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 : 퇴계 선생의 성장, 학문연구, 그리고 언행일치의 삶을 실천하던 생활현장에서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던 삶의 자세를 배운다.
가는 길 : 서울에서 안동으로 가려면 강남대로 내곡IC에서 지하도를 통과해서 30Km정도 간 후 초월IC에서 광주원주고속도로에 진입하여 51.7Km를 드라이브한다. 이후 신평IC에서 중앙고속도로에 진입해서 128Km를 운전한 후 서안동JC에서 안동으로 빠진다.

Concept : Learn the attitudes of trying to pursue righteousness for the community rather than individuals in the field of practice of Toegye’s growth, academic research, and unanimous life.
The Way : To go to Andong from Seoul, go through the underpass at Gangnam-daero Naegok IC and go about 30 km. Then, enter the Gwangju-Wonju Expressway at Transwol IC and drive 51.7 km. After that, enter the Jungang Expressway at Sinpyeong IC and drive 128 km.

2019년 도산선비수련원에서 ‘퇴계선생 귀향길 450주년 재현행사’를 11박12일 동안 서울에서 안동까지 걸어서 진행하고, 폐막식 날 한국을 대표하는 퇴계학 연구자들과 후학들이 도산서원 앞마당 모여 퇴계 선생의 인재양성의 길을 기렸다

도산면 퇴계퇴실의 성임문

퇴계 선생이 출생한 온천정사

퇴계 선생이 청년시절 홀로 공부하던 도산면 용수사

퇴계의 생가터 태실과 공부터 용수사
주소 : 도산면 은혜리 중마길 46-1

안동 정신문화의 본류인 퇴계 선생이 태어난 곳에서 이번 퇴계의 길 체험을 시작한다. 나즈막한 동산 아래에 위치한 퇴계 선생 생가 집의 성임문(聖臨門)을 열고 들어서면 소나무 숲을 등지고 선 정자 노송정을 마주한다. 노송정 오른편 누각에는 온천정사(溫泉精舍)라는 현판이 보인다.
퇴계 태실은 1454년 선생의 조부 이계양이 세운 건물이다. 1501년 이황 선생은 이 집 몸채 중앙에 돌출된 방에서 태어났다. 퇴계 선생이 태어날 때 부모가 태몽을 꾸었다고 한다. 아버지 이식이 40세 때 진사시에 합격한 해에 어머니의 꿈에 ‘공자가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퇴계 선생을 낳았다고 한다. 그래서 퇴실 대문을 성인이 임한 문이라는 뜻으로 성림문(聖臨門)이라 명명했다. 퇴계태실은 14대손인 가원에 의해 중수되었고 1930년대 전면개축 되었다. 태실은 정면 7간 측면 6간의 홑처마 구조로서 안마당을 중심으로 전면에 사랑채, 뒤쪽에 정침, 좌우에 양측사를 둔 완전한 □자 구조다. 조부의 댁에서 태어난 퇴계 선생은 젊은 시절 근처의 절 용수사에 공부하기도 했다. 퇴계 태실 근처에 있는 도산면 용수사는 신라시대의 절로 1164년 의종 6년에 왕명으로 용수사로 사액받고 화엄종의 독립사찰이 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용수사는 퇴락을 거듭했는데, 퇴계 선생은 청년 시절 집에서 멀지 않은 청정 도량 용수사에서 청년 시절 공부를 하면 호연지기를 키우기도 했다.

Introducing the raw garter yarn and ball
Address : 46-1, Jungma-gil, Grace-ri, Dosan-myeon

The Toegye path experience begins at the place where Toegye, the main body of Andong’s spiritual culture, was born. When you open the holy gate of the Toegye’s House located in the bottom of a small garden, you face the pine forest and face the Choson Songsongjeong. The pavilion on the right side of Nosongjeong is a hot spring pavilion called Yachonjoungsa.
Toegye Taesil was built in 1454 by his grandfather Lee Gye-yang. In 1501, Lee Hwang was born in a room protruding from the center of the house. When the Toegye teacher was born, his parents had a dream. The year he passed his father’s death at the age of 40, he gave birth to a Toegye teacher who dreamed of dreaming of Confucius entering the main gate. Therefore, the exit gate was named Sunglimmun, which means that the door of the saints came. Toegye Taesil was reorganized by Gawon, a 14th generation, and was completely renovated in the 1930s. Taesil is a single eaves structure between the front 7 and the side 6, and it is a complete □ ruler structure with saengchae in the front, sediment at the back, and both sides at the left and right.
Toegye-sensei, who was born at his grandfather’s house, studied at a nearby temple temple when he was young. Dosan-myeon Yongsa, located near Toegye Taesil, is a temple of the Silla era. Since the middle of Joseon, the watermen have been in decline. Toegye-sensei has grown up well when he studied as a young man in a clean metrological waters not far from home.

퇴계선생이 도산면에서 청량산까지 유산하여 학문과 도의 길을 완성한 예던길

퇴계선생 산책터 6Km 예던길, 대학자의 학문의 길
주소 : 안동 도산면 단천교 동서쪽

단천교에서 봉화군 청량산에 이르기까지 6Km 자연의 길을 따라 산책하며 강가의 카페에서 휴식하며 대화를 나눈다. 예던길은 백원지교-미천장담-경암-한속담-농암종택-학소대-월명담-고산-청량산 청량정사 까지 이어지는 이 땅의 선인들의 학문의 길이자, 수행연마의 길이다. 한여름 휴가철에 한 번쯤 퇴계 선생이 평생을 즐겨하던 예던길을 따라 각자 살아온 인생을 반추하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이지 생각해보자. 퇴계 선생은 살아생전 도산면에 인접한 청량산 산책을 즐겨하며(유산遊山), 이와 기의 관계를 생각하고 깨달으며 학문적 깊이를 더해갔다. 그래서 퇴계 선생이 남긴 모든 글은 자연의 이치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가운데, 인간 세상의 섭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퇴계 선생의 후학들은 퇴계 선생이 거닐던 길을 예던길로 이름했다. 후학들은 안동 도산면 가송리에서 출발해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자연의 길을 걸으며 사유와 이해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학문적 완성을 이루기도 했다. 퇴계 선생은 이러한 일상생활과 유산을 통해 사유의 깊이를 더하고 학문적 완성을 이루고, 그 사상과 학풍이 후배들에게 계승되어 영남학파를 형성했다. 영남학파의 학문적 사상과 학습문화는 조선 시대 유학자는 물론 후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Academic Pathway for University Students
Address : East and west of Dancheon Bridge, Dosan-myeon, Andong

