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구디아(소구드의 땅)는 해가 뜨는(Orient) 땅의 동쪽, 해가 탄생하는 동방의 서쪽인 세상의 한 가운데이다. 세상이 처음 만들어 질 때부터 별똥별들이 모여들어 뒹굴고, 달빛결이 명주타래처럼 스며드는, 모래알에 상처입은 바람결이 쓸려 다니고, 보라색으로 멍든 노을들과 선홍빛 핏물밴 여명이 흰 햇빛에 버무려지는 곳이다. 천산(Tengri)의 설영(雪影)이 참빗처럼 촘촘 빗어내고, 알타이의 황금 살결들 살얼음에 바스락거리고, 파미르의 진초록 속살 들이 바람결에 살랑이는 곳, 그리고 먼 동방의 淸 바다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에 뜨거운 바람 일으키며 날라와 접지의 회오리질 하는 곳이다. 아주 오래된 옛 날, 풀밭늑대와 사막여우들이 주인공이었던 시절부터 세상의 온갖 사람들이 모여 피가 섞이고, 살이 섞이고, 마음이 섞이고, 춤과 노래가 뒤섞인 오아시스였다. 그리고 낙타 등에 희망과 꿈 대신 비단과 유리그릇, 청색 도자기들을 싣고 세상의 동서 남북을 오고 가는 대상들이 머물고, 쉬어가는 주막이 있었다. 실크로드의 가장 크고 화려한 Saray도시였다.
한없이 텅 빈 넓은 한 가운데인 이 곳에 당도하면 누구나 맑은 물들과 샛노랗게 익은 과일이 달린 나무숲들, 도기로 만든 번쩍거리는 건물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허기진 배와 마음을 채우면서 삶의 희열을 느낀다. 거기에 아름답고 신비로운 여인들이 오고가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Sogudia (the land of Sogur) is in the middle of the world, east of the land of the sun, west of the east, where the sun is born. Since the world was first created, shooting stars gathered and rolled, moonlight penetrated like a silken scoop, sand grain wounds swept away, and purple bruised sunsets and bright red blood-dawn vans were mixed with white sunlight. Tengri’s Seol Young combs like a comb, rustles in the ice of Altai’s golden flesh, where the fascinating greenery of Pamir flutters in the wind, and blows and grounds the hot winds of the Taklamakan desert from the fareast. It’s a whirlwind.
From a long time ago, when the grass wolf and desert foxes were the main characters, it was an oasis where people from all over the world gathered to mix blood, mix flesh, mix hearts, dance and sing. In addition to the hopes and dreams of camels, there were silks, glassware, blue ceramics, and objects that came and went to the east, west, north and south of the world. It was the largest and most gorgeous city of the Silk Road. When you arrive here, in the middle of a vast empty space, you can see clear waters, forests of freshly ripe fruits and sparkling buildings made of pottery. And with a sigh of relief, he fills his heart with a hungry stomach and feels the joy of life. There beautiful and mysterious women come and go, dance and sing.

오회분 4호묘의 천장에 그려진 해와 악기를 부는 선인도

소구드인의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의 예술 문화 유물 발견

소구드인들은 구석기 시대부터 살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예술이 어떤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신석기 시대에 들어오면 예술의 흔적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사라즘에서 발견된 다양한 종류의 문양과 채색이 된 그릇, 장신구 등의 유물들은 이미 이들은 미의식이 뛰어났고, 수준도 높은 단계에 도달했음을 알려준다. 그런데 사마르칸트주의 ‘무민오보드 마을’에서는 기원 전 8 세기경인 청동기 시대의 고분에서 동물뼈로 만든 ‘피리’가 발견됐다. 또 아프라시압 지역에서는 기원 전 1세기의 우드(ud, 비파형 악기인 Lut)를 켜는 여인 모양으로 만든 흙인형들이 발견됐다. 이 지역과 근처인 펜지켄트시에 있는 궁궐을 발굴하면서 벽에서 하프를 켜는 여인 등 음악가들의 그림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기원을 전후한 시대에 이르면 예술이 매우 뛰어난 것이다.
중앙아시아라는 지리적인 명칭과 실크로드라는 문화용어에서 보이듯, 다른 지역들과는 다른 질과 양의 예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Discover traces of art culture from the Neolithic and Bronze Age of the Sogurds

