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고원위의 옹달샘에서 윤명철 교수

파미르!
왜 울림이 이리도 큰 걸까?

인류가 언제부터 이 곳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어떻게 그 존재가 전 유라시아에 알려졌고, 왜 관심을 갖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나 또한 20대 고개를 막 넘자마자부터 파미르를 가슴속에 담아두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울림과 신비로움으로 마주했다. 육당 최남선이 ‘불함문화론’을 주장하면서 파미르를 얘기했고, 많은 이들이 파미르하면 인간세계와는 동떨어진 특별한 존재들의 세계로 인식했다. 나도 20대 중반에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연관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또는 인류문명의 시원과 연관있을지도 모른다는 종교적인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당나무』, 『신단수』 등의 수행과 연관된 시집들을 내는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우리민족의 엣신앙과 연관있을 거라는 추측도 있었을 것이다. 멀치아 엘리아데의 ‘우주산’ ‘우주목’의 개념과 의미 등이 나의 혼에 영향을 끼치면서 지구상의 지붕이라는 파미르는 당연히 특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지금은 역사학자로서 유라시아 역사, 유라시아 문명과 연관하여 관심이 높아졌고, 또 내가 지향하는 신문명의 모델이 연관될 수도 있을까하는 희망 때문에 더더욱 집착하게 됐다.

Pamir!
Why is it so loud?

When did mankind begin to take an interest in this place, how its existence was known to all of Eurasia, and why it is of interest is unclear. I also started putting Pamir in my chest as soon as I passed my 20s.

At first, I met with ringing and mystery. Yukdang Choi Nam-sun talked about Pamir by insisting on the theory of 『imperial culture』and many recognized Pamir as a world of special beings that are far from the human world. In the mid-20s, I started accepting with the idea that it might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history of our people, or that it might have something to do with the origins of human civilization. Since it was the time to produce poetry books related to the practice of 『Dang Tree』 and 『Shindansu』there was probably speculation that it was probably related to the ethnic beliefs of our people. The concept and meaning of Mulcia Eliade’s ‘Usansan’ and ‘Usumomok’ influenced my soul, and of course Pamir, the roof of the earth, came as a special being. Now, as a historian, my interest has increased with regard to Eurasian history and Eurasian civilization, and I have become more obsessed with the hope that the model of the newspaper name I am aiming for may be involved.

사막의 파미르

파미르 봉우리들이 보이는 초봄의 계곡

눈덮인 파미르 고원

태양신의 자리이자 우주산의 자리, ‘파미르’

사실 ‘파미르(Pamir-mt)’라는 울림과 감동을 주는 이 명칭의 어원과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대표적으로 페르시아의 언어에서 ‘미트라(태양)신의 자리’를 뜻하는 ‘Pa-imihr’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미트라교는 고대 페르시아안들의 종교인데, 꺼지지 않는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와 깊은 연관이 있다. 이란의 동부지역에 살았던 파르티아인의 신앙이었는데, 훗날 로마를 비롯하여 유럽의 종교와 정신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인더스강에서 발전하여 불교와 융합하면서 미륵신앙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또한 페르시아어로 ‘산들의 기슭’ 이라는 주장도 있는데, 파미르 고원을 둘러싸고 있는 높고 거대한 산들을 고려한다면 타당성이 있다. 먼 거리에서 접근하면서 고원 위를 달리다보면 시야에는 오로지 산만 가득 찬 정경이 이어진다. 이란의 산들이나, 지구라트같은 조로아스터교의 유적들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 하다는 느낌이 든다. 일종의 우주산 개념이다.

중국에서는 ‘총령(葱嶺)’, 즉 ‘파고개’라는 의미의 명칭으로 불렀다. 6세기 초에 쓰여진 『수경주(水經注)』라는 지리서에는 ‘총령은 돈황의 서쪽 팔 천 리 거리에 있는 높은 산이고, 산 위에서 파(葱)가 나므로 옛날에 총령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있다. 이는 현실과는 관계가 없는 설명이다.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인 결과이다. 파가 없을 뿐 만 아니라, 고원위에는 교목이나 관목은커녕 식물다운 식물조차 자라지 않는 곳이다.