From Dancheon Bridge to Bonghwa-gun Cheongnyangsan, we walk along the 6km natural path, relax and talk in a riverside cafe. Yeden-gil is the path of study and practice of the ancestors of the land leading to Baekwon Bridge, Micheon Jangdam, Gyeongam, Hanseondam, Nonam Jongtaek, Hagdaedae, Wolmyeongdam, Gosan, and Cheongnyangsan. Let’s think about what kind of life we will live in, reflecting on the life we have lived along the Yeon-gil road where the Toegye enjoyed his life once in midsummer vacation. Toegye enjoyed a walk in Cheongnyangsan Mountain near Dosan-myeon (Yusan), and thought and realize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Thus, all of the writings left by Toegye preach the providence of the human world while metaphorically expressing the reason of nature. For that reason, the Toegye ‘s students named the path that the Toegye walked. After school, they started from Gasong-ri, Dosan-myeon, Andong, and walked the path of nature leading to Cheongnyangsan. Toegye added the depth of thought and achieved academic completion through this daily life and heritage, and the thought and school style were inherited by juniors to form Yeungnam school. The academic thoughts and learning culture of the Yeungnam school had a great influence on the scholars of Joseon dynasty and later generations.

퇴계 선생의 형 온계 선생이 분가해 정착한 온계 종택

온계종택에서 숙식하고 은혜중마길에서
주소 : 도산면 은혜중마길 20

퇴계대실 바로 옆에 있는 온계종택은 이황 선생의 형인 온계 이해(1496~1550)가 20세 되던 해 노송정 본가에서 분가해 새로 집을 지어 정착한 곳이다. 퇴계 선생은 온계선생이 성균관에서 수학하는 동안 어머니 춘천 박씨를 모시고 이 곳에서 5년간 거처하기도 했다. 온계 선생은 1525년(중종 20)에 진사가 되었고, 152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33년에 사간•정언 등을 거쳐 1541년 직제학에 올랐고, 이어 경상도진휼경차관 좌승지•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44년에 첨지중추부사•대사헌•대사간• 예조참판을 지내고, 그 해 또다시 대사헌이 되었다. 1545년(명종 즉위년) 강원도관찰사에 이어 1547년에 황해도관찰사,1549년에 청홍도관찰사를 거쳐, 1550년에는 한성부우윤이 되었다. 온계종택은 12대 후손인 지암 이인화 의병장이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내려진 단발령에 반발, 예안에서 군사를 모아 의병을 일으킨 곳이다. 퇴계종택과 나란히 안동유림 의거의 중심이었던 의병장 이인화의 생가이다. 구한말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된지 110여년만에 온계 17대손 이목에 의해 2011일 5월 5일 낙성식을 갖고 제 모습을 찾았다.
현재 온계종택은 온계 선생의 17대손 이목 종손이 2011년 5월 낙성식 이후 부인 류명석씨와 함께 살고 있다. 이목 종손은 주춧돌 3개를 발견한 후 종택 재건 작업을 시작하여 국가 지원으로 2011년 삼백당(三栢堂)을 건립해 낙성식을 하고 온계종택을 중수했다. 낙성식 때 부인과 함께 참석한 전 조순 도산서원수련원장이 당호 삼백당을 직접 써주기도 했다. 현재 온계종택은 한옥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종부가 개발한 자기주머니 만들기, 밤하늘 별 달보고 차 마시기 등의 체험프로그램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온계종택 왼편에 있는 밤나무는 보호수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종택에서 스테이를 한 여성들의 기를 받고 가서 태임을 하여 집안의 경사를 만들기도 한다고 종부 류씨가 전하기도 했다.
점심 때가 되어 온계종택에서 5분 거리의 거리에 몇 개 있는 식당을 찾았다. 은혜몽실식당에서 소박한 시골밥상이지만, 정갈하게 나온 정식으로 점심을 먹는다. 근처에 은혜 커피숍과 노래방도 있다.

Meals and meals at Ongye Jongtaek
Address : 20, Gracejungma-gil, Dosan-myeon

Ongye Jongtaek, located next to Toegye Room, was separated from Noh Song-jung’s main building and settled in the house when Lee Hwang’s elder brother Hae-Gye Lee (1496-1550) was 20 years old. Toegye teacher had stayed here for five years with his mother, Chuncheon Park, while the teacher was studying at Sungkyunkwan. The teacher became a dent in 1525, and in 1528 he was paid to the clinic for classes. In 1533, he went on to order in 1541 after his intermission and affirmation. He also served as a left and a stop in Gyeongsang-do, Korea. In 1544, he served as an Ambassador of Central Affairs, Ambassadorial Hearing, Ambassadorial and Preliminary Trials, and again became Ambassadorial Constitution. In 1545, he succeeded to Gangwon-do, followed by Hwanghae-do in 1547, and Cheonghong-do in 1549, and became Han Sung-wooyun in 1550. Ongye Jongtaek was is the birthplace of Lee In-hwa, who is the 12th generation descendant of the family. He raised the righteous army when the Japanese executed the Cutting-Hair of the people at the time of killing the Empress Myungsung. It was the center of the Yurim’s patriots of Andong. Ongye Jongtaek was burned down by Japanese army and Lee Mok, who is the 17th generation of the family, rebuilt the Ongye Jongtaek in 110 years, while having a ceremony of the reconstruction. Currently, Ongye Jongtaek is the 17th generation of Ongye Jong-son, who lives with his wife Ryu Myeong-seok after May 2011. After discovering three headstones, Lee Mok-jong started reconstruction of Jong-taek and established Sambaekdang 3-star in 2011 with the support of the state. Josun, the former director of Dosan Seowon Training Center, attended by his wife during the inauguration ceremony, wrote Dangho Three hundred Party. Currently, Ongye Jongtaek has a hanok stay, which is popular with both domestic and foreign tourists with experience programs such as making porcelain bags, watching the moon in the night sky and drinking tea. The chestnut tree on the left side of Ongye Jong-taek was designated as a protector, but Jong-bu said that even when the women stayed at Jong-taek, they went pregnant.
At lunch time, I found some restaurants within a 5-minute walk from Ongye Jongtaek. It’s a rustic country table at Grace Mongsil Restaurant, but it’s a formal meal. There is also a grace coffee shop and karaoke nearby.