The Sogur had lived since the Paleolithic times, but it is not clear what their art is like. In the Neolithic period, traces of art are found in many places. The various types of patterns, painted vessels, and ornaments found in Saramism already indicate that they are aesthetically conscious and have reached a high level.
But in Samarkand’s Mumin-Obod Village, a flute made of animal bones was found in the tombs of the Bronze Age, about 8th century BC. In the Prasatab region, clay dolls were found that were shaped like a woman turning on the wood of the first century BC. Excavating palaces in the region and nearby Penzikent, I found paintings by musicians, such as women who harp on the walls. Then, by the time of its origin, art is very good.
As can be seen from the geographical name of Central Asia and the cultural term Silk Road, arts of different quality and quantity had to develop.

실크로드의 한 지역인 동투르키스탄(카스)에서 사용 중인 악기들

기원전 6세기경부터 페르시아와 지중해 문화 혼합되고

이미 스키타이 계통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땅에 기원전 6세기 경 쯤에는 먼 서쪽으로부터 페르시아 사람들이 들어와 살면서 도시를 만들었다. 그 뒤를 이어 알렉산더를 따라온 그리이스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이 두 문화권은 인류의 문화사에서 일찍부터 탁월한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켜 왔었다. 화려하고, 거대하면서도, 몽환적인 곡선의 아라비아 예술과 맑고 투명하고 합리적이면서도 신화적이고 기하학적인 지중해의 예술이 이 사막의 오아시스 지역에서 섞인 것이다. 이어 몇 백 년의 긴 세월이 흐르고, 다시 동북쪽에서 풀밭과 산기슭에서 말을 타면서 강건하고, 직선적이며, 역동적인 예술을 던 투르크인들이 들어 왔다. 이렇게 해서 또 몇 백 년 동안 피가 섞이면서 살았다.

Persian Mediterranean culture mix from around 6th century BC

By the sixth century B.C.E., the Persians came in from the far west and lived in this land, which was already inhabited by Scythians. The Greeks who followed Alexander came in and began to live. These two cultures have been developing early cultures and arts in human cultural history.
The colorful, huge, dreamy curved Arabian art and the clear, transparent, rational, mythical and geometric Mediterranean art blend in this desert oasis. A few hundred years later, the Turks of strong, straightforward, dynamic art came in, riding horses in the meadows and foothills in the northeast. In this way he lived with blood for another hundred years.

투르크 지배 기간 동안 소구드어 공용어 되고 예술의 오아시스 형성

투르크(Turk, 突厥) 제국의 지배를 받는 이 기간 동안에 중앙아시아와 소구디아는 삶과 주민의 혈연, 문화의 기본 형태가 정해졌다. 그리고 사마르칸트는 더 확장되었고, 시내에는 거대한 성벽과 궁전, 사원들과 귀족들을 위한 주택들이 세워졌다. 소구드어는 실크로드에서 국제 통용어로 기능을 했으며, 예술은 질적으로 성숙하면서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7세기 후반에 아랍인들이 들어왔고, 동쪽에서 한족들도 조금씩 흘러 들어왔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얼굴과 피부색, 몸과 혼을 가진 사람들이 몰려 들어와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예술의 오아시스가 되었다. 그리고 소구드인들은 어느 새 수완 좋은 상인이 되어 거쳐가는 이방인들을 따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상품들을 중국, 한국, 일본, 아랍 국가들과 비잔틴까지 운반해 갔다. 그들은 발길 닿은 곳, 머무는 곳마다 음악과 춤이라는 예술을 퍼뜨렸다.

