipation of the recovery of Hynix suffered severe financial hardships as the stock price continued to fall. The departure of the core manpower led to disruptions in the development of subsequent core products. At the time, however, Hynix’s difficult financial repayments made it impossible to offer counter-offers to capture key personnel. The decline in sales due to lack of new products began to appear in 2005 after being spun off with MagnaChip. To make matters worse, the global semiconductor market has also begun to fall.

As the company’s sales declined and management became difficult, investors wanted immediate restructuring. However, Huh, who is good at the domestic semiconductor workforce market, could not unilaterally accept the demands of investors. Dr. Huh was well aware that ‘the semiconductor business needs three years to recover once a problem occurs.’ As such, Dr. Huh was preparing a plan for business recovery. But private equity investors urged for return on investment insisted on short-term recovery, demanding excessive restructuring. As a 1.5 generation engineer and manager who laid the groundwork for the Korean semiconductor business, Dr. Huh is a manager who always adheres to the philosophy of human resources. As such, Dr. Huh expressed opposition to unilateral workforce restructuring, and foreign shareholders complained, saying, “Your brain is with us, but your mind is with you people.” For nearly eight years after the financial crisis, Dr. Huh, who has played the role of one person and three as an engineer, manager, and investor, continued to make choices in order to enhance the competitiveness of the company that forms the two great mountains of the Korean semiconductor industry. His description of the heart at that time.
“At the time, I worked for a Korean company for 30 years to study and work with the first generation of Korean semiconductor industry and to put the Korean semiconductor industry on rock. Until that time, I had never doubted what I was going to do or worked without trust from my boss. I could not agree with the board’s decision not in line with my management philosophy , and I thought it was time for me to choose the way to go. ”
In 2006, Dr. Huh left the company he built with passion and knowledge for nearly eight years. After leaving the company, Dr. Huh reduced what executives needed to do sustainability management in the semiconductor industry.
‘The company needs a control tower that knows the industry, and it is very important for the success of the system semiconductor business. One thing is to keep the product pipeline healthy. ‘

허염 대표는 언제나 문제가 생기면 본질을 생각하며 매듭을 풀 수 있는 해결책을 강구하며 순리적으로 대응하는 이상적 합리주의다

2007년 실리콘마이터스 창업, 인재제일주의로 첨단기술력 확보하여 성장경영 주도

2006년 회사 퇴직 후 허염 대표는 창업을 준비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미국에서 Stanford를 졸업한 후 창업을 준비하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전자산업 발전에 일조하겠다는 비전으로 지난 30년 동안 한국 대기업에서 조직구성원으로 일했다. 이제 마지막 기회다. 나의 경영철학에 따라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직 아무도 하지 못한 분야의 기술개발과 첨단제품 생산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 반도체 산업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
그런 신념으로 허염 대표는 시스템반도체 중 전력관리반도체(PMIC) 전문기업을 표방하며 팹리스회사인 실리콘마이터스를 2007년 봄 창업했다.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이 분야 실력있는 전문가들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서 창업팀 구성을 했다. 2007년 창업 후 허염 대표는 한국 최초로 LCD용 전략관리반도체 개발에 돌입, 당시 해외 반도체업체들이 독점하던 제품을 한국에서 생산 공급하면서 수출 대체효과를 거두었다. 실리콘마이터스는 2009년 양산을 시작하여 세계 LCD 디스플레이 패널 시장을 주도한 한국의 삼성과 LG를 모두 고객으로 확보함으로써 2년만인 2011년 연매출 1천억원대를 돌파하며, 성공신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특히 실리콘마이터스의 LCD용 전력반도체칩 성공 이후 LG 자회사에서도 개발에 착수하여 이 분야도 한국 반도체 회사들이 주도하면서 가격경쟁력 확보는 물론 혁신제품개발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Established Silicon Mitus in 2007, led the growth management by securing cutting-edge technology