도산면 은혜중마길 식당가에서 식사하기

[안동 도산면에서 이튿날 코스] 퇴계의 학문연마의 터

안동에서 나고 자란 퇴계 선생은 벼슬길에 나선 때를 제외하고는 평생 토계면 고향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마음 수양과 학문 연구에 전념했다. 안동의 수많은 서원과 유림들의 배출은 퇴계 선생과 같은 거목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퇴계 선생은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소고 박승임, 성남 김효원 등의 문하생을 배출했다. 조목, 송암 권호문, 두곡 고응척 등도 퇴계 선생의 문하생이다.

Eating at Dosan-myeon, Eunhyejongma-gil Restaurant

[Next day course in Andong Dosan-myeon] Ground for Academic Grinding

Born and raised in Andong, Scholar Toegye studied forever in his hometown, devoted to discipline and academic research, except when he was in office. The discharge of Andong’s many scholars and sewones is possible because of the big tree as the great scholar Toegye. Toegye raised the students such as Seo-ae Ryu Sung-ryong, Hak-bong Kim Seong-il, Sogo Park Seung-im and Seongnam Kim Hyo-wo. And Jomok, Songam Kwon-homoon, Dugo Go-Yungchuk are also students of Toegye.

퇴계 선생이 50세 되던 해 제자와 함께 공부하기 위해 건립한 계상학림

A. 후학양성터, 계상학림
주소 :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퇴계 선생은 벼슬에서 낙향한 후 50세 되던 해에 현재 퇴계종택 입구 계곡 가에 조그만 정자 계상학림을 지어 독서를 하고 제자도 가르쳤다. 계상학림은 길가에 있기는 하나 여름이면 계곡의 숲에 가려 불과 서 너 평 규모의 계상학림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잘 살펴보아야 볼 수 있다. 퇴계선생의 벼슬길에 나선 시기와 69세에 선조에게 귀향을 윤허받고 도산면으로 귀향하기까지 과정을 보면 퇴계 선생의 면모와 학문에 정진한 학자와 교육자로서의 면모, 그리고 나라살림을 살면서 행한 구국리더십을 이해할 수 있다.

A. Teaching site, Gyesanghaklim
Address : 154, Dosanseowon-gil, Dosan-myeon

The Toegye read a book and taught a disciple by writing a small jungza in the valley at the entrance of Toegye Jongtaek in the year when he was 50 years old after returning to the home. Gyesanghaklim is located on the roadside, but in summer it is hidden by the forest of the valley.
The process of the Toegye’s crest and the process of returning to his ancestors and returning to Dosan-myeon at the age of 69 can understand the aspects of the Toegy, his devotion to academics and educators, and the old national leadership in government office.

퇴계 선생은 제자들과 1561년 도산서당을 지어 후학 양성을 했고, 사후 제자들의 건의로 1572년 도산서원을 건립, 상덕사에 선생의 위패를 모시기 시작했다

B. 1527년 초시에 합격하고 1569년 관직에서 물러나기까지

퇴계 선생은 경상도 예안 온혜리(현재 안동시 도산면)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황은 1512년 12세에 숙부 송재 이우로부터 『논어』를 배웠다. 스승 송재는 당시 관직에 있었지만, 친히 조카 퇴계를 비롯한 동리 청년들을 가르쳤다. 퇴계는14세때부터 혼자 독서하기를 좋아하여, 특히 도연명의 시를 사랑하였고 그 사람됨을 흠모하면서, 평생 도연명과 주자를 인생의 사표로 삼았다. 숙부 이우에게 수학한 뒤 퇴계는 고향의 용수사에서 공부했다. 20세 무렵부터 침식을 잊고 밤낮으로 독서를 하며, 공부에 몰두한 탓에 건강을 해쳐서 병을 얻어 이후부터 몸이 약해서 병마에 시달렸다.
퇴계는 1527년 향시에서 진사시와 생원시 초시에 합격하고,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고 다음 해 소과인 생원시에 급제했다. 1533년 성균관에서 하서 김인후와 서로 교유하며 뜻이 맞아 끊임없이 토론하고 연구했다. 또한 퇴계는 노수신과 교류를 했다. 조광조의 제자인 이연경의 문인 노수신을 통해 퇴계는 조광조의 영향을 받게 된다.
한편 퇴계는 1533년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안국을 만나 군자에 관한 안목을 넓히기도 했다. 퇴계는 1534년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부정자가 되면서 관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539년 홍문관 수찬이 되었으며, 동년 곧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하였다.
이어 1540년 홍문관 교리에 제수되는 등 승진을 거듭하였다. 퇴계는 10월에 성균관 사성이 되었다 그러나 1543년 조정이 어지러워지자, 성묘를 핑계삼아 사직하고 고향에 들어가 학문을 연마하였다.
그러나 1545년 조정으로 불려가 홍문관 전한이 되었다. 이 때 퇴계는 일본과 강화를 하고 변경 방어 상소를 올렸다. 퇴계는 1546년 사복시정(司僕寺正)을 거쳐, 그 해 지제교로 있을 때 명나라에 보내는 자문을 잘못 지어 사은사 남세건의 탄핵을 당하였다.
대제학 신광한의 변호로 처벌을 모면하고, 그 해 8월 교서관 교리를 거쳐 1547년 안동 대도호부사로 부임했다. 그리고 1개월 만에 홍문관 부응교로 임명되어 다시 상경하였다.