Formation of an oasis of art and articulation of Sogur during the Turkish rule

During this period, under the control of the Turk Empire, Central Asia and Sogudia were defined as the basic forms of life, inhabitants, and culture. Samarkand was further expanded, and in the city were built massive walls, palaces, temples, and houses for the nobility. Sogur served as an international dialect on the Silk Road, and the arts spread around as they matured qualitatively. In the late seventh century, Arabs came in, and some Han Chinese came in from the east. Since then, people with various faces, skin colors, bodies and souls have flocked to the center of the world. In particular, it became an oasis of art. And the Sogurs were scattered all along the way of the Gentiles, who became new resourceful merchants. And all kinds of goods were carried to China, Korea, Japan, Arab countries and Byzantine. They spread the art of music and dance wherever they went and where they were staying.

소그드인 고구려까지 동진하여 춤과 음악 전파

소그드인들은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6세기 말인 수나라 때에는 중국의 수도권에 거주하였다. 또 일부는 국경을 넘어 고구려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고구려는 춤과 음악 기예 등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던 그들이 전해준 예술들을 받아들여 문화와 예술이 더욱 다양하고 풍요로워져서 우수하고, 국제성을 띄우게 되었다. 이때 사마르칸트의 통치자가 사마르칸트 외곽에서 발굴된 ‘아프라시압 궁’전의 주인공인 ‘바르후만(Barxuman)왕’이고, 그의 궁전 벽화에 고구려 사신단이 등장한다.
6~7세기 경의 부유한 소그드인의 무덤을 발굴하였는데, 공연하는 소그드인 합주단이 묘사되었는데, 3명의 연주가들은 우드(비파형 악기)와 2개의 피리, 북 모양의 악기 등이 있었다. 그리고 무용수는 두 손을 들고 마주 잡은 채로 격렬하게 추고 있다. 중국인인 손강이 쓴 기록에 따르면 사마르칸트인들은 7세기부터 10세기까지 노래, 춤, 악기들을 당나라의 궁전과 도시들에 전하였다. 일본의 키시베에라는 학자는 당나라 궁전에서 활동한 중앙아시아와 동투르키스탄에서 온 31명의 음악가 이름을 확인했다. 실제로 8세기 초에 소구드의 젊은 남녀 무용수들이 당나라에 건너가 공연한 기록이 있다. 그들의 춤은 시적으로 세밀하고, 손과 손가락을 활용하는 동작이었으며, 다른 한 종류는 이와 반대로 기예와 격렬한 곡예 기법으로 공연한다. 이러한 춤을 시인인 이백, 두보, 원진 등이 표현하였다.

Spread dance and music through the Chinese Segments and Goguryeo

The Soggites moved eastward and lived in the capital region of China during the late 6th century. Some have crossed the border into Goguryeo. Naturally, they accepted the arts they had given their talents, such as dance and music arts, so that culture and arts became more diverse and enriched, resulting in excellent and internationalism. At this time, the ruler of Samarkand is the king of Barxuman, the main character of the palace of Afraciab, excavated outside Samarkand, and the Goguryeo Shrine appears in the mural of his palace.
Excavating the tombs of the wealthy Sogdian around the 6th and 7th centuries, the performing Sogdian ensemble was described, with three performers: wood (non-wave instrument), two flutes, and drum-shaped instruments. The dancer is dancing violently with both hands raised. According to the writings of the Chinese Son Kang, the Samarkands brought songs, dances, and instruments to the Tang palaces and cities from the 7th to the 10th centuries. A Japanese scholar, Kishibeera, identified the names of 31 musicians from Central Asia and East Turkistan who worked in the Tang Palace. Indeed, there are records of Sogurd young men and women dancing to the Tang Dynasty in the early eighth century. Their dances were poetic and detailed, using hands and fingers ,the other on the other hand, performed with art and violent acrobatic techniques. These dances were expressed by poets Lee Baek, Du Bo and Won Jin.