‘Pamir’, the seat of the sun god and the seat of the universe

In fact, there are many theories about the origin and meaning of the name, which gives the sound and impression of ‘Pamir-mt’. The representative theory is that it originated in ‘Pa-imihr’, which means ‘the place of the god Mitra (Sun)’ in Persian language. Mithraism is an ancient Persian religion, deeply related to Zoroastrianism, a cult of undying fire. It was the beliefs of the Parthians who lived in the eastern part of Iran, which later had a considerable influence on the religious and mental worlds of Europe, including Rome. It is said that it developed from the Indus River and fused with Buddhism to become Maitreya faith.
There is also a claim in the Persian language that is “the foot of the mountains,” which makes sense given the high and massive mountains surrounding the Pamir Plateau. As you approach from a distance and run over the plateau, you can see a scene full of distractions. Seeing the mountains of Iran and the ruins of Zoroastrians like Ziggurat feels good enough. It is a kind of the concept of Mt.
In China, it was called ‘Chongnyeong’, or ‘Pagogae’. In the geography of Sukyungyeong, written in the early 6th century, it was written, ‘Cheongyeong is a high mountain located eight thousand ridges west of Donhwang, and since it has a wave on the mountain, it was said to be the former president.’ have. This is an explanation that has nothing to do with reality. This is the result of easily accepting what people who have not been to easily say. Not only does it have no green onion, but it is a place where even plants, not trees or shrubs, grow on the plateau.

파미르 고원위의 옹달샘

파미르 산록의 봄꽃들

파미르가 보이는 계곡

동서 문명이 교류하는 대동맥 오아시스로의 필수적인 경유지, 파미르

파미르가 이러한 다양한 의미를 지닌 명칭을 갖고 있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경배의 대상이 된 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 우선 상징성을 들 수 있다. 고대 세계에서 사람들은 높은 산, 거대한 산, 만년 설산에 대한 특별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일종의 우주산의 개념 때문이고, 우리는 보통 ‘당산’으로 불렀다. 한편 파미르와 연결되는 天山은 주변의 모든 주민들에세 신령스러운 산으로 인식되는데, 중국어로는 하늘산이라는 의미이다. 타타르어로는 ‘킬로만’이라고 부르는데, 역시 하늘산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투르크어로 ‘텡그리(Tengri 천) 다르(Tar. 산)’로 불렀을 가능성이 있다. 쿤룬(곤륜)산맥은 현지말로는 ‘머리를 말아 올린 검은 몸의 백성’이라는 뜻을 갖고 있단다.

워낙 규모가 크고 넓은 데다가 자연환경에도 차이가 있고,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일반적으로 중앙 파미르, 동부 파미르, 서부 파미르로 구분한다. 파미르 지방의 대부분은 타지키스탄의 고르노바다흐샨주에 속한다. 동쪽의 일부가 국경 지대로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와 만나고, 남쪽과 서쪽은 강과 산맥으로서 아프가니스탄에 속한다. 이 곳을 ‘파미르 매듭(pamir knot)이’라고 부르는데, 이유는 거대한 산맥들이 뻗어나가는 핵에 있기 때문이다. 고원은 투르키스탄을 동서로 가르고,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경계를 이루고, 동서로 펼쳐져서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나누고 있다. 동서의 문명이 교류하는 대동맥인 오아시스로의 필수적인 경유지로서 ‘남로’와 ‘남도로’가 이 고원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여기에서 동서남북으로 유라시아의 전 지역까지 이어질 수 있다. 서아시아와 카스피해로 연결되고, 중국의 타클라마칸(Taklamakan) 사막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파키스탄, 인도 등, 아프카니스탄의 북부로 이어진다.

Pamir, an essential stop to the aortic oasis where East-West civilization exchanges

There are several reasons why Pamir has such a variety of meanings and has been the object of worship to many people. First of all, symbolism can be mentioned. In the ancient world, people had a special awe of high mountains, huge mountains and snowy mountains. It’s because of a kind of concept of Mt. Usu and we usually called it ‘Dangsan’. On the other hand, chumsan天山, which is connected to Pamir, is recognized as a sacred mountain by all the inhabitants of the surroundings. In Tatar, it is called ‘Kiloman’, which also means Heavenly Mountain. If so, then it is possible that it was called ‘Tengri (Tar. Mountain)’ in Turkic. The Kunlun (Kunryun) mountain range has the meaning of ‘the people of the black body with their heads rolled up’ in the local language.
It is large and wide, and there is also a difference in the natural environment, and historically and culturally, there are regional differences, so it is generally divided into Central Pamir, Eastern Pamir, and Western Pamir. Most of the Pamir region belongs to the Gornobadachshan state of Tajikistan. A part of the east borders China’s Xinjiang Uighur Autonomous Region, while the south and west are rivers and mountains belonging to Afghanistan. This place is called ‘pamir knot’ because it is in the nucleus of huge mountain ranges. The plateau divides Turkistan from east to west, forms the boundary between East and Central Asia, and spreads out from east to west to divide South Asia and Central Asia. ‘Namro’ and ‘Namdoro’ cross the plateau as an essential stopover to the oasis, the main artery of East-West civilization. And from here it can extend from east to south and north to all parts of Eurasia. It connects West Asia to the Caspian Sea and to the Taklamakan desert in China. And it continues to the north of Afghanistan, including Pakistan and India.