B. Passed at the beginning of 1527 and retired from office in 1569

Toegye was born in Yeon On-ri (currently Dosan-myeon, Andong-si), Gyeongsang-do, and passed away his father early. Lee Hwang learned ‘Analects of Confucius’ from his uncle, Song Jae Yi, at the age 12 of 1512. Teacher Song Jae was in office at that time, but he himself taught young people, including his nephew. Toegye loved to read alone since the age of 14, and especially loved Doyeonmyeong’s poems and adored him for the rest of his life. After studying at his uncle Lee Woo, Toegye studied at his hometown. At age 20, he forgot to take a rest and reads day and night. Because of his immersion in his studies, he suffered health and got sick.
Toegye passed from Jinsa-si and Saengwon-si in 1527, went to Sungkyunkwan to study in the past, and paid for it in Saengwon the next year. In 1533, he worked at Sungkyunkwan and talked with Kim In-hoo, constantly discussing and studying. Toegye also interacted with Ro, Su-sin. Toegye is influenced by Jo, Kwang-jo through Ro, Su-sin, the diciple of Lee Yeon-kyung, a student of Jo Kwang-jo. On the other hand, Toegye met with Kim An-guk on his way back to his hometown in 1533 to broaden his perspective on adult military. Toegye passed the exam of literacy in 1534 and becoming a vice official of Sungmoonwon. In 1539, he became a Suchan of Hong Moon Hwan.
In 1540, he was promoted to the Gyori of Hong Moon Hwan and Toegye became high official of Sungkyunkwan in October. When the political issue of government was unstable in 1543, he resigned from the office and went to his hometown to study. However, he was again called to work in government as an Jeonhan of Hong Moon hwan in 1545. At that time, Toegye strengthened the relationship with Japan and filed a defense of frontier. Toegye passed through Sabbok municipal administration in 1546 and worked as a GIJAEGO. Togye was impeached by Nam, Sae-gun, who had blamed Togye to misrepresent his advice to the Ming Dynasty. He escaped the punishment under the defense of the Daejehack Shin Gwang-han, and in 1547 he was appointed as Andong Daedo-hobusa in 1547. But he went to Seoul to work as an official of Hong Moon Hwan.

C. 당대의 학자들과 교류하며 정진, 중국 서적을 입수해서 연구하고 제자교육에 활용

그는 학문을 함에 있어서 어떤 조건이나 편견을 두지 않았다. 퇴계는 이언적, 이현보 등과도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생각과 견해를 나누었다. 그런 한편 기대승과도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논쟁을 했다. 이때 이황은 자신의 나이나 경력은 말하지 않고, 순수하게 학문적인 내용만으로 논쟁을 이어나갔다. 7년 동안 이어진 이황과 기대승의 토론과 편지논쟁은 후대의 사류들에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퇴계는 자신이 제자들을 가르칠 때 대장장이 배순이 자신의 수업을 몰래 듣는 것을 확인하였다. 몰래 배순이 자신의 수업을 들은 것을 확인한 이황은 그에게 강한 내용들을 물어보았고, 배순은 하나도 틀림없이 대답하였다. 배순의 학문적 열정에 감복한 이황은 신분을 뛰어넘어 배순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들였다. 배순은 이황의 제자로 인정되어 정식으로 그에게서 학문을 배울 수 있었고, 이에 감동한 배순은 더욱 열심히 학문에 정진했다. 한편 퇴계는 46세 이후로 고향 예안에 내려와 자신의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와 함께 배움과 가르침에 주력했다. 특히 퇴계 선생은 21살때부터 제자를 가르쳤는데, 영주 초곡으로 장가들면서 처이종 과재 장수희를 가르쳤다. 특히 퇴계 선생은 50세에 계상학림에서 공부하고 제자를 가르쳤다. 이후 자신의 학문을 토대로 서적을 집필했다.『퇴계문집』에 게재된 모든 문장도 50세 이후 쓰여진 것이다. 안동 하회마을의 입암 유중영은 두 아들 유운룡과 유성룡을 퇴계 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도록 보냈다. 이 때 두 형제는 퇴계 선생 문하에서 공부한 조목, 김성일 등과 공부했다.
퇴계는 송나라 주자의 문서인『주자대전』을 입수하려고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였다. 각처를 수소문한 끝에 1543년 퇴계는 드디어 『주자대전』을 입수하였다. 퇴계는 이언적과 조광조가 쓴 저서들을 모두 탐독, 독파했다. 그리고 사서육경과 주자에 대한 원문과 그에 대한 해석, 주해와 이언적 자신의 생각, 견해를 적은 것을 읽고 크게 칭송하였다.
이외에도 퇴계는『심경부주』,『태극도설』,『주역』,『논어집주』까지 이미 다 완독했다. 퇴계가 1543년 입수한 주자대전은 명나라 가정제 때에 재간행한 가정간본의 복각본이다. 가정간본의 원본은 성화간본의 수정, 보충본이었다. 퇴계는 1549년 풍기순수를 사퇴한 직후부터 『주자대전』을 읽기 시작해서 완독하였다. 조선의 학자로서 『주자대전』을 통독한 학자는 퇴계가 처음이다. 퇴계를 『주자대전』을 통독한 후, 주자의 학문과 언행을 철저하게 자신의 학문적, 언행적 표준으로 삼았다. 서신을 통해 학문토론을 하는 것이 주자의 특징이다. 퇴계는 주자의 이런 학풍을 도입해, ‘문목’을 통해 당대 학자들과 학문적 의문에 대해 토론하고, 질문하고, 교류했다. 교통과 통신이 없던 시절, 문목을 통해 퇴계는 학자들의 생각과 아이디어를 서로 나누며 교류를 하면서 학문적 완성을 이루어 갔다. 특히 퇴계는 당시 중국에서 간행된 책을 가장 많이 알고 입수해서 읽고 제자양성에 활용했다. 퇴계의 중국 서적 수입과 간행에 도움을 준 이는 구암 이정이었다. 도산서당을 건립할 즈음인 60세의 퇴계 선생은 1700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고, 퇴계 선생은 서가에서 서적이 놓인 위치와 내용을 모두 알고 있었다. 특히 퇴계 문하로 당시 많은 제자들이 모인 것은 선생의 학문적 경지와 인품 때문이지만, 한편으로 퇴계가 보유한 방대한 학술자료였다. 도산서당은 당시의 거대한 학술정보관이었다.
퇴계 문하생인 서애 유성룡은 이미 스승으로부터 주나라와 명나라의 학문적 지식을 배워 알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1569년 서애는 명나라 사신으로 가서, 왕양명과 진백사를 유종으로 내세우는 명나라 태학생들을 대상으로 “진백사는 도를 보는 관이 정밀하지 못하고, 왕양명은 선학에서 나왔으니, 마땅히 설문청을 유종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C. Interact with scholars of the time, obtain Chinese books and study, and use them for discipleship