『구당서』에 고구려와 백제 탈출놀이 남조 송나라 전파 기록 있어

수나라 초기에도 만들어진 수서에 기록된 ‘7부기(7나라의 예술)’ 가운데 세 번째로 ‘고려기(高麗伎)’가 들어 있다. 또 당나라에서 설정한 ‘9부기’에도 역시 ‘고려기’는 들어가 있었다. 그만큼 고구려의 춤은 뛰어났던 것이다. ‘건무(健舞)’가 유명했는데, ‘지서무’ ‘호선무’ ‘고려무’는 당나라의 궁정에서 연주되었다고 한다. 당나라의 유명한 문인인 백낙천은 호선무를 시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구당서』의 음악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탈춤놀이가 남조의 송나라에 전파되었다고 하였다. 고구려에는 횡취, 대각, 장고, 필률, 현악기(탄쟁), 오현비파, 완함, 공후 등 38종이 있었다. 562년에는 고구려의 기악도구가 일본에 소개되었고, 춤들이 전수되었다. 또 752년에 일본에서는 수도인 나라의 평성경 옆에 매우 장대한 동대사를 완공하고 ‘대불’이 완성되었다. 이때 축하행사에서 고려악이 연주되었는데, 이는 발해의 음악일 가능성이 크다. 중아시아에서는 예술뿐만 아니라 유명한 씨름, 칼춤, 외나무다리타기 등의 기예들도 고구려에 들어와 공연됐다. 고구려의 팔청리 벽화 등에는 그 모습들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Goguryeo and Baekje mask dance play in South Korea

Among the seven bookkeepings (Art of the Seven Kingdoms) recorded in Suseo, which was created in the early Sui Dynasty, the third is the Goryeogi. The Goryeogi was also included in the 9th Boogie set by the Tang Dynasty. The dance of Goguryeo was outstanding. ‘Kunmu’ was famous, ‘Gi Seomu’ ‘Hosun Mu’ ‘Goryo Mu’ were said to have been played in the courts of the Tang Dynasty. Baek Nakcheon, a famous Tang dynasty, also expressed Hosunmu as a poem. Gudang-seo’s music magazine said that the mask dances of Goguryeo and Baekje were spread to Song Dynasty of South Korea. There were 38 species in Goguryeo, including stealth, diagonal, janggo, pilgrimage, string instrument, and Ohyunbipa, Wanham, and Gonhu. In 562, the instrument of Goguryeo was introduced to Japan, and dances were transmitted. In 752, Japan completed a very grand Dongsa Temple next to the Pyongseong Bible in the capital, Nara, and completed the Great Buddha. At this time, Korakak was played at the celebration, which is probably the music of Bohai. In Central Asia, not only the arts but also the famous wrestling, sword dance, and climbing a wooden bridge were performed in Goguryeo. The paintings of Goguryeo’s Palgali-ri are described in detail.

만도레시아 아울루벡

소구드인 고구려와 발해에 문화 전파하고, 일부는 한반도에 이주

그런데 고구려의 이렇게 뛰어난 예술은 중앙아시아, 특히 소구디아와 연관이 깊었다. 악기들은 그 시대에도 중앙아시아에서 유행했다. 지금도 실크로드에서는 물론이고 우즈베키스탄 같은 알타이 주변지역에서 연주된다. 소구드인들은 고구려에서 활동하였는데, 그들은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서 집단 거주지를 이루면서 상업과 무역은 물론 정치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이들은 8~9세기에 직접 간접으로 발해와 연관을 맺었다. 현재 우스리스크 일대인 솔빈부에 있는 아브리코스 절터에서 십자가가 발견되었다. 현재 훈춘시 일대인 발해의 동경 용원부에서도 십자가를 목에 건 협시보살이 발견되었다. 또한 노르고르데예프성 바깥의 거주지에서 은화가 한 점 발견되었는데, 앞쪽에는 왕관이 있고, ‘부하라 군주 짜르’ 라는 소구드 문자가 있었다. 모두 소구드인들과의 연관성을 알려준다. 또한 러시아의 샤프코노프 박사는 ‘담비의 길’을 설정해서 유라시아 세계와 무역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언급하였다. 사마르칸트는 그 무렵에 강(康)국이었고, 타쉬켄트는 석(石)국이었으며, 부하라는 안(安)국이었다. 그러므로 중국에 와서 살던 소구디아 사람들은 각각 모국의 이름을 따서 康氏 石氏 安氏 등의 성으로 살았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우리나라로 들어와 살기도 하였다. 그 후 사마르칸트는 아랍에게 점령당했고, 9~10세기에는 더 큰 도시가 되어 매우 번성하였다.