After his retirement in 2006, Dr. Huh thought a lot in preparation for starting a business.
‘After graduating from Stanford in the United States, I prepared to start a business, but I will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the Korean electronics industry. I had worked as an organizational member of large Korean companies for the past 30 years. Now is the last chance. I According to the company’s management philosophy, Find ways to contribute to the Korean semiconductor industry once again through technology development and production of high-tech products character.’
Based on that belief, Dr. Huh represented Fabion’s specialized power management semiconductor (PMIC) company among system semiconductors. Founded in the spring of 2007, the company Silicon Mitus worked together with the experts in this field for business success. He thought that this is absolutely important, so he went to the United States and Korea to form a startup team.
After founding in 2007, Dr. Huh started to develop LCD for strategic management semiconductor for the first time in Korea. The export substitution effect was achieved by producing and supplying monopoly products in Korea. Silicon Mitus Started mass production in 2009, and brought together Samsung and LG, both of which led the global LCD display panel market.
By securing as a customer, the company exceeded 100 billion won in annual sales in 2011, which is only two years later, and began to achieve a success story. In particular, LG subsidiaries began development after Silicon Mitus succeeded in power semiconductor chip for LCD. Korean semiconductor companies are also leading the way in securing price competitiveness and accelerating the development of innovative products.

2017년 허염 대표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기술대전에서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산학협력으로 전문인력 키우며, 대한민국기술대전 연속 최우수기술상 수상

한국의 PMIC 산업 분야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파워아날로그반도체 설계부문의 숙련된 인력부재다. 메모리반도체 우위의 한국 시장에서 아날로그 시스템 반도체를 공부하고 업계의 실무경험을 갖추며 최소한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춘 고급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허염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산학협력의 R&D 과제 실행이다.
“서울대 한양대 서강대 등 파워아날로그 설계분야 교수님들의 연구실과 선행산학과제를 만들어 연구자금 지원을 했습니다. 그리고 과제 수행 과정에 참여한 대학원생들과 긴밀한 관계를 만들어 가면서 실력을 쌓고 졸업 후 우리 회사에서 스카우트하는 형식으로 인력을 육성하고 확충했습니다.”
인재제일주의 철학을 실천하는 허염 대표는 인력 수급을 위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2017년 이태리 밀라노의 연구소를 인수하여 40명의 연구인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업무 경험과 지식이 축적된 조직구성원과 함께 업무경험을 나누고 기업이 가야 할 방향을 공유하는 허염 대표는 지난 2009년 한국 최초의 LCD용 PMIC 칩을 개발했다. 그리고 OLED 디스플레이 시대에 대비하여 2016년 OLED용 PMIC 칩을 국내 최초로 개발하는 한편 이후 시장이 훨씬 큰 스마트폰용 모바일 PMIC의 개발에도 성공했다. 이 모든 기록은 실리콘마이터스가 외국의 선도 반도체 회사들과 경쟁하면서 한국 최초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이룬 성과다. 일련의 제품군 확대로 실리콘마이터스는 2016년 창업 9년차에 연매출 2000억을 돌파하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해갔다.정부는 실리콘마이터스가 한국 최초로 이룬 이런 업적을 치하했다. 그래서 실리콘마이터스는 지난 2016년 한국 정부로부터 무역의 날 ‘수출2억불탑’을 수상했다. 특히 실리콘마이터스는 고난도의 스마트폰용 PMIC 통합솔루션칩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연매출 1억불을 달성하고, 2016년 11월 정부로부터 ‘대한민국 기술대상’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어 2017년 허염 대표는 한국 시스템반도체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기술대전에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Raise professional manpower through industry-academic cooperation and win the best technology award

The most difficult part in Korea’s PMIC industry is the lack of skilled personnel in the design of power analog semiconductors. There is an absolute shortage of high-quality people who have studied analog system semiconductors, have practical experience in the industry, and have at least 10 years of experience in the Korean semiconductor market. In order to solve these difficulties, Dr. Huh’s chosen method is to implement R & D tasks for industry-academia cooperation.
“We have supported the research fund by creating a laboratory and an advanced industry course for power analog design professors such as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Hanyang University Sogang University. We have built a strong relationship with the graduate students who participated in the assignment process, and we have developed and expanded our workforce in the form of scouting in our company after graduation. ”