Togye placed no conditions or prejudice in his study. Toegye exchanged thoughts and opinions by sending and receiving letters with Lee Eon-guk and Lee Hyun-bo. On the other hand, Togye exchanged the letter with Gi, Dae-Syung and argued. At this time, Lee Hwang did not talk about his age or career, but continued his argument with purely academic content. The seven-year debate and letter debate over Lee Hwang and Gi, Dae-Syung also became a topic for later confusiucs in this country. Toegye figured out that blacksmith Bae Soon secretly listened to his class as he taught the disciples. Lee Hwang, who secretly confirmed that Bae Soon took his class, asked him for strong contents, and Bae Soon answered no doubt. Inspired by Bae Soon’s academic enthusiasm, Lee Hwang surpassed his status and accepted Bae Soon as his disciple. Bae Soon was recognized as a disciple of Lee Hwang and was able to formally learn from him. Toegye, meanwhile, came down to his hometown after 46 years of age to cultivated his studies and to learn and teach with his disciples. In particular, the Toegye teacher has taught disciples since he was 21 years old. In particular, Toegye studied at Gyesanghakrim and taught disciples at age 50. Since then he has written books based on his studies. All sentences in the Toegye Collection were also written after the age of 50. Yom Joong-young of Hahoe Village in Andong sent his two sons, Yu Un-ryong and Yu Sung-ryong, to study under Toegye. At this time, the two brothers studied Cho Mok and Kim Seong Il, who studied also under Toegye. Toegye made a long effort to obtain Song’ ‘Jusadaejeon’. After inquiring about each place, Toegye finally acquired ‘Jusadaejeon’ in 1543. Toegye read both the books written by Lee, Unjuck and Cho, Kwang-jo. And he wrote and praised the original texts and interpretations of the ‘Jusadaejeon’ by him, their comments and their own ideas and opinions. In addition, Toegye had already completed the book ‘Shim Kyung-buju’, ‘Taeguk Do-cheol’, ‘Principal Role’, and ‘Thesis on the Analects of Confucius’. The ‘Jusadaejeon’, which was obtained by Toegye in 1543, is a reprint of the family edition reprinted during the Ming Dynasty. The original version of the home text was a modification and supplementation of the Sungwhagan edition. Toegye began to read and read the ‘Jusadaejeon’ shortly after he left Punggi governor in 1549.
As a scholar of Joseon dynasty, the scholar who read the ‘Jusadaejeon’ is the first toegye. After reading Toegye through ‘Jusadaejeon’, he made the academic and deeds of the JUSA his own academic and ethical standard. It is a characteristic of JUSA to conduct academic discussions through correspondence. Toegye introduced this school-style of JUSA and discussed, questioned, and exchanged academic questions with scholars of the time through the “Question -head(munmok)”. In the days when there was no communication and transfortation, through the ‘Question-head’, Toegye achieved academic completion by exchanging scholars’ ideas.
In particular, Toegye learned, obtained and read most of the books published in China at that time and used them to foster disciples. It was Guam Lee, Jung who helped Toegye import and publish Chinese books. By the time the Dosan Seodang was built, the 60-year-old Toegye teacher had a collection of 1,700 books, and Toegye knew both the location and the contents of the books on the shelves. In particular, many disciples gathered at the time due to Toegye’s academic status and personality, but on the other hand, Toegye’s vast academic resources. Dosan Seodang was a huge scholarly knowledge center of that time. Seo Ae Yu Sung-ryong, a Toegye student, had already learned from the teacher the academic knowledge of the Qing Dynasty and the Ming Dynasty. For this reason, in 1569, Seo-Ae went to the Ming, targeting the Ming dynasty students who presented Wang Yang-myung and Jin Baek-sa as the kind of standard. He said to them. “Jin Baek-sa was not precise in the way of seeing the road, and Wang Yang-myung came out of Seonhak. It must be made of Seolmonchong. ”

D. 퇴계의 제자들과 전국 분포도

『도산급문제현록』에 기록된 퇴계의 제자 309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경북도의 예안에 가장 많다. 두번째로 많은 지역이 퇴계가 오래 거주한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 49명이 제자가 있다. 사암 박순, 율곡 이이가 대표적이다. 세 번째로 예안에 인접한 안동에 46명이 있고, 대표적으로 학봉 5형제, 서애 형제, 청암 권동보, 충재 권벌의 아들 형제 등이다. 네 번째로 영주의 거주자가 12명으로 대표적으로 소고 박승임 형제, 금계 황준량, 백암 김륵 집안 사람 등이다. 다섯 번째로 예천이 10명으로, 대표적으로 약포 정탁, 초간 권문해가 있다. 여섯 번째로 성주가 6명으로, 대표적으로 한강 정구 형제, 동강 김우옹 형제 등이다. 그외와 선산과 영천이 각각 5명, 풍기 4명, 영해, 의성, 현풍, 밀양, 해남 등이 각각 3명이다. 이외에 대구, 용궁, 충주, 파주, 호남이 각각 2명이고, 청송과 고령 등 37개 고을에 각각 1명이다. 그리고 나머지 거주지역이 기록되지 않은 제자가 54명이다. 특히 퇴계의 제자 중 현재 경남지역 거주자가 16명이다. 대표적으로 구암 이정과 덕계 오건이 있다. 퇴계의 인정을 받고 학문적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제자는 구암 이정이다. 구암은 퇴계가 30세때부터 세상을 돌아가실 때까지 선생을 찾아와 학문을 강론하고 서서신을 교류하며 퇴계의 학문을 배우고 덕행을 따랐다.