파미르고원과 연결된 교통로

중국에서 넘어온 화물차들이 달리고 있다

사리타쉬 마을 입구의 이정표. 중국의 카슈카르까지 가는 거리수가 쓰여져 있다

두 번째 방문길,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고장 타지키스탄으로

이른 봄날에는 거대한 몸통을 멀리 바로 보면서 횡단하다가 끝의 바로 발치까지 갔다. 눈이 덜 녹아 국경문이 폐쇄된 탓이다. 다시 찾아 이번에는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드를 보고 국경을 넘어 두산베로 들어왔다. 이미 사마르칸드에서 타지크인들을 자부 본 나는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미리 생각하면서 다소 절차가 복잡한 국경을 넘었다. 트렁크를 끌며 메마른 먼지가 풀풀 이는 반쯤 모래자갈길을 걸어 도착하면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몇 몇은 날 놀라게 한다.
그리스나 로마에 온 듯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지중해풍의 얼굴에 끝이 약간 꼬부라졌지만 큰 코에 큰 눈, 그리고 등짝이 두꺼운 거구들의 남자들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도시가운데 하나인 ‘펜지칸트’ 시내로 들어가면서 만난 여자들은 새까만 생머리칼에 까무잡잡한 살색을 띄우고 있지만, 유럽풍의 얼굴이 남아있다. 피의 섞임, 몸의 섞임이 이리도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울 수가 있다니, 꼭 문화의 혼융, 습합만 찬양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선하기 그지 없는 매혹적인 눈빛을 가진 여인들이 길을 걷고, 시장에서 꿀과 채소 등을 팔고 있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가끔 질문을 던진다.
“얘들아. 세계에서 가장 예쁜 여인들이 사는 곳을 어디라고 생각하니?”
우즈베키스탄에 가면 김태희가 밭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들이 유행한 적이 있어서이다. 멋쩍어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타지키스탄’.
그녀들은 투르크계의 피에 페르시아계, 그리이스계, 그리고 약간의 아랍계와 인도피도 섞였기 때문이라고 장황하게 설명한다.

Second visit to Tajikistan, home to the most beautiful woman in the world

On an early spring day, 9 crossed the giant torso, looking straight away, and then went straight to the foot. This is due to the fact that the border gate was closed due to the less melting of snow. Again, this time I saw Samarkand in Uzbekistan and crossed the border into Doosanbe. Having already seen the Tajiks in Samarkand, I crossed the rather complicated borders, thinking ahead of time that there was no difference. Some of the people I met as I dragged the trunks and walked on a half-footed sandy path full of dry dust surprised me.
The tip of the Mediterranean-style face was slightly curled to the point that I felt like was in Greece or Rome, but men with big noses, big eyes, and thick backsaws were noticeable. And the women I met as I entered downtown ‘Penzicant’, one of the most important cities on the Silk Road, have a dark hair with a dark skin, but a European-style face remains. Blood mixing and body mixing can be beautiful, even in harmony, so it doesn’t seem to be necessary to praise only the cultural fusion. Women with charming eyes that were not good, were walking down the street and selling honey and vegetables at the market.

I sometimes ask questions to students.
“Guys. Where do you think the world’s prettiest ladies live? ”
When I went to Uzbekistan, it was fashionable to say that Kim Tae-hee was working in the field. I smile and speak to students who are fashionable. ‘Tajikistan’.
I verbally explained that it was because of mixing Turkic blood with Persian, Greek, and some Arab and Indian blood.

현지의 농부와 함께

전통의상 입은 박물관 직원들

파미르의 민속품

파미르의 민속품

페르시아인, 실크로드 개척하고 유라시아 교통시스템 속에 편재시켜

실크로드를 개척하고 유라시아 교통시스템 속에 편재시킨 사람들은 페르시아계이다. 기원 전 6세기 중반 무렵에 페르시아 제국은 이집트를 평정하였고, 이어 동쪽으로 진출하여 아프카니스탄 북부와 이란의 동쪽인 파르티아 지역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박트라(Baqtra, 아무다리아강) 강변에 도달하였다. 이어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우스 Ⅰ세가 기원전 6세기 초에 중앙아시아의 아프카니스탄 북부, 아프카니스탄 중부 일대, 파키스탄 지역 가까이 진출하였다. 이때 타지크인들의 조상들은 페르시아에 복속되었다.