Dr. Huh, who carries out the philosophy of human resources, runs a research institute in Silicon Valley. In 2017, the company acquired a research institute in Milan, Italy, and has secured 40 researchers. Dr. Huh, who shares his work experience with the members of his organization who have accumulated work experience and knowledge, shares the direction that companies should go in 2009. In preparation for the OLED display era, it developed Korea’s first PMIC chip for OLED in 2016 and succeeded in developing mobile PMIC for smartphone, which has a much larger market.
All of these records were achieved by Silicon Mitus’ record of Korea’s first history of competing with leading foreign semiconductor companies. With a series of product expansions, Silicon Mitus continued to grow, exceeding annual sales of 200 billion won in its ninth year in 2016.
The government commends Silicon Mitus’ accomplishment for the first time in Korea. That’s why Silicon Mitus won the Export Tower of $ 200 Million on Trade Day from the Korean government in 2016. In particular, Silicon Mitus successfully developed high-performance PMIC integrated solution chips for smartphones, achieved annual sales of $ 100 million, and won the President’s Award, the ‘Korea Technology Award’, the highest award by the government in November 2016. In 2017, Dr. Huh received a Gold Tower Order of Industrial Service Merit at the Korea Technology Show in recognition of his contributions to the development of Korea’s system semiconductors.

지난 2007년 허염 대표는 나이 56세에 자신이 신념과 철학에 의거해 첨단기술 기업을 운영하는 한편 한국 반도체 산업에서 이루지 못한 파워아날로그 반도체 부분에 도전하기 위해 실리콘마이터스의 문을 열었다

후학양성 활동으로 2019년 “서울대 공과대학 발전공로상” 수상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으로 활동해온 허염 대표는 바쁜 일정 중에서도 4년간 전기전자정보분과위원장 직을 맡아 공학도로서의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오랜 기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한국반도체학술대회 상임위원 등의 역할을 하면서 반도체산업의 발전에 꾸준히 개인적으로 봉사했다. 그런 가운데 허염 대표는 모교인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의 장학금재단에 후학양성을 위해 사비로 장학금을 기부했다. 이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은 허염 대표가 한국 시스템반도체 발전에 기여하면서 수행해온 후학양성 활동을 치하하며, 2019년 가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발전공로상’을 수여했다. 허염 대표는 수상 소식을 전하며 “회사의 발전을 위해 진행한 일에 이 같은 상을 받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더 잘하는 뜻으로 새기고 싶다.”고 말하며 예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에 따라 조직문화 형태가 조성되고, 조직발전의 기회가 마련된다. 한국이 지난 세기에 첨단공학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룩한 산업화, 정보통신화 등의 성과는 각 시대마다 국가와 대학, 기업의 리더가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실행하는 리더십을 발휘한 결과다. 우리 시대에 허염 대표와 같은 배려와 전략의 리더가 있기 때문에 한국이 21세기에도 첨단기술 강국의 위상을 유지하며 다음시대를 성공적으로 열어갈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 만큼 21세기 융복합 학문이 열어가는 새로운 시대에 한국의 인재들이 서로 배려하고 협력하며, 선대가 이룩한 기술강국의 인프라를 기반으로 기술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더욱 심화, 발전시켜가기를 기대한다.

Received “Seoul National University College of Engineering Achievement Award” for educate students

Dr. Huh, who has been an active member of the Korea Institute of Engineering As director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Department, he played his social role as an engineer. He served as a vice chairman of the Association of Business Associations and a standing member of the Korea Semiconductor Society. In the meantime, Mr. Huh donated scholarships at his own expense to the scholarship foundation of the School of Electrical and Computer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In commemoration of the after-school training activities that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system semiconductors, the Dean of the College of Engineering, Seoul National University gave him a ‘College of Engineering Development Award’. Dr. Huh said, “I have progressed for the development of the company. I am honored to receive this award for my work, and I would like to engrave it in the future. ”

The organizational culture forms according to the leader’s management philosophy and leadership. The industrialization and information communication that Korea has achieved through the development of advanced engineering and science and technology in the last century

The achievements of the myths include that the leaders of nations, universities, and corporations in each age are required to. It is the result of leadership in building and executing. Leaders in care and strategy like our representatives in our time Korea maintains its status as a high technology powerhouse in the 21st century. I do not doubt that we will open it. As such, in the new era of 21st century convergence studies. .We look forward to further deepening and developing the status of the Republic of Korea, based on the infrastructure of the technological power that Korea’s talented people consider and cooperate with each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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