D. Disciples in Toegye and National Map

There are 309 disciples of Toegye recorded in The Bankruptcy Problem List. This is the most common example of Gyeongbuk Province. The second largest area in Seoul and Gyeonggi, where the Toegye lived long, 49 students. Sandstone Park Sun and Yulgok Yi are typical. Third, there are 46 people in Andong, adjacent to Yean, including the five brothers of Hakbong, brother Seoae, Cheongam Kwon Dongbo, and the brother of the son of Chungjae. Fourthly, the resident of 12 lords is representative of Sogo Park, Seung-Im Park, Geum-Gye Hwang Jun-Ryang, and Baek-Am Kim. Fifth, there are 10 Yecheons, including medicine deposits, and Kwon Mun-hae. Sixth, there are six lords, including the Han River Jung-gu and the Dong Kang Kim Woo-ong. In addition, there are five people in Sunsan and Yeongcheon, four in Punggi, three in Yeonghae, Uiseong, Hyunpung, Miryang, and Haenam. In addition, Daegu, Yonggung, Chungju, Paju, and Honam each have two people, and one in 37 cities including Cheongsong and Goryeong. And there are 54 disciples whose remaining residence is not recorded.In particular, 16 of the Toegye disciples now reside in Gyeongnam. Representatives include Guam Lee Jung and Dukggye Ogun. The disciple who was recognized by Toegye and had the most active academic exchange is Guam Jung. Guam went to Toegye until he passed away from the age of thirty to visit the teacher to discuss the discipline, exchange letters, and learn the discipline of Toegye.

도산서원내에 있는 퇴계 선생의 기념관의 『삼경사서석의』와 당대 명필 한호 선생이 쓴 도산서원 현판

E. 도산서원과 시사단

평생 학문을 하고 인간의 도리를 실행하던 퇴계 선생의 학문 완성과 후학 양성의 의지가 담긴 곳이 도산서원이다. 현재의 도산서당은 1561년에 제자들이 건립한 후 선생과 가까운 제자들이 학문과 인격을 도야했다. 이후 선생이 타계하자 문인들의 발의에 의해 서당이 있던 자리에 서원을 건립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도산서원은 크게 도산서당과 서원의 구역으로 나눠진다. 서당은 퇴계 선생 생전에 유생들을 모아 교육하던 곳으로 도산서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선생의 실천적 학문과 검소함이 잘 나타나 있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을 향사하는 곳으로, 선조 5년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1574년부터 서원을 짓기 시작하여 1576년에 완공하였다. 선조는 도산서원이란 현판을 사액하였는데, 그 편액은 당대 명필 한호의 글씨이다. 도산서원 입구에 있는 시사단(試士壇)은 퇴계 선생의 학문의 경지와 당대의 입지를 상징하는 곳이다. 시사단은 본래 1792년 정조왕이 퇴계 이황 선생의 학덕과 유업을 기리며 도산별과를 신설하여 이 지역의 인재를 선발하면서 비롯되었다. 도산별과에는 문과 2인, 진사 2인, 초시 7인, 상격(常格) 14인을 선발하는 별시로서 그 과시가 이곳 시사단(試士壇)에서 거행되었다. 원래의 석비는 이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1796년 정조 20년 무술에 세웠다. 현재 비는 1824년 순조왕대에 비각의 개축과 아울러 고쳐 세웠다. 비문의 찬자는 영의정 채제공선생이다.

E. Dosan Seowon and Sisadan

Dosan Seowon is a place where the Toegye teacher, who has studied for a lifetime and practiced human discipline, has the will to complete academics and foster future students. The present Dosan Seodang was built by the disciples in 1561, and the disciples close to the teacher were required to study and character. Later, when the teacher passed away, he decided to establish a vow in the place where Seodang was located at the initiative of the writers. Currently, Dosan Seowon is divided into Dosan Seodang and Seowon. Seodang was the oldest building in Dosan Seowon, where larvae were gathered and educated during Toegye’s teacher’s life. Dosan Seowon is a place where the Toegye teacher is honored, and in 1572, he decided to have his father’s plaque in Sangdeoksa Temple. It started making vows in 1574 and was completed in 1576. His ancestors made a blank copy of Dosan Seowon, which is the writing of the contemporary Korean writer. The Shisadan at the entrance of Dosan Seowon is a symbol of the academic status of the Toegye teacher and its location to be. In 1792, King Jeongjo established a bankruptcy department in honor of King Hwang’s education and inheritance. The recruitment came from selecting local talent. In Dosan Seongdae, two departments, two Jinsa, seven Choshi, As a separate poem to select 14 people, the show was held here at the Shisadan Temple.The original stele was built in martial arts for 20 years in 1796 to commemorate this fact. The current rain is in 1824. It was rebuilt with the reconstruction of the inscription in the King’s house.

퇴계 영손 동암공이 건립한 퇴계종택

도산선비수련원과 퇴계종택, 한국국학진흥원에서

A. 퇴계종택
주소 :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 466

도산선비수련원 가는 길목에 있는 퇴계종택은 퇴계선생의 영손 동암공이 한서암 남쪽에 지은 가옥이다. 대를 이어 살아오다 1715년 오른쪽에 정자 추월한수정을 건축하기도 했다. 10대 사손 고계 공대에 구택의 동남쪽 건너편에 새로 집을 지어 옮겨 살았다. 그러나 1907년 왜병의 방화로 두 곳 종택이 다 불타버렸다. 지금의 집은 1926년∼1929년 사이에 13대사손 하정 공이 이곳에 세거하던 임씨들의 종택을 매입하여 이건하고, 추월한수정은 옛 건물처럼 재건하였다.

At Dosan Foundation Training Center, Toegye Jongtaek, and Korea Studies Promotion Institute

A. Toegye Jongtaek
Address : 466, Togyori-ri, Dosan-myeon, Andong-si

Toegye Jongtaek, on the way to Dosan Seonbi Training Center, is a house built to the south of Hanseoam by Dongamgong, a young son of Toegye teacher. In 1715, he built a sperm-passing fertilization on the right. A teenager lived in the High School of Engineering, building a new house across the southeast side of his home. However, in 1907, Jong-taek burned down both places because of arson of arson. The current house was bought by Jong-gong of Lim, who was enacted here by the 13th generation, Ha Jung-gong, between 1926 and 1929, and the overcoming crystal was rebuilt like an old building.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연수하는 도산선비수련원

B. 도산선비수련원
주소 : 도산선비수련원 도산면 토계리 468-1

퇴계 종택에서 차로 5분간 산길을 오르면 산중에 도산선비수련원이 있다. 2001년 개원한 도산선비수련원은 의와 인간의 도리를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21세기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일반인, 학생, 공무원, 직장인 대상으로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을 실행한다. 선비수련원은 개원 이래 지난 17년 동안 각계 각층의 지도자 47만명 교육훈련을 했다. 수련생들은 수련원 입소 후 도산서원을 방문하는 한편, 퇴계 종손과의 대화와 예절교육 등의 프로그램에 따라 연수교육을 받는다. 수련원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교원들 모두 한복과 도포를 입고 수련원에서 각자 업무를 담당한다. 비록 낯선 모습이긴 했지만, 의와 사회적 책임감을 추구하는 선비정신을 교육하는 도산수련원의 비전을 의복으로 나타내고 있는 듯했다. 수련원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벼운 목례로 표현했다.