Persians pioneer Silk Road and localize it in the Eurasian transportation system

The people who pioneered the Silk Road and localized it in the Eurasian transportation system are Persian. By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B.C.E., the Persian Empire settled Egypt, then advanced eastward to seize the northern part of Afghanistan and the eastern part of Iran, the Parthian region. Then they reached the river banks of the Baqtra (Amdararia River). Subsequently, the Darius I of the Persian Empire advanced into northern Afghanistan, central Afghanistan, and Pakistan in the early 6th century BC. At this time, the Tajik ancestors were subject to Persia.

타지키스탄에 남은 조로아스터교 신앙

알렉산더의 생애를 다른 벽화 판지켄트 박물관 작품

신장 위구르 자치구, 페르시아문화 중국과 한국에까지 전파

그 덕분에 오늘날 중국의 신장(신강 위구르 자치구) 지역은 월지라고 알려진 나라가 비단 무역을 주도하였고, 그래서 페르시아 문화와 ‘짜라투스트라’를 믿는 조로아스터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에게까지 잔영을 드리운 것이다. 그러다가 서기전 4세기 전반에는 마케도니아의 젊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 유명한 다리우스 Ⅰ세를 쫓아 서아시아를 건넜고, 서부 실크로드를 무섭게 달려와 기원 전 329년에 투란 지역의 도성인 ‘마로칸드’, 즉‘사마르칸드’에 도착하여 점령한다. 알렉산더는 중앙아시아에 그리이스 문화를 전파하고 이식하려고 다양한 정책들을 써가면서 노력했다. 또한 여러 지역에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알렉산드리아’ 같은 도시들을 건설하였다. 그 가운데 하나인 후잔트는 BC 329년경에는 ‘알렉산드리아 에스카테’였다. 지금도 알렉산더가 건설한 성벽유지들이 남아있다.

Xinjiang Uygur Autonomous Region spreads Persian culture to China and Korea

Thanks to this, China’s Xinjiang (Xinjiang Uighur Autonomous Region) region led a silk trade in a country known as Wolji, and the Zoroastrians who believe in Persian culture and the ‘Zaratustra’ have left over China to us. Then, in the first half of the 4th century AD, the young Alexander the Great of Macedonia chased the famous Darius I and crossed West Asia, frighteningly running the western Silk Road and in 329 B.C.E. Arriving and taking over. Alexander tried to write various policies to spread and port the Greek culture to Central Asia. He also built cities like ‘Alexandria.’ which gave his name to various regions. One of them, Huzant, was ‘Alexandria Escate’around 329 BC. Even now, the remains of the wall built by Alexander remain.

그리스인의 피가 남은 타지키스탄 청년

알렉산더 현지화 정책 펼치며, 헬레니즘 문화 씨앗 뿌려

알렉산더는 그 지역의 여자인 ‘록산나’를 부인으로 맞이하고, 부하들에게도 현지 여인들과 혼인을 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이렇게 해서 국가정책으로 인하여 백인종과 황인종의 혼혈이 탄생하고 두 가지 다른 문화가 섞여 갔다. 타지키스탄의 후잔트, 판자켄트 등의 도시로 들어가면 지금도 그들의 외모에 페르시아인들이나 그리스인들의 혈통이 많이 남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시 험준한 파미르 고원을 넘어 타지키스탄,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지역까지도 들어간다. 이렇게 해서 셀레우코스 왕국은 중앙아시아와 인도 북부, 아프카니스탄은 기원 전 312년부터 이 들에 의해 통치되었고, 알타이 문화와 정복자들인 그리스 문화 전통이 합쳐진 헬레니즘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Unfolding the localization policy of Alexander and sowing the seeds of Hellenistic culture

Alexander welcomed the local woman, Roxanna, as his wife, and pursued a policy to encourage marriage with local women to subordinates. In this way, due to national policy, mixed races of white and yellow races were born, and two different cultures were mixed. When you enter the cities of Huzant and Kampkent in Tajikistan, you can see that there are still many Persians and Greeks in their appearance. Some of them cross the rugged Pamir Plateau again into Tajikistan, Afghanistan and Pakistan. In this way, the Kingdom of Seleucus was ruled by them in Central Asia, northern India, and Afghanistan from 312 B.C.E., and the Hellenistic culture of Altai culture and the conquest of the Greek culture, conquer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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