Culture spreads to Sogur Goguryeo and Bohae, and some migrate to the Korean Peninsula

However, this outstanding art of Goguryeo was deeply related to Central Asia, especially Sogudia. Musical instruments were still popular in Central Asia at that time. It is still played on the Silk Road as well as around Altai, such as Uzbekistan. The Sogur lived in Goguryeo and participated in politics as well as commerce and trade, forming a collective residence in Chang’an, the Tang’s capital. These were associated with Bohai directly and indirectly in the 8th and 9th centuries. The cross was found in the Abricos Seasons in Solbin, a part of Usrisk. A narrow bodhisattva with a cross was found at the Tokyo Yongwon Department of Bohae, Hunchun.Also, a silver coin was found in a residence outside the castle of Norgordeev, with a crown in front and the Sogur script of Bhuhara Lord Czar. All point to connections with the Sogurs. Dr. Sharpkonov of Russia also noted the possibility of trade with the Eurasian world by setting up the “Marten Road.” Samarkand at that time was a powerful nation, Tashkent was a stone nation, and an empire of subordinates. Therefore, each of the Sogudias who came to China lived in the same name as Gang, Suk, Ahn after their home country, and some of them came to Korea. Since then, Samarkand was occupied by the Arabs, and in the 9th and 10th centuries it became a larger city and flourished.

타슈켄트 시내 브로드웨이 공원의 티무르 동상

칭기즈칸의 등장과 티무르 제국

1219년에 칭기즈칸이 지휘하는 몽골인들이 빠른 속도로 중앙아시아의 타쉬켄트 지역인 모바로운나흐르를 침공해 왔다. 오트라르(Otrar), 비노켓(Binoket), 호잔드(Xojand), 부하라 등의 도시들을 점령한 몽골 군대는 1220년 봄에 사마르칸트 성벽 아래에 출현했다. 두 나의 군대는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는데,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약 1만명의 사마르칸트인들이 전사했다. 생존자들은 참전한 몽골계의 여러 부족들에게 분배되었고, 대다수는 살해되었다. 그리고 기술자들과 건강한 사람들은 포로로 잡아 갔다.

The appearance of Genghis Khan and the Timur Empire

In 1219, Genghis Khan’s Mongols invaded the Tashkent region of Central Asia, Mobarun Nahr. Mongolian troops occupying cities such as Otrar, Binoket, Xojand and Bukhara appeared under the walls of Samarkand in the spring of 1220. Both of my troops fought fiercely, about 10,000 Samarkans killed. Survivors were distributed to various Mongol tribes, most of whom were killed. And technicians and healthy people were taken captive.

티무르왕의 무덤 벽면

몽골인들 유라시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고 교통망 도입

원제국은 대륙 유라시아의 교통망을 완성하고, 유라시아 세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만들어, 인류가 활동하는 범위를 대폭으로 확장하였고, 사람들의 인식을 더욱 국제적이게 만들었다. 그 수단 가운데 하나가 교통망인 역참이다. 참은 몽골어로 도로를 의미하는 ‘잠(jam, 투르크어로 yam; 站)’에서 유래하였다. 치는 사람이므로 잠치는 도로를 관리하거나 그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실크로드에 이러한 교통망을 도입하여 실현한 것은 페르시아인들이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몇 단계를 거쳐서 조직적이고, 유라시아 거의 전체를 광역의 교통망으로 정비한 업적을 이룬 것은 원나라의 2대 칸인 오고타이이다.

Mongols Introduce Eurasian Transportation Network

The original empire completed the transportation network of continental Eurasia and made the Eurasian world into one system. They greatly expanded the range of human activity and made people’s awareness more international. One of the means is the station of transportation. Cham comes from the Mongolian word jam (jam, yam in Trukian; yam). Tuna means people who manage the road or are in charge of it because it is a hitter. It was the Persians who brought this traffic network to the Silk Road. They have been organized for a long time in several stages, and it is Ogotai, the 2nd Khan of the Yuan, who has achieved the accomplishment of organizing almost all of Eurasia into a wide-area transportation network.