B. Dosan Seonbi Training Center
Address : 468-1 Togyori, Dosan-myeon

If you climb a winding mountain trail for 5 minutes from Toegye Jongtaek, you will find Dosan Sunbi Training Center in the mountains. Opened in 2001, Dosan Seonbi Training Center is implementing various training programs for the general public, students, civil servants, and corporate workers to realize Seonbi spirit in pursuit of righteousness and humanity in this 21st century. Since its opening, Seonbi Institute has trained 470,000 leaders from all walks of life. The trainees visit Dosan Seowon after entering the training center, and receive training in accordance with programs such as dialogue with the Toegye Jongson and etiquette education. All the teachers conducting the program at the training center wear hanbok and apparel, and are in charge of each task at the training center. Although unfamiliar, it seemed to represent the Dosan Training Center’s vision of educating Sunbi, who pursues righteousness and social responsibility. I expressed my gratitude to the people who work at the training centers with a light pastor.

훼손 및 멸실의 위기에 처한 전통문화유산을 보존하는 한국국학진흥원

C. 한국국학진흥원
주소 : 한국국학진흥원 도산면 퇴계로 1997

도산선비수련원에서 내려와서 10분 정도 가면 한국국학진흥원에 도착한다. 국가 운영기관으로 지난 1995년 설립된 한국국학진흥원은 훼손 및 멸실의 위기에 처해있는 전통문화유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연구를 통하여 국학자료의 과학적인 보존방법을 모색하고 전통문화와 사상에 기초한 교육을 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유교문화관련 유물을 조사•수집하여 연구, DB구축 등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국학연구를 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에는 앞 부분에 유교문화박물관이 있고, 뒤편에 강당과 숙박시설을 갖춘 정신문화연수원 건물이 있다. 유교문화박물관에는 퇴계문집과 간찰류 등 문화재를 전시한 박물관과 장판각이 있다. 정신문화연수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이 연수 목적으로 활용하며 300인 수용 가능한 숙박시설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근처에는 경북산림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내에는 산림 생태계를 형성하는 각종 나무, 돌, 동물 등에 대한 설명과 성장 및 생성 과정 등에 대한 지식을 사진과 영상 등으로 전시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지식이 필요한 관광객은 반드시 들러서 자연의 고장에서 자연에 대한 충분한 경험지식을 얻기를 바란다.

C. Korea Studies Promotion Agency
Address : 1997, Toegye-ro, Dosan-myeon

After 10 minutes from Dosan Seonbi Training Center, you will arrive at the Korea Studies Agency. Founded in 1995 as a national operator, the Korea Institute for the Study of Korean Studies seeks scientific preservation methods of Korean literature and systematically educate students based on traditional culture and ideas through systematic research and research on traditional cultural heritage that is in danger of being damaged or destroyed. It is operated for the purpose. The Korea Institute for the Study of Korean Studies is conducting a study of Korean Studies that connects tradition and modernity by researching and collecting relics related to Confucian culture and research and DB construction. The Korean Studies Promotion Center has a Confucian Culture Museum at the front, and a Mental Culture Training Center building with an auditorium and accommodations at the back. The Confucian Culture Museum has museums and Jangpangak that exhibits cultural assets such as Toegyemun Collection and Souvenirs. Mental and cultural training centers are used by companies and public institutions for training purposes and operate accommodations and restaurants for 300 people. The Gyeongbuk Forest Museum is located near the Korea Studies Agency. The museum displays photos and images of the trees, stones and animals that form the forest ecosystem, as well as knowledge of the growth and creation process. Tourists who need knowledge of nature should stop by to gain sufficient experience with nature from its native lands.

안동댐 위에 설치된 선성수상데크길

안동선비순례길 코드 안내도

선성현문화단지 주변의 전통한옥 보존지

한국국학진흥원 앞 안동선비순계길 1코스 0.9km 선성수상데크길
주소 : 선성현문화단지 도산면 퇴계로 인근

한국국학진흥원 박물관 높이에서 안동댐이 멀리 보인다. 진흥원을 나오니 2019년 봄 오픈을 위해 오른 편 안동댐 가에 선성현문화단지 조성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오전 유적지에서 시작되어, 보광사, 선성현문화단지, 호반자연휴양림산림문화휴양호, 성선수상길, 강 건너 월천서당까지 12km의 안동선비순례길 1코스가 이어진다. 선성현문화단지 옆 데크를 걸어 내려가면 안동댐 위로 부유 형식의 데크가 이어진다. 안동 댐 주변의 경치를 즐기면서 안동댐 위의 데크를 산책하는 색다른 체험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도시에서 현재 문명의 이기를 한껏 누려보자. 밤에 맞이하는 하늘의 별빛이 어제의 그 빛이 아닐 수도 있다. 안동선비순계길 1코스 종착점인 월천서당은 안동댐 동편의 마지막 어귀에 자리하고 있다. 한 여름 1주일 휴가철 여행이라면 하루 시간을 내서 순례코스에서 시간을 보낼만하다.

1 course of Andongsun Bisungye-gil in front of the Korea Studies Promotion Institute
Address : Near Toegye-ro, Dosan-myeon, Seongseonghyeon Complex

Andong Dam can be seen far from the height of the Korea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After leaving the KISA, the construction of the Seongseonghyeon Cultural Complex on the right side of the Andong Dam street for the spring 2019 opening is in full swing. Beginning in the morning, there is a course of 12 km from Andong Sunbi Pilgrimage Road to Bogwangsa Temple, Seongseonghyeon Cultural Complex, Lakeside Natural Recreation Forest Forest Recreation Lake, Seongseonsanggil, and Wolcheonseodang across the river. If you walk down the deck next to the Seongseonghyeon Cultural Complex, you will see a floating deck above Andong Dam. Let’s enjoy the uniqueness of present civilization in the city of traditional Korean culture through the unique experience of walking the deck on Andong Dam while enjoying the scenery around Andong Dam. The starlight of the sky at night may not be the light of yesterday. Wolcheonseodang, the end of Andong Sunbisungil-gil course, is located at the last entrance east of Andong Dam. If you have a one-week vacation trip in midsummer, take a day to spend your pilgrimage.

2007년 개관한 안동의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은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우물과 유품을 상설 전시하는 가운데 구국의 열정과 정신을 기리고 고취하는 사업을 수행한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 내부

경상북도독립기념관, 항일투사들의 사상적 배경과 정의감
주소 :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 2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은 지난2007년 개관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을 2014년에 경상북도의 기념관으로 승격하고, 확장 공사를 거쳐 2017년 6월 30일 새로 오픈했다. 정신문화의 고장 안동을 기점으로 경북은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린다. 박물관이 소재한 내앞마을은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바로 한국 독립운동의 발상지다. 경북은 정부가 포상한 독립유공자와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순절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은 1894년 갑오경장부터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51년간 경북 사람들이 국내외에서 펼친 독립운동의 내용과 역사를 정리해 전시하고 있다. 경북의 의병 및 항일투쟁 운동은 의를 추구하는 경북 선비들의 기상과 철학을 담는 가장 상징적인 활동이다. 항일 의병항쟁을 필두로 국채보상운동, 자정순국, 만주지역항일투쟁, 6.10만세운동, 의열투쟁, 한국광복군 등 경북 사람들의 항일투장과 구국의 정신이 다양한 유물과 텍스트로 제시된다. 기념관에는 안동의 각 집성촌 마을에서 51년 동안 국내외에서 일어난 의병과 구국운동에 참여한 인물과 운동 내용이 유물와 사진, 텍스트로 상세히 소개하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이 나라가 어떻게 지켜진 나라인지 새삼 감사의 마음이 일어나게 한다. 한편 기념관에서는 경상북도 사람들이 펼친 독립운동사를 추적•연구하고, 이를 알리는 상설•기획전시, 나라사랑 정신을 새기고 이어가는 교육 연수와 문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Background and Justice of Anti-Japanese Fighters
Address : 2, Independence Hall

The Gyeongbuk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Hall, which was opened in 2007, was promoted to a memorial hall in Gyeongsangbuk-do in 2014, and expanded and reopened on June 30, 2017. Starting from Andong, home of the spiritual culture, Gyeongbuk is called the holy ground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The town in front of the museum is the village of Uiseong Kim, the birthplace of the Korean independence movement. Gyeongsangbuk-do is the region that has produced the greatest number of pilgrims who have given their lives for the independence merit and the country. The Gyeongbuk Independence Movement Memorial Museum organizes and displays the contents and history of the independence movements that Gyeongbuk people have carried out at home and abroad for 51 years from Gap-o Gyeongju in 1894 until liberation in 1945.
The medical and anti-Japanese struggle movement in Gyeongbuk is the most symbolic activity that contains the weather and philosophy of Gyeongbuk scholars who pursue righteousness. With the anti-Japanese medical disputes, the anti-Japanese struggles and spirits of the old nations are presented in various artifacts and texts. In the memorial hall, people and villagers who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and international movements for 51 years in the villages of Andong, and the contents of the movement were introduced in detail with relics, photographs, and texts. Let it happen. In the meantime, the Memorial Hall tracks and studies the history of independence movements carried out by the people of Gyeongsangbuk-do, and is promoting permanent and planning exhibitions to inform them of this, education training and cultural projects that enliven the spirit of love for Nara.
Accommodation at Andong Dam Street in Wolyeong

안동댐 근처 월영교

월영교 중앙에 자리한 정자 월영정

저녁놀 무렵의 월영교 정취

안동댐가 월영교와 안동관광문화단지에서 숙식
주소 : 안동시 명륜동 석주로 203

A. 월영교에서 저녁식사하고 산책

배움과 감동의 하루를 보내고 나서 독립운동기년관에서 멀지 않은 월영교에 도착해 저녁식사를 한다. 월영교 주변에 안동김대감에서 안동 찜닭으로 매콤한 저녁식사를 한다.
(2인분 안동찜닭 22,000원)
식사 후 암동댐 가로 조성된 테크길을 산책하며 안동 시내의 밤 정취에 흠뻑 빠져보자. 암동댐을 가로지르는 테크를 걸어가면 중앙에 정자가 있어 한 여름밤 시원한 강바람에 즐거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Bridge and Andong Tourism & Culture Complex
Address : 203 Seokju-ro, Myeongyun-dong, Andong-si

A. Dinner and Walk at Wolyoung Bridge

After a day of learning and inspiration, we arrive at Wolyeong Bridge not far from the Independence Movement Hall. Spicy dinner with Andong jjimdak at Andong Kimdaegam around Wolyounggyo.(22,000 won for Andong jjimdak) After your meal, take a stroll along the tech trail of Amdong Dam. If you walk the tech across Amdong Dam, there is a sperm in the center, so you can relax in the cool river breeze at midsummer night.

안동관광문화단지의 밤야경

안동관광문화단지 내에 있는 그랜드 호텔 전경

B. 월영교 안동관광문화단지 그랜드호텔과 리첼호텔 숙박

월영교 주변의 모텔이나 주변의 안동관광문화단지 내의 비즈니스급 호텔인 그랜드 호텔이나 리첼호텔에서 숙박할 수 있다.
그랜드 호텔 : 안동시 성곡동 관광단지로 346-84
리첼 호텔 : 안동시 성곡동 관광단지로 346-69,

B. Wolyeonggyo Andong Tourist and Cultural Complex Grand Hotel and Richel Hotel Accommodation

Guests can stay at motels near Wolyeonggyo or business hotels in the nearby Andong Tourist and Cultural Complex.
Grand Hotel : Andong-si, Seonggok-dong Tourist Complex-ro 346-84
Rich Hotel : Andong-si, Seonggok-dong Tourist Complex-ro 34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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