레기스탄 광장(Registan square)

티무르 왕의 무덤 맞은편 중국에서 시집온 공주의 묘

타쉬켄트 광장

티무르왕의 무덤 내부와 관

원 쿠빌라이칸 유라시아 평정 후, 해륙교통망 완성

우선 수도인 카라코룸과 북경이 있는 북중국 사이에 가장 발달하여 촘촘하게 길과 잠들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매일 수레 500량에 해당하는 식량들을 운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쿠빌라이칸(1260년~1294년)은 유라시아 세계를 군사적으로 평정한 다음에 육상과 해상의 교통망을 정비하여 유기적인 교통망을 완선하였다. 유라시아의 해륙교통망을 처음으로 완성시킨 임금이다.

After completion of the original Kubilaikan Eurasia continent, the land and sea transportation network completed.

First of all, it was the most developed between Karakorum, the capital, and North China, where Beijing is located. It is said to carry 500 food items each day. And Kubilaikan (1260-1294) completed the organic transportation network after the military equilibrium of the Eurasian world, and by overhauling the land and sea network. This is the first wage to complete Eurasia’s land and transportation network.

사마르칸트 천문관측대

티무르 박물관

사마르칸트 레기스탄광장, 셰르-도르메드라세(Sher-Dor medrasseh)

이스마일 샤마니왕의 영묘

원 멸망 후 티무르족 서쪽으로 진출, 사마르칸트 중심 중앙아시아 평정

원나라가 멸망한 이 후에 중앙아시아에서는 1370년에 아미르 티무르(timur, 1336~1405)는 발흐(Balkh)시에서 열린 대쿨리타이(Quriltai)에서 통치자로 선출되었다. 그는 사마르칸트를 선택하여 역사, 기후와 수원지 등의 자연환경을 조사한 후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리고 대사원, 콕사로이(Koksaroy), 보스톤사로이(Bostonsaroy) 등을 건설하여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상업교통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티무르는 중앙아시아 전역을 점령한 후에 서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란 지역을 공격하였고, 동부 페르시아를 완전하게 장악하였다. 이어 흑해 주변의 그루지아, 아르메니아, 그리고 아나톨리아 반도, 북방의 킵차크 초원을 원정하였다. 또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정복하고, 1401년에는 바그다드까지 차지하여 중앙아시아를 세계질서의 중심부로 만들었다. 하지만 명나라를 원정하기 위해 출발했으나 1405년 중도에서 병이 나서 사망하였다.
이어 미르조 울루그벡(Mirzo Ulugbek) 시대에도 발전하여 중앙아시아의 과학, 예술, 문화 등이 이란, 인도, 중국, 터키 등의 나라들에게 전파되었다. 이렇게 해서 사마르칸트는 수준 높은 사상과 철학, 진귀한 예술 작품들이 탄생하고 발전하면서 세계에 알려졌다. 현재 사마르칸트에 남아 인류의 예술적인 능력을 증명하는 건축물들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여러 번 개축을 하였지만 원형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After the fall of the West, the Timurs advance to the west, centering in Samarkand in Central Asia

After the fall of the Yuan dynasty, in 1370, the Timur (1336-1405) was elected ruler at the Quriltai in Balkh. He chose Samarkand to build a city after examining the natural environment of history, climate and water source. And the Abbey, Koksaroy and Bostonsaroy were built to make it a beautiful and commercial hub. Timur began to advance west after occupying all of Central Asia, attacking the Iranian region, and taking complete control of Eastern Persia. They then explored the Georgian, Armenian and Anatolian peninsulas around the Black Sea, and the Kippak grasslands north. It also conquered the Persian Mesopotamia and, in 1401, Baghdad, making Central Asia the center of world order. However, he started to expedite the Ming Dynasty, but died in 1405 due to illness.
Subsequently, it developed in the era of Mirzo Ulugbek, and the science, art, and culture of Central Asia spread to countries such as Iran, India, China, and Turkey. Samarkand thus became known to the world as the birth and development of high-quality ideas, philosophies, and rare works of art. The buildings that remain in Samarkand today to prove the artistic abilities of mankind were created in that era. Of course, many renovations have been made, but the prototype was created in